자포리자 원전, 포격으로 일시 단전…"유럽, 방사능 재난 임박"
포격 화재로 송전선 훼손…"디젤발전 통해 누출위기 모면"
유럽 최대 규모의 원전에서 발생한 이 같은 사상 초유의 사태를 두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방사능 재난 한 발짝 앞으로 몰아붙였다"고 러시아를 비난했다. 러시아는 단전사태가 우크라이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AP, AFP통신, BBC방송 등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화재 영향으로 발전소와 외부를 연결하던 마지막 송전선이 훼손됐다.
자포리자에는 송전선이 총 4개였으나 3개는 이번 전쟁으로 훼손돼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자포리자에서 가동 중이던 2개 원자로와 우크라이나 전력망 연결이 차단됐다. 자포리자 지역 전력 공급도 그 즉시 중단됐다.
AP통신은 다만 차단됐던 2개 원자로 가운데 1개의 연결이 복구되면서 지역 전력공급도 재개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사태 때문에 자포리자 원전의 가동이 중단돼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위기를 겨우 넘겼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심야 연설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에 마지막 송전선이 훼손돼 사상 처음으로 자포리자 원전이 멈춰섰다"며 "디젤 발전기가 즉각 가동해 발전소 자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며 "디젤 발전기가 가동하지 않았다면, 발전소 직원들이 전력 차단에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이미 방사능 사고를 감당하고 있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P통신은 원자로 냉각을 위한 전력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최악의 원전사고 원인이 되는 '원자로 노심용융'(멜트다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전 단지에서 사용후 핵연료봉을 냉각하는 저장수조 역시 포격에 매우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사용후 핵연료봉은 일정 기간 강한 방사능이 발생해 저장시설 밖으로 유출되는 경우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원전에 전력망이 단절되도록 한 이번 화재를 두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상대 소행을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포격을 주장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자포리자가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며 "러시아가 (자포리자에) 오자마자 우크라이나, 유럽, 전 세계가 상상도 못 할 원자력 재난 우려에 몰렸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자포리자 원전에 포격을 가해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우크라이나 부대가 송전선을 훼손한 뒤 전력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점령군 측 자포리자 행정당국 책임자 예브게니 발리츠키도 우크라이나군 때문에 자포리자 전역에 정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올해 3월부터 러시아군이 장악하고 있으며 근처에서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 20~22일에도 포격이 이어지면서 원전 내 일부 기반시설이 손상됐다. 원전과 주변 화력발전소를 잇는 전력선이 끊어졌다 복구되기도 했다.
실제 누가 포격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가운데 양측 모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시찰을 촉구하고 있다.
자포리자 원전에 닥친 단전사태는 러시아가 원전의 전력을 크림반도 등 러시아 점령지로 가져가기 위해 전력망을 교체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발생했다.
전력망 교체 또한 대규모 재난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 운영사인 에네르고아톰의 페트로 코틴 대표는 "전력망 교체 작업 중 90분간 전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원자로는 위험한 온도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의 계획 때문에 우크라이나 시스템에 연결된 자포리자 원전의 모든 시설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 다른 지역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재난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프랑스-24 방송과 인터뷰에서 "매우, 매우 빨리 그곳(자포리자)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체적 시기에 대해서는 "수일 내"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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