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 공약 내건 정치세력 등장하면 어떤 일이...
[기고] "무주택 계급이 각성하면 정치세력 형성될 것"
자본주의가 그 싹을 틔우던 1700년대 후반에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가 남긴 기록이다. 그는 20대 후반에 대학교수가 될 정도의 상류층이었으니, 자신이 직접 자본가들의 모의에 참석하여 보고 들은 사실을 기록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노동자들은 숫자가 많은 데다 절박한 상태에서 행동을 하므로 임금을 올리려는 노력도 실패로 끝나곤 했다고 전한다. “노동자의 단결은 아무런 결과도 없이 그저 주모자의 처벌이나 파멸만 낳고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E.K.헌트의 경제사상사(홍기빈 번역)> 137쪽)
자본주의는 그 생산양식으로 인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 계급을 탄생시켰고, 두 계급 간에 “임금”을 두고 벌이는 갈등과 투쟁은 자본주의체제의 상수가 되었다. 그 투쟁에서 자본가계급은 공모와 집단행동을 일삼았던 반면, 노동자계급은 그러지 못했다.
한술 더 떠서 임금의 결정에서 자본가계급은 공공의 여론을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으며, 정부를 자기편으로 삼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스미스는 기술한다. 자본주의의 태동은 근대국가의 형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근대국가의 권력구조에서 자본가는 핵심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래저래 노동자는 죽도록 일하고도 자신의 정당한 몫을 차지할 수 없었다.
자산가계급과 무주택계급간의 권력의 불평등
자본주의 초기 국면의 이러한 두 계급 간의 권력의 불평등성은 “재산” 혹은 “집”을 기준으로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는 초기 국면이라 할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지금의 상황이 아담 스미스가 기록을 남긴 시기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집도 재산도 없는, 말 그대로 “무산계급”이 수적으로 절대다수이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결속력은 미약하다.
이에 반해 수적으로 소수지만 국가권력과 여론형성의 주요 지위를 점하고 있는 “유산계급”은 집값의 상승 혹은 폭등한 집값의 유지를 위해 암묵적으로 공모하고 있지 않은가. 기득권 자산가계급 혹은 집부자들이 우리 사회의 영향력 있는 지위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집값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정부정책이다. 그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관료들의 대다수가 강남에 집을 소유하고 있음은 얼마 전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었다.
지난 4년여 서울 집값을 폭등시킨 에너지는 투기수요에서 나왔는데, 그 투기수요를 유발한 것은 초저금리였다. 이처럼 중요한 금리의 결정권한을 가진 금통위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에게 초저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명분과 논리를 제공하는 KDI 등 국책연구기관의 박사들 대다수도 자산가계급에 속할 것임은 조사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하여 임금인상과 금리인상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유명대학교의 경제학교수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무주택계급이 각성하면 정치세력이 형성된다
자본주의가 자리잡아가면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인상을 위한 단합을 시도하였으나, 국가권력을 손에 쥔 자본가계급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는 없었다.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선거권이 부여된 1880년대 이후에야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형성되었다.
다행스런 사실은 지금 “무산계급”은 투표권을 갖고 있으므로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한다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정치세력에게 권력을 쥐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기준이 “집값 하락”을 유도할 확고한 의지를 가진 정치세력인가 아닌가라는 점을 만천하에 공표한다면, 그에 부응하겠다는 정치세력은 실로 순식간에 탄생할 것이다.
이것을 “계급적 자각”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집값 폭등이 사실은 유산계급의 ‘암묵적 담합’ 혹은 ‘묵시적 공모’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임을 자각하면, 이에 대항하여 행동에 나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산계급의 자각을 정치인들이 알게 되는 순간 “당신들의 이익을 우리가 대변하겠소”라고 외치는 정치세력이 등장할 것이다. 표가 있는 곳에 정치세력이 없을 수 없으니 말이다.
2002~2008년, 다주택자와 무주택자의 정당 선택이 갈렸다
혹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계급의 탄생”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성급한 주장이라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미 “집”의 소유를 기준으로 사회구성원의 경제적 지위가 확연하게 갈라져 있지 않은가. 한발 더 나아가 “집값”이 오르느냐 내리느냐가 두 구성원들의 이익과 손해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더욱이 두 집단 간에 사회경제적 지위와 권력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 확연하고, 그 불평등의 원천이 소유에서 온다는 사실도 매우 명확하다. 이 정도면 ‘자본주의 소유관계에서 발생한 권력의 불평등성’이라는 자본주의 초기의 계급 탄생의 원천과 매우 유사하다.
손낙구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치러진 선거 결과를 분석한 결과 집의 소유를 기준으로 계급이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일수록 집 가진 사람,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가 많이 산다. 1인 가구나 반지하에 사는 사람은 적게 산다.”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이 높은 동네일수록 무주택자, 단독주택 등 비아파트 거주자, 1인 가구, 반지하 거주자가 많이 살고, 다주택자는 적게 산다.”
집의 소유를 기준으로 정당선택이 달라졌음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집”이라고 여기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이익을 대변해줄 정당을 선택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주택자등 자산가가 많은 동네는 집값을 올려줄 한나라당을 선택했고, 무주택자가 많이 사는 동네는 집값을 하락시켜줄 민주(열린우리)당을 선택한 것이다.
2002년에서 2008년의 기간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던 시기였다. 집없는 서민들의 고통이 매우 극심했으므로 자연스레 집값이 정당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그 당시보다 집값폭등이 서민의 살림살이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집값 하락”의 기치를 내건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대한다
그 당시와 달라진 점은 현재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집값을 하락시키려는 의지가 미약하다는 사실이다. 다주택자에게 엄청난 세제혜택을 베푸는 등 ‘다주택자의 천국’을 만든 것을 보면, 집권세력이 무주택계급이 아니라 다주택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음이 매우 분명하다.
손낙구의 말대로 집을 기준으로 우리 사회에 두 계급이 이미 형성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집값이 오르면 이익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이 뚜렷하게 나뉘었으니 이 집단을 “계급”이라 부르는데도 무리가 없다.
두 계급 간에 집값을 기준으로 갈등이 발생하고 같은 계급끼리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생긴 것이다. 다만 한 계급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집값 상승을 적극적으로 공모하고 담합하는 반면, 다른 계급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인 무주택계급이 수적으로 다수이므로 그들의 이익을 정치와 정책에 반영해줄 정치세력의 형성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무주택자를 위한 집값 하락”을 기치로 내건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송기균 송기균경제연구소장(blog.daum.net/kig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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