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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YS가 현철이 때리는 게 낫겠죠"

[정치부 기자 23년의 기억들] <8> 김현철씨와 나

기자들도 인간이다. 그래서 쓰고 싶은 게 있고 쓰기 싫은 게 있다. 그러나 쓰기 싫어도 써야 하는 게 기자다. 나에겐 김현철씨에 관한 기사가 그런 거였다. 세상의 많은 지탄을 받은 그이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정보 소스였다. 대단한 특종 몇 개를 거기서 건졌다. 그한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내겐 그리도 컸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나에겐 고마운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기자였다. 그에 관한 기사를 쓰기 싫어도 써야 했다.

김현철과 나

YS가 퇴임 1년을 앞둔 상황이었다. 한보 비리 사건이란 것이 터졌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관심밖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부 기자들은 신한국당 대권판도에 온신경이 집중됐었다. 그런데 사건이 확대되면서 정치인들의 소환사태가 있었다. 막바지엔 김현철씨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론은 현철씨의 실명을 보도하지 않았다. 여권 핵심 실세의 연루의혹 정도로만 표현했다. 언론도 조심했던 거다. 그러나 기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기자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갑자기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편집국장이었다. 국장이 직접 기자에게 전화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어, 나 국장인데...현철이 인터뷰를 해봐. 당신하고 친하잖아. 그러니 전화 받을 거 아니냐. 현철이 하는 모든 얘기 그대로 실어준다고 해. 그러니 하고 싶은 얘기 다 하라고 해. 꼭 해야 된다.”
“그런데요......지금 실명으로 현철이를 쓴 신문은 아무 곳도 없습니다. 본인이 안하겠다면 저로서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뚜렷한 혐의가 포착됐다는 검찰 발표도 없는데요.”
“그러니 너한테 시키는 거지. ”
“알겠습니다. 연락해보고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했다. 바로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본인이 안하겠다고 합니다”라고 하면 그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신문한테 물을 먹을 일도 없었다. 다른 신문은 접근이 안될 테니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를 몇 십번 생각했다. ‘후배라고 도움은 못될 망정 사지(死地)로 몰아서야 되겠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본인의 얘기를 실어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일단 실명이 나오면 봇물 터지듯 할 텐데.....’ 생각은 왔다갔다 했다.

한 시간이 넘었다. 다시 국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떻게 됐냐? 지금이 오후 3시다. 마감까진 두 시간 남았다.”
“전화를 해보고 있는 중인데요.....연결이 잘 안됩니다.”

나는 국장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기자란 이런 건가. 이래야 하는 건가. 세상이 그를 향해 욕을 한다 치자. 돌을 던진다 치자. 그렇다고 내가 그를 세상 앞에 끌고 나와야 하나.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전화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일단 전화를 걸었다. 현철씨는 내 전화를 받아주었다. 흥분된 상태였다. 나는 차분하게 물어봤다.

“형, 진짜 연루 의혹이 있는 거야?”
“너 그걸 말이라고 하니? 날 믿어. 아무 일 없을 거야. 한보로부터 돈 받은 거 없어.”
“정말 믿어도 돼?”

나는 그것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자신있다는 말투였다. 그렇다면 인터뷰를 하자고 얘기할 만했다.

“형, 하는 얘기 다 실어 줄 테니 인터뷰를 하라고 우리 국장이 지시를 내렸어.”

그는 처음엔 거절했다. 그런데 내가 꼬셨다. 하는 게 좋다고 말이다. 초장에 확실한 입장을 밝혀두는 게 낫다고 말이다. 속으론 꼭 그럴 거라 생각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그러자 현철씨가 대답했다.

“그래 하자. 얘기 좀 해야겠다.”

딱 5분의 전화 인터뷰였다. 나는 얼른 기사를 만들어 회사로 보냈다. 마감 직전이었다. 국장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이연홍씨 수고했어.1면 사이드 기사로 나갈 거다.”
“수고는 무슨 수고요. 국장이 시키니 한 거죠. 본인은 실제로 억울하다고 하던데요.”

검찰에 소환되는 김현철씨. YS정권시절 그는 말 그대로 '2인자'였다. ⓒ연합뉴스


전화를 끊자마자 현철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연홍아. 미안한데 그 인터뷰 기사 싣지 말아줘. 지금 아버지(YS)가 외국 순방중이시잖아. 아버지 없는데 내가 언론에 나서서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게 아무래도 잘못하는 거 같아. 그리고 아버지와 상의도 못한 상황이고 말이야. 청와대 수석들한테 내가 인터뷰 했다고 하니까 당장 취소시키라고 하는데.....”

나로선 난감했다. 들어줄 수도 안 들어줄 수도 없었다. 애초에 인터뷰를 안했다면 모를까 해놓고 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관심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말이다.다시 한번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기자다. 이게 나의 운명이다. 그때도 나는 나의 스승 이영석씨(23년의 기억들 7회분 참조)를 생각했다.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썼을거다. 기자란 외로운 거다. 외롭지 않은 기자는 기자가 아니다.그렇게 생각했다.

“형, 미안해. 알잖아. 내 손을 떠났어. 지금 와서 형이 빼 달라 한다고 말해봤자 나만 욕먹고 말거야. 다만 형이 그렇게 얘기하니 내가 얘기는 해보께.”

내 예측이 맞았다.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하니까 “이미 제작에 들어갔다”는 대답 뿐이었다.

대 특종이었다. 중앙일보만 유일하게 김현철 인터뷰를 실었다. 그러나 내 예측이 맞았다. 김현철이란 실명은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 신문이 다음날자 신문부터 김현철이란 실명을 박기 시작했다. 여권핵심실세와 김현철이란 표현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상황이 급진전됐다. 연일 의혹이 넘쳐났다. 언론은 김현철 의혹만을 보도했다. 다른 정치인들의 구속은 관심밖으로 밀려날 지경이었다.

나는 현철씨에게 전화를 걸지도 못했다. 너무도 미안했다. 청와대 내에서는 내가 나쁜 놈이 되어 있었다. 내가 실명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사태가 그 지경이 됐다는 거였다.

당시 청와대는 두 패로 갈려있었다. 한패는 사태 수습을 위해 현철씨를 검찰이 소환토록하자는 주장이었다. 모든 걸 까발려야 수습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소수였다. 다른 한패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란 쪽이었다. 어떡하든 소환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수였다. 그때만 해도 현철씨에 대해서는 드러난 혐의가 없었다. 그러니 후자들한테 나는 나쁜 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갑자기 청와대 김광일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을 먹자는 거였다. 상의할 게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김실장과 별다른 면식이 없었다. 서로의 존재를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나와 밥을 먹자는 게 이상했다. 코리아나 호텔 2층 일식집이었다. 다다미 방에 둘만 마주했다.

김 실장은 포도주를 시켰다. 한 병을 비우고도 말이 없었다. 두병이 세 병되고 세 병이 네 병 됐다. 그렇게 마신 포도주가 몇 병인지 모를 때였다.

“이차장, 좀 물어봅시다. 현철이를 어떡하는 게 좋을까. 당신이 고등학교 1년 후배이고 나름대로 애정도 있을 테니 솔직히 얘기를 해주었으면 좋겠소. 그저 당신의 개인적 의견을 말이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소. 참고만 하려고 해서 그러는 거니 솔직히만 말해 주시오. 주변 의견들을 수렴해서 대통령에게 보고를 해야하오.”

“그런 말씀 하시기 전에 실장님의 견해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제가 현철씨와 인터뷰를 한 걸 두고 청와대 일부 수석들이 저를 죽이느니 살리느니 한다는데 괜히 지금 말 잘못해서 봉변당하고 싶진 않습니다. 저를 욕하려면 인터뷰 기사를 왜곡해서 썼다거나 안한 말을 한것 처럼 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기자로선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물론 현철씨에겐 결과적으로 미안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한보사건에 관한 한은 자신이 있다고 했었습니다.”

“내 얘기는 이 차장 얘기를 들은 후에 하리다. 먼저 얘기해 주시요”

나는 30분 가량을 혼자서 떠들었다. 술기운에,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했다. 음식은 손도 대지 않은 상태로 고스란히 있었다.

“실장님. 저는 검찰 수사결과를 모릅니다. 현철씨가 한보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한 푼이라도 받았다면 그 돈의 성격과 상관없이 할 수만 있다면 구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철씨를 위해서입니다. YS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대통령의 참모라면 그렇게 건의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법적인 거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런 겁니다. 현철씨는 YS의 아들입니다. 실장님도 아들이 있을 겁니다. 실장님 아들이 잘못을 했다고 칩시다. 작은 잘못이든 큰 잘못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남들이 매를 들고 실장님 아들을 때리겠다고 달려드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요. 남도 그냥 남이 아니라 평생 나와 경쟁했거나 나를 원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회초리를 들고 있다고 상상해 보시지요. 그럴 때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내가 회초리를 들고 내 아들을 모질게 때려야지요. 남들이 때리기 전에 말입니다. 더 아플지 몰라도 아버지가 때리는 게 낫지 남이 때리는 게 낫겠습니까. 그게 아버지의 심정 아닙니까?
YS도 1년 뒤면 대통령이 아닙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될지, 혹은 신한국당내의 이회창씨나 이한동씨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이한동씨라면 모르지만 이회창씨나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현철씨는 무조건 구속일 겁니다. 그때 구속되면 몇 년을 살아야 할 지 모를 겁니다. 차라리 아버지인 YS가 대통령인 지금, 현철씨가 구속되고 형을 살면 다음 대통령이 현철씨를 사면시켜줄지 모릅니다. 제가 YS를 만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대통령으로 현철씨를 바라보지 마시고 아버지로서 현철씨를 대하십시요’라고 말입니다. 오늘의 현철 씨를 저렇게 만든 게 따지고 보면 YS 아닙니까? 그냥 회사나 다니게 했으면 저렇게 됐겠습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현철씨 얘기만 들으니 현철씨가 저렇게 된 겁니다. 아버지의 죄입니다.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김 실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듣고 보니 그렇소. 내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종합해서 대통령께 보고하리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언론인들을 만나는 중이오. 다시 연락을 드리겠소.”

이틀인가 뒤였던 거 같다. 검찰은 김현철씨를 전격 소환했다.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였다. 그러나 대가성이 입증되진 않았다. 그러니 구속여부는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김현철씨가 소환되는 당일 날 아침이었다. 위로도 할 겸 내가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다소 흥분된 목소리였지만 그렇다고 낙심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단 한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때 나올 수 있을 거야. 다 얘기하면 괜찮아. 대가성은 없어. 바빠서 전화 끊는다.”

그러나 그는 나오지 못했다. 바로 구속됐다. 돈을 받은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대가성은 검찰도 입증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세포탈죄를 적용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정치적 사건에 조세포탈죄를 적용했던 건 처음이었던 거 같다.

훗날 지나가는 말처럼 다른 사람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사실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 사람의 전언으로는 나를 만난 김 실장이 다음날 아침 YS에게 보고를 하자 YS가 그 자리에서 결심을 굳혔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YS는 현철씨에게 단 한마디의 언질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속 당일 현철씨가 아침에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고 했는데 YS는 오지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나는 현철씨를 보지 못했다. 이후 10년 동안 전화 통화 몇 번이 고작이다. 우선 그가 나를 찾지 않았다. 나로선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구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걸까? 아니면 내가 인터뷰 했던 게 내가 자기를 속인 거라 생각하는 걸까?

나도 그를 찾지 않았다. 미안해서다. 인터뷰 한 게 미안했고 김광일 실장한테 그런 말한 게 미안했다. 그러나 후회하진 않았다. 기자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현철씨 구속을 즈음해 신한국당 개편이 있었다. 민심수습차원의 당정개편이었다. 나는 당연히 이회창씨가 쉽게 당대표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한동씨 쪽에서 연락이 왔다. 당 대표가 될 거 같다는 얘기였다. 청와대로부터 언질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현철씨를 살리고자 이한동씨를 당대표에 앉히는 건 아닌가?....선거를 10여개월 앞두고 지금 당대표를 시킨다는 건 대권후보를 시킨다는 얘긴데...’

문득 내가 김광일 실장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한동씨가 대통령이 되면 현철씨가 온전할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가 된다면 온전하기 어렵다는 말 말이다.

그러나 이한동씨는 당대표가 되지 못했다. 허주 김윤환씨는 당시 이회창 만들기에 나선 때였다. 내가 듣기로는 허주가 ‘이한동을 대표시키면 이회창 세력은 탈당하겠다’고 위협했다는 거였다. 그럴 경우 YS는 그대로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당시 분위기로는 임기를 채우기조차 힘들었을지 모른다. 그 정도로 엉망이었다. 결국 이회창씨가 당대표가 됐다.

나는 이후 정국상황을 현철씨란 프리즘을 통해서 보는 재미를 붙였다. 이해하기 힘든 정치상황이 벌어질 때 현철씨 문제를 대입해서 진단하면 그림이 그려졌다. 현직 대통령인 YS의 현철씨를 향한 집착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볼 땐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다.

YS와 이회창씨 문제만 해도 그렇다. YS가 이회창씨를 그토록 미워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현철씨 문제를 대입하면 미워할 이유가 있었다. 한보 비리 문제에 단호했고 현철씨를 엄호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짐작이지만 YS는 이회창씨가 대권을 쥐는 걸 원치 않았던 것 같다. 민주계인 서청원 의원이 이수성 전총리를 대통령 만들겠다고 나선 것도 그렇다. 서청원 의원이 YS의 지시 없이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이인제씨가 끝까지 대통령 선거에 임할 수 있도록 YS가 내버려 둔 것도 그렇다. 막을려면 막을 수 있는 게 이인제씨와 YS의 관계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사실 이인제씨만 아니었다면 이회창씨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YS가 지금까지도 DJ 욕을 하는 거라 나는 본다. 전후 사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고마운 줄 모른다는 것일지 모른다. DJ가 집권후에도 현철씨 문제를 봐주지 않았다는 섭섭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DJ 집권 초창기에 청와대를 출입해서 나는 안다. DJ로서는 하느라고 노력한 게 사실이다. 다만 여론에 민감한 DJ였기에 YS처럼 무대포로 봐주진 못했을 거다.

현철씨가 투옥중일 때 그를 면회한 한 민주계 당직자가 있었다.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 진행될 때였다. 나는 일부러 그를 찾아가 만났다. 그리고 물어봤다.

“현철씨는 이인제씨가 어떻게 할 걸로 봐? 중도하차할 걸로 보나, 아니면 끝까지 갈 걸로 보나?”

그도 조심스러웠는지 주어가 없는 문장으로 대답했다.

“끝까지 가야지 무슨 소리야?”
“아니 현철씨가 뭐라고 하더냐고?”
“........”

당시 정치부 기자들끼리 내기가 있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였다. 만원씩을 거둬 맞춘 사람끼리 나눠먹는 거였다. 대부분이 이회창이었다. 그러나 난 DJ한테 걸었다. 이인제씨가 끝까지 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DJ가 이인제씨를 버린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이인제 때문에 대통령이 됐지만 DJ당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회창 낙선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 같은 결과지만 동기를 보는 거다. 동기는 내가 아니라 YS라 보는 거다. 그러니 이인제 씨한텐 빚이 없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어찌 보면 버리는 게 당연했을지 모른다.비정한 정치의 세계에선 말이다.

현철씨라는 한 개인의 변수가 다른 변수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이처럼 대한민국의 역사 자체를 바꾼 셈이다. 그래서 정치는 무서운 거다. 그래서 재밌는 거다.
이연홍 대표

댓글이 18 개 있습니다.

  • 1 0
    정신 못차린

    재밋는 현철!

  • 24 30
    봄나그네

    짜증스런 정치판 있는 그대로 그린 느낌...
    미화하지도 덧칠하지도 않고....
    짜증스러운 정치판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느낌이다.
    이연홍 대표는 사실주의 기자다.

  • 24 29
    행복

    현철씨가 이 글을 봤음 좋겠네요
    그럼 시원하게 회포한잔 나누세요
    선후배도 기자와 대통령의 아들도 아닌 아닌 남자대 남자로
    정치란거 잼있네요

  • 26 28
    라이온

    세상의 진리
    10여년 전 정확한 날짜는 기억할 수 없으나 동아일보 만화 만평에 청와대 경호실의 호위와 경호속에 로얄 싸롱 승용차 뒤에 로얄 프린스 승용차가 지나가는 만평을 보며 가슴이 쓰린 기억이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변하긴 변하는 것 같다.
    산정상에 있을 때는 항상 내려올 때(하산)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기자님! 세상의 진리를 당신의 칼럼을 읽고 다시 한번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30 15
    갈릭

    대통령도 아버지는 아버지..
    아무리 대통령이어도 우리 아버지만 못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기사였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최고!!!!!!!

  • 33 27
    프리

    행복이란?
    인간의 행복이 무었인지? 대통령도 소통령도 결국은 행복하지못하였지! 행복이란? 1.HOME SWEET HOME : 따뜻한가정 2.HEART : 일에대한열정 3.HUMAN RELATION: 인연을살려가며상생의삶 4.HUMBLE & SIMPLE LIFE :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기 5. HAND : 즐겁게 평생을 노동하기 6. HEALTH : 건강하기 7. HUMAN DEPRECIATION : 육체적 정신적 감가상각을 극복하며 살기 8. HOPE : 소망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하여 발원하고 기도하며 살기 9. HOBBY :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살기 10. HABIT :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좋은 습관들을 갖기 11. HONESTY : 정직하고 성실하며 바르게 살기 12. HOSTSHIP : 주인 정신을 가지고 살기 13. HAPPINESS : 행복에 이르는 길 . 남자나이 40살 방황아닌 꿈을꾼다!

  • 37 20
    로얄제리

    있는것들이...
    정말 비호감이에요...
    왜들 지전분 한지 화장실에 변보도 뒤는 닦는지 몰라~ 퉤~
    기자님 덕에 저희 민간인 들이
    그나마 사는것 같아요...
    존경합니다 이연홍님...

  • 23 26
    만원만

    YS가 때리는게 낫죠
    정말 YS가 때리는게 낫죠...
    그 상황에서 감싸고 돌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참...
    하여튼, 한 사람으로 인해 정치가 이래저래 바뀌는걸 보니
    재밌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 19 18
    복합

    그렇군요!!
    이연홍 기자님의 프로정신, 정말 대단하십니다!!
    기자란 정말 외로운 직업이군요..!

  • 27 27
    행인

    대단쓰..
    기사잘보고 갑니다. 구웃-

  • 26 28
    부산갈매기

    어긋난 사랑
    YS의 빗나간 자식(현철)사랑이 , 대한민국을 작살내 IMF 가오지않았는지? YS도 대통령이기전에 정신못차렸던 아버지... ㅉㅉㅉ

  • 22 21
    HOPE

    2인자
    전두한시절 장세동, 노태우시절 박철언, 김영삼시절 김현철, 김대중시절 박지원,2인자들의 말로는 감방! 노무현의2인자는 누구? 그의 말로는?

  • 23 31
    잠실우성

    이연홍을 서울시장으로
    참 인간적이고 솔직한분이군요 친구가권해서들렀는데 정말좋습니다감사드립니다

  • 37 17
    불친절한재동씨

    멋쟁이 이연홍
    내 살다살다
    신문기자중에 이렇게 글 잘쓰는 사람 처음이오
    너무 멋지신 이연홍대기자님

  • 33 28
    하얀머리

    이연홍 당신정말대단한사람이요
    이런기자가있다니 감동입니다

  • 32 22
    푸른하늘

    정말 재미 있어영 !! 최고!!
    이런 심각한 일을.. 재미있게 읽어서..지송스럽지만
    그래도 저같이 인생을 워낙 단순하게 사는
    사람에겐 증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수없네요..
    무섭기도 하고 스릴넘치기도 한.. 그런 멋찐(?)세계 같아영
    재미있는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여~~

  • 28 21
    등대지기

    아 현철아!
    참감동입니다 존경합니다

  • 32 20
    그런거였어

    오호통재라
    삼각관계가 재밌군요.
    김현철-이인제-이회창
    역사의 아이러니
    뒤안길의 음모와
    비정의 세계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군요.
    이인제의 고군분투
    드뎌 빛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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