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나라도 '술집 출연' 강요받았을 정도다"
[전문] 주호성씨 "한류 위기는 정부-언론-방송-포탈 공동책임"
'한류스타'인 만능 엔터테이너 장나라씨(26)의 아버지이자 연극배우인 주호성씨가 '한류(韓流)'의 위기원인을 우리 내부에서 찾은 뒤, 한 예로 장나라씨도 한때 조폭들로부터 술집에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압력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질타해 파문이 일고 있다.
주씨는 또 최근 잇따른 어린 연예인 자살에 언론, 포탈,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신랄하게 질타, 우리 사회의 근원적 자성을 촉구했다.
주호성 "아나운서는 고결하고 연예인은 저급한가?"
주 씨는 22일 장나라의 홈페이지 <나라장 닷컴>(www.narajjang.com)에 띄운 '한류와 한국 연예계의 우울증'이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최근 제기된 '한류 위기론'과 관련,"모처럼 우리에게 온 기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소득 없이 지나가려 하고 있다"며 "이제라도 부채질하고 협력하여 불씨를 살려내야 하나 깊이 따져보면 밖으로 알리고 전파시켜야 할 우리 대중문화가 실상은 안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병의 뿌리가 깊다"며 위기의 근원을 우리 내부에서 찾았다.
그는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은 대중문화를 업수이 여기는 오래된 관습에서 기인한다. 또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리하면 전시효과를 위해 연예인을 이용한 것이 원인이고, 무분별해진 연예 엔터테인먼트 투자 유치가 원인이며, 가판 경쟁의 흥미위주로 치달았던 언론이 원인"이라며 "이처럼 모체가 병들어 있으니, 대중문화의 해외 진출인 ‘한류’ 역시 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 예를 들어 "근자에는 어떤 여성 아나운서 사외활동 문제로 회자된 이야기 속에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라는 말이 있었다"며 "연예인이 어떻다는 것인가? 혹시 아나운서는 고결하고 연예인은 저급하다는 표현이 내포되어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오해인가? 혹시 그런 뜻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다면 우리나라의 교과서가 직업이 평등하다고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였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방송계를 힐난하기도 했다.
"언제가 딸에게 술집에서 노래 불러달라 거세게 요구했었다"
그는 이어 최근 파문을 불러일으킨 '김태촌의 권상우 협박'이 연예계에 일상화돼 있음에도 정부가 이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조직폭력이 연예계의 투자와 관리에 간여되었다는 보도는 있었어도 그곳에서 울고 있을 어린 연예인에 대한 고통이나 억울함에 관심 갖는 사람도 없고 보호장치를 개발하자는 정책적인 제안도 없다"며 "혹시 억울함이 있는 어린 연예 지망생이나 연예인이 있다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순간 모든 꿈과 소망을 접어야 한다. 전혀 사회적 장치가 없다. 이 시대에 자살을 선택한 어린 연예인들이 혹시 그런 억울함은 없었는지, 또 다른 울고 있는 연예인은 없는지 우리 사회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한다"고 질타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나는 언젠가 딸에게 술집에서 노래 불러달라고 거세게 요구하는 것을 견디다 못하여, 몇 날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대한민국 경찰청장실에 문의한 적이 있었다. '불안한 일이 있는데 비밀리에 조사와 보호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며 "답변은 '비밀리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사건으로 접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자신의 경험을 공개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만 접수하는 순간에 이미 사건 기자에게 노출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라며 "이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 연예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정당한 비밀에 대하여 보장받아야 한다"고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서 지망생 시절에 본의 아니게 속칭 ‘비디오’가 촬영될 수밖에 없었던 연예인이 있었다고 가정하고(여자 연예인의 경우 출세하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무명시절에 준비한 기타 약점들 포함) 오늘날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해보자"며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말 못하는 연예인에게 우리의 경찰이 그 ‘협박’이라는 범죄를 신고할 곳조차 막아놓는다면 그것 또한 ‘범죄 방조’는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언론-포탈-정부 모두 어린 연예인 자살 공범"
그는 또 최근 잇따른 어린 연예인들 자살의 한 요인이 된 것으로 알려진 '악플' 문제를 방치하는 포탈과 정부, 악플을 흥미위주로 기사화하는 언론 등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인터넷상의 낙서는 문제가 크다. 변명할 틈이 없이 일방적이고 군중적이다"라며 "예를 들어서 수백 개의 팬 페이지(해당 연예인이 좋아서 응원하는 팬들이 만드는)와 수십만 명의 회원이 있는 연예인에게 십여 개의 기십 명이 만든 안티페이지(해당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만드는 페이지)가 존재하면, 흥미위주의 언론은 곧잘 안티 페이지에만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곳에서 지어진 말들은 곧잘 기사화까지 하였다"고 흥미 위주 보도에 치중한 언론을 질타했다.
그는 또한 "정당한 비판이 아닌 욕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인터넷 상의 ‘피해가 있는 낙서’에 대하여 인터넷으로 돈 벌고 있는 업체들이나 주관하는 정부 부처가 방관하여 왔다"며 "그것이 오늘날 연예계 어린 연예인의 주검에 영향하지 않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포탈과 정부를 싸잡아 질타했다.
그는 "다가오는 범죄에 대해 신고할 곳도 없는 연예인, 정당한 비판이 아닌 욕설과 험담에 시달려야 하는 연예인, 회사의 배경에 있는 불순세력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연예인…, 그런 환경이 젊은 연예인의 자살과 관계가 있다면 비약일까"라고 반문한 뒤 "연예 전반에 걸친 보호 육성이 아쉽다. 한류를 위해 내강이 필요한데 정부가 나서주기를 기대한다"는 주문으로 글을 끝맺었다.
다음은 주호성씨의 글 전문.
한류와 한국 연예계의 우울증
한류는 한류(韓流)여야 한다
한류라 함은 우리 민족이 2000년을 전후하여 형성한 문화적 흐름으로 대중문화만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즉, 한류는 한국 사람을 좋아하고, 한국 공산품을 신뢰하며, 한국의 7,8,90년대의 고속성장을 부러워해서, 한국의 총체적인 문화를 선호하는 아시아 존의 기류를 표현한 말이다. 드라마, 영화, 대중음악 등의 우리 대중문화가 한류의 흐름에 큰 공을 세웠고, 현세 각국이 대중문화 경쟁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대중문화’만을 ‘한류’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또한 서구에서 관심이 좀 일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벌써 ‘한류’라고 지칭하는 것도 과한 것이다.
‘대중문화 한류’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겠는데, 하나는 국내에서 만들어져 저절로 이웃나라로 전파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직접적인 진출로 배우의 드라마, 영화 출연이나 가수의 무대 진출을 말할 수 있다. 수출입국을 주창하던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수출’이 대견한 것이고, 직접 진출로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 ‘대중문화 한류’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수출은 당장의 상업적 이익은 물론이려니와 정치논리를 앞서서 상대국의 대중과 친밀하게 되는 더없이 외교적인 가치와, 공산품의 수출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2,3,4차적 가치창출의 수단이다.
대중문화에는 저절로 생활과 의식이 내용에 담겨서 직접적으로 민족의 생각이나, 습관, 예절, 생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웃나라의 우리나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세 살 먹은 어린아이에게까지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며, 지역적으로 왜소한 우리나라의 입지를 세우는 데 ‘대중문화 수출’만큼 좋은 수단이 무엇인가?
그러니까, ‘대중문화 한류’는 정체성을 찾으면서도 이웃한 나라들과 친숙해질 수 있는 민족적 기회임에 틀림없다. ‘대중문화 한류’에서 문제가 된 것은 우리나라의 대응방법과 일부 대중예술인들의 진출방법, 그리고 문화패권주의적 언론보도로 확대 과장된 일들이 상대국을 눈살 찌푸리게 한 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류에서 민족적 자긍심과 정체성마저 없앤다면, 한류는 한낱 돈벌이에 지나지 않는 장삿속밖에는 되지 않는다. 한류는 지극히 한류(韓流)여야 한다. 한국적 문화의 흐름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대중문화는 안으로 앓고 있다
문화란 상위문화와 하위문화가 구조적으로 순환하는 것이다. 남의 것을 받아들여 좀더 발전시켜 상위문화로 자리잡게 할 수도 있고, 또 언젠가는 쇠퇴하거나 하위로 낙오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홍콩이 선도하던 중화권 문화가 우리나라에 옮겨왔다면,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대중문화를 격려 고무하여 우리나라의 문화를 확실하게 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민족의 현대적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문제는 모처럼 우리에게 온 기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소득 없이 지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부채질하고 협력하여 불씨를 살려내야 한다. 그러나 깊이 따져보면 밖으로 알리고 전파시켜야 할 우리 대중문화가 실상은 안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병의 뿌리가 깊다.
모든 병은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은 대중문화를 업수이 여기는 오래된 관습에서 기인한다. 또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리하면 전시효과를 위해 연예인을 이용한 것이 원인이고, 무분별해진 연예 엔터테인먼트 투자 유치가 원인이며, 가판 경쟁의 흥미위주로 치달았던 언론이 원인이었다.
이처럼 모체가 병들어 있으니, 대중문화의 해외 진출인 ‘한류’ 역시 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자유치를 위한 확대과장과 거짓 프로모션이 난무하고, 상대국의 관례를 무시하고 문화 패권주의에 젖어 점령이라도 한 듯이 큰소리 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상대국 관계자가 눈살 찌푸리는 줄도 모르고 한류 위주의 공연이 기획된 결과로 이른바 대중문화 한류는 시들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책적 지원이 빈약하여 일방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한류의 현주소이다. 상대국에는 암만 해도 국부유출을 경계하는 보수적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공감대를 얻어내려면 다른 나라의 대중문화가 들어 와 돈 벌어간다는 의식을 축소시켜야만 한다. 자기 공연의 성과를 자랑하고 떠벌일 일도 아니며 진솔하게 그리고 화합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가갈 일이다.
본인이 발표했던 논문 “장나라의 횡행천하’(2006 .10. 10. 중앙대학교 출판부)의 결론도 그러하지만 현대는 확실히 대중문화의 경쟁시대이다. 공산품의 수출도 중요하지만 문화의 수출이 현대적이고 효과적이다. 하루속히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우울증’이 치료되고, 맑고 밝은 문화가 자리하며 그것을 수출하는 일에 노력하여야 한다. 아시아 존에서 문화강국의 기치를 드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내부에서부터 대중문화를 지금보다 훨씬 더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어야 한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연예인 혹은 딴따라? 연예인을 보는 시각에 편견은 없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드라마 등에서 연기하는 배우들과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을 통칭하여 ‘연예인’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통칭하는 연예인에는 대중가수, 탤런트, 영화배우 등이 포함된다. 꽤 오래 전, 유명 성악가가 대중가수와 이중창을 해서 오랫동안 명곡으로 남겨진 노래를 녹음할 때, 순수음악가가 대중가수와 노래한다고 일부의 저항이 있었다.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을 구분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며 구분 자체를 탓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혹시, 대중가수 즉 ‘연예인’은 품위가 없다는 식의 의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말하는 것이다.
근자에는 어떤 여성 아나운서 사외활동 문제로 회자된 이야기 속에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라는 말이 있었다. 연예인이 어떻다는 것인가? 혹시 아나운서는 고결하고 연예인은 저급하다는 표현이 내포되어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오해인가? 혹시 그런 뜻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다면 우리나라의 교과서가 직업이 평등하다고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였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연예인은 자기의 재주와 노력으로 대중에게 휴식을 안겨주는 직업이다. 그의 재주가 훌륭한 연기나 노래일 수도 있고, 미모일 수도 있다. 미모를 추구한다고 해서 저급하다고 경시하는 것도 말이 안 되려니와, 일부 외모 지상주의적인 연예인이 있다고 해서 전체 연예인을 저급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더더구나 말이 되지 않는다. ‘연예인화’에 담긴 말뜻은 분명 연예인을 존중해서 ‘네가 감히 연예인이 되려느냐’는 뜻으로는 도무지 해석되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세월이 변하여 여러 분야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의혹을 파헤쳐도,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연예인들이 마약과 대마초 시련에서 어떤 억울함을 당하였는지는 파헤치려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마초와 관계된 자리에 본의 아니게 앉기만 했어도 생업을 포기해야 했던 억울함에 관심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일들이 혹시 딴따라, 광대로 천시하여 부르던 조상시대 때부터 내려온 무의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본다. 일반인이 반사회적 일에 가담이 되어 있는 것을 적발했을 때는 별로 큰 화제가 되지 않고, 연예인의 경우에는 화제의 집중이나 홍보효과가 훌륭하다 해서 사회적 단속보다 전시효과적인 연예인 때려잡기에 주력한 정권은 없는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하고, 그것이 연예인의 이미지 추락과 경시풍조의 원인은 아니었는지 반성하여야 한다.
연예인의 인권은 얼마나 보호되고 있는가?
조직폭력이 연예계의 투자와 관리에 간여되었다는 보도는 있었어도 그곳에서 울고 있을 어린 연예인에 대한 고통이나 억울함에 관심 갖는 사람도 없고 보호장치를 개발하자는 정책적인 제안도 없다. 혹시 억울함이 있는 어린 연예 지망생이나 연예인이 있다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순간 모든 꿈과 소망을 접어야 한다. 전혀 사회적 장치가 없다. 이 시대에 자살을 선택한 어린 연예인들이 혹시 그런 억울함은 없었는지, 또 다른 울고 있는 연예인은 없는지 우리 사회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언젠가 딸에게 술집에서 노래 불러달라고 거세게 요구하는 것을 견디다 못하여, 몇 날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대한민국 경찰청장실에 문의한 적이 있었다. “불안한 일이 있는데 비밀리에 조사와 보호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비밀리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사건으로 접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접수하는 순간에 이미 사건 기자에게 노출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이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 연예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정당한 비밀에 대하여 보장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지망생 시절에 본의 아니게 속칭 ‘비디오’가 촬영될 수밖에 없었던 연예인이 있었다고 가정하고(여자 연예인의 경우 출세하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무명시절에 준비한 기타 약점들 포함) 오늘날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해보자.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말 못하는 연예인에게 우리의 경찰이 그 ‘협박’이라는 범죄를 신고할 곳조차 막아놓는다면 그것 또한 ‘범죄 방조’는 아닌가? 우리는 신문에서 “은밀 내사” “도청” 등의 단어를 익숙하게 보아온 국민이다. 비밀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은 선택적이라는 뜻이냐고 묻고 싶다. 의사라는 직업도 환자의 신체상 비밀유지를 지키기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법리에서도 피해자의 노출을 보호해 주어야 인권이 보장될 것이다. <김모씨(43세,상업)> 등으로 표기해온 언론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김모씨(43세,상업)>는 절대 보호된 명칭이다. 그러나 <연예인 J양>은 절대로 보호된 명칭이 아니다. 범죄자인 경우라면 몰라도 피해자인 경우에 <연예인>이라는 직업에서부터 보호되어야 피해자 보호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 화장실회벽에 ‘양호선생님과 영어선생님이 했다”라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낙서를 흔히 보았다. 그 낙서는 한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웃어버리고 마는 무료한 시간의 유희이고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청소날 손톱이 까지도록 낙서를 지우며 낄낄대던 추억이 지금도 새롭다. 낙서의 즐거움도 있었다. 그 옛날 화장실 낙서는 낭만이 있었다. 하지만 현세에 이르러 인터넷상의 낙서는 문제가 크다. 변명할 틈이 없이 일방적이고 군중적이다. 예를 들어서 수백 개의 팬 페이지(해당 연예인이 좋아서 응원하는 팬들이 만드는)와 수십만 명의 회원이 있는 연예인에게 십여 개의 기십 명이 만든 안티페이지(해당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만드는 페이지)가 존재하면, 흥미위주의 언론은 곧잘 안티 페이지에만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곳에서 지어진 말들은 곧잘 기사화까지 하였다. 또한 정당한 비판이 아닌 욕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인터넷 상의 ‘피해가 있는 낙서’에 대하여 인터넷으로 돈 벌고 있는 업체들이나 주관하는 정부 부처가 방관하여 왔다. 그것이 오늘날 연예계 어린 연예인의 주검에 영향하지 않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실명제와 단속이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언젠가 아이피 추적과 발 빠른 대처로 범인을 체포하기까지 한 경력이 있는 대한민국이다.
다가오는 범죄에 대하여 신고할 곳조차 없는 연예인, 정당한 비판이 아닌 욕설과 지어낸 험담에 시달려야 하는 연예인, 회사의 배경에 있는 불순 세력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연예인... 그런 환경이 이 시대의 젊은 연예인 자살과 관계가 있다면 비약일까? 그것이 심약한 어린 여성들의 문제라고, 그들이 허황한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치르는 대가라고 가벼이 넘길 수 있는 문제일까? 그것이 과연 어린 연예인 만의 문제이고 연예계만의 문제일까? 어린 연예인의 우울증은 우리 연예계의 우울증이고 우리 사회의 우울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연예계가 앓고 있는 병은 바로 그런 우울증이다. 연예 전반에 걸친 보호 육성이 아쉽다. 대중문화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밖으로 진출하는 우리의 대중문화 ‘한류’를 위해서도 내강이 필요하다. 정부가 나서주기 기대한다. 나설 만하다.
주호성
연극배우.북경나라문화전파유한공사 대표
주씨는 또 최근 잇따른 어린 연예인 자살에 언론, 포탈,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신랄하게 질타, 우리 사회의 근원적 자성을 촉구했다.
주호성 "아나운서는 고결하고 연예인은 저급한가?"
주 씨는 22일 장나라의 홈페이지 <나라장 닷컴>(www.narajjang.com)에 띄운 '한류와 한국 연예계의 우울증'이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최근 제기된 '한류 위기론'과 관련,"모처럼 우리에게 온 기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소득 없이 지나가려 하고 있다"며 "이제라도 부채질하고 협력하여 불씨를 살려내야 하나 깊이 따져보면 밖으로 알리고 전파시켜야 할 우리 대중문화가 실상은 안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병의 뿌리가 깊다"며 위기의 근원을 우리 내부에서 찾았다.
그는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은 대중문화를 업수이 여기는 오래된 관습에서 기인한다. 또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리하면 전시효과를 위해 연예인을 이용한 것이 원인이고, 무분별해진 연예 엔터테인먼트 투자 유치가 원인이며, 가판 경쟁의 흥미위주로 치달았던 언론이 원인"이라며 "이처럼 모체가 병들어 있으니, 대중문화의 해외 진출인 ‘한류’ 역시 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 예를 들어 "근자에는 어떤 여성 아나운서 사외활동 문제로 회자된 이야기 속에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라는 말이 있었다"며 "연예인이 어떻다는 것인가? 혹시 아나운서는 고결하고 연예인은 저급하다는 표현이 내포되어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오해인가? 혹시 그런 뜻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다면 우리나라의 교과서가 직업이 평등하다고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였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방송계를 힐난하기도 했다.
"언제가 딸에게 술집에서 노래 불러달라 거세게 요구했었다"
그는 이어 최근 파문을 불러일으킨 '김태촌의 권상우 협박'이 연예계에 일상화돼 있음에도 정부가 이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조직폭력이 연예계의 투자와 관리에 간여되었다는 보도는 있었어도 그곳에서 울고 있을 어린 연예인에 대한 고통이나 억울함에 관심 갖는 사람도 없고 보호장치를 개발하자는 정책적인 제안도 없다"며 "혹시 억울함이 있는 어린 연예 지망생이나 연예인이 있다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순간 모든 꿈과 소망을 접어야 한다. 전혀 사회적 장치가 없다. 이 시대에 자살을 선택한 어린 연예인들이 혹시 그런 억울함은 없었는지, 또 다른 울고 있는 연예인은 없는지 우리 사회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한다"고 질타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나는 언젠가 딸에게 술집에서 노래 불러달라고 거세게 요구하는 것을 견디다 못하여, 몇 날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대한민국 경찰청장실에 문의한 적이 있었다. '불안한 일이 있는데 비밀리에 조사와 보호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며 "답변은 '비밀리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사건으로 접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자신의 경험을 공개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만 접수하는 순간에 이미 사건 기자에게 노출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라며 "이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 연예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정당한 비밀에 대하여 보장받아야 한다"고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서 지망생 시절에 본의 아니게 속칭 ‘비디오’가 촬영될 수밖에 없었던 연예인이 있었다고 가정하고(여자 연예인의 경우 출세하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무명시절에 준비한 기타 약점들 포함) 오늘날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해보자"며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말 못하는 연예인에게 우리의 경찰이 그 ‘협박’이라는 범죄를 신고할 곳조차 막아놓는다면 그것 또한 ‘범죄 방조’는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언론-포탈-정부 모두 어린 연예인 자살 공범"
그는 또 최근 잇따른 어린 연예인들 자살의 한 요인이 된 것으로 알려진 '악플' 문제를 방치하는 포탈과 정부, 악플을 흥미위주로 기사화하는 언론 등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인터넷상의 낙서는 문제가 크다. 변명할 틈이 없이 일방적이고 군중적이다"라며 "예를 들어서 수백 개의 팬 페이지(해당 연예인이 좋아서 응원하는 팬들이 만드는)와 수십만 명의 회원이 있는 연예인에게 십여 개의 기십 명이 만든 안티페이지(해당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만드는 페이지)가 존재하면, 흥미위주의 언론은 곧잘 안티 페이지에만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곳에서 지어진 말들은 곧잘 기사화까지 하였다"고 흥미 위주 보도에 치중한 언론을 질타했다.
그는 또한 "정당한 비판이 아닌 욕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인터넷 상의 ‘피해가 있는 낙서’에 대하여 인터넷으로 돈 벌고 있는 업체들이나 주관하는 정부 부처가 방관하여 왔다"며 "그것이 오늘날 연예계 어린 연예인의 주검에 영향하지 않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포탈과 정부를 싸잡아 질타했다.
그는 "다가오는 범죄에 대해 신고할 곳도 없는 연예인, 정당한 비판이 아닌 욕설과 험담에 시달려야 하는 연예인, 회사의 배경에 있는 불순세력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연예인…, 그런 환경이 젊은 연예인의 자살과 관계가 있다면 비약일까"라고 반문한 뒤 "연예 전반에 걸친 보호 육성이 아쉽다. 한류를 위해 내강이 필요한데 정부가 나서주기를 기대한다"는 주문으로 글을 끝맺었다.
다음은 주호성씨의 글 전문.
한류와 한국 연예계의 우울증
한류는 한류(韓流)여야 한다
한류라 함은 우리 민족이 2000년을 전후하여 형성한 문화적 흐름으로 대중문화만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즉, 한류는 한국 사람을 좋아하고, 한국 공산품을 신뢰하며, 한국의 7,8,90년대의 고속성장을 부러워해서, 한국의 총체적인 문화를 선호하는 아시아 존의 기류를 표현한 말이다. 드라마, 영화, 대중음악 등의 우리 대중문화가 한류의 흐름에 큰 공을 세웠고, 현세 각국이 대중문화 경쟁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대중문화’만을 ‘한류’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또한 서구에서 관심이 좀 일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벌써 ‘한류’라고 지칭하는 것도 과한 것이다.
‘대중문화 한류’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겠는데, 하나는 국내에서 만들어져 저절로 이웃나라로 전파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직접적인 진출로 배우의 드라마, 영화 출연이나 가수의 무대 진출을 말할 수 있다. 수출입국을 주창하던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수출’이 대견한 것이고, 직접 진출로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 ‘대중문화 한류’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수출은 당장의 상업적 이익은 물론이려니와 정치논리를 앞서서 상대국의 대중과 친밀하게 되는 더없이 외교적인 가치와, 공산품의 수출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2,3,4차적 가치창출의 수단이다.
대중문화에는 저절로 생활과 의식이 내용에 담겨서 직접적으로 민족의 생각이나, 습관, 예절, 생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웃나라의 우리나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세 살 먹은 어린아이에게까지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며, 지역적으로 왜소한 우리나라의 입지를 세우는 데 ‘대중문화 수출’만큼 좋은 수단이 무엇인가?
그러니까, ‘대중문화 한류’는 정체성을 찾으면서도 이웃한 나라들과 친숙해질 수 있는 민족적 기회임에 틀림없다. ‘대중문화 한류’에서 문제가 된 것은 우리나라의 대응방법과 일부 대중예술인들의 진출방법, 그리고 문화패권주의적 언론보도로 확대 과장된 일들이 상대국을 눈살 찌푸리게 한 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류에서 민족적 자긍심과 정체성마저 없앤다면, 한류는 한낱 돈벌이에 지나지 않는 장삿속밖에는 되지 않는다. 한류는 지극히 한류(韓流)여야 한다. 한국적 문화의 흐름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대중문화는 안으로 앓고 있다
문화란 상위문화와 하위문화가 구조적으로 순환하는 것이다. 남의 것을 받아들여 좀더 발전시켜 상위문화로 자리잡게 할 수도 있고, 또 언젠가는 쇠퇴하거나 하위로 낙오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홍콩이 선도하던 중화권 문화가 우리나라에 옮겨왔다면,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대중문화를 격려 고무하여 우리나라의 문화를 확실하게 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민족의 현대적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문제는 모처럼 우리에게 온 기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소득 없이 지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부채질하고 협력하여 불씨를 살려내야 한다. 그러나 깊이 따져보면 밖으로 알리고 전파시켜야 할 우리 대중문화가 실상은 안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병의 뿌리가 깊다.
모든 병은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은 대중문화를 업수이 여기는 오래된 관습에서 기인한다. 또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리하면 전시효과를 위해 연예인을 이용한 것이 원인이고, 무분별해진 연예 엔터테인먼트 투자 유치가 원인이며, 가판 경쟁의 흥미위주로 치달았던 언론이 원인이었다.
이처럼 모체가 병들어 있으니, 대중문화의 해외 진출인 ‘한류’ 역시 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자유치를 위한 확대과장과 거짓 프로모션이 난무하고, 상대국의 관례를 무시하고 문화 패권주의에 젖어 점령이라도 한 듯이 큰소리 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상대국 관계자가 눈살 찌푸리는 줄도 모르고 한류 위주의 공연이 기획된 결과로 이른바 대중문화 한류는 시들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책적 지원이 빈약하여 일방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한류의 현주소이다. 상대국에는 암만 해도 국부유출을 경계하는 보수적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공감대를 얻어내려면 다른 나라의 대중문화가 들어 와 돈 벌어간다는 의식을 축소시켜야만 한다. 자기 공연의 성과를 자랑하고 떠벌일 일도 아니며 진솔하게 그리고 화합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가갈 일이다.
본인이 발표했던 논문 “장나라의 횡행천하’(2006 .10. 10. 중앙대학교 출판부)의 결론도 그러하지만 현대는 확실히 대중문화의 경쟁시대이다. 공산품의 수출도 중요하지만 문화의 수출이 현대적이고 효과적이다. 하루속히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우울증’이 치료되고, 맑고 밝은 문화가 자리하며 그것을 수출하는 일에 노력하여야 한다. 아시아 존에서 문화강국의 기치를 드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내부에서부터 대중문화를 지금보다 훨씬 더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어야 한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연예인 혹은 딴따라? 연예인을 보는 시각에 편견은 없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드라마 등에서 연기하는 배우들과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을 통칭하여 ‘연예인’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통칭하는 연예인에는 대중가수, 탤런트, 영화배우 등이 포함된다. 꽤 오래 전, 유명 성악가가 대중가수와 이중창을 해서 오랫동안 명곡으로 남겨진 노래를 녹음할 때, 순수음악가가 대중가수와 노래한다고 일부의 저항이 있었다.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을 구분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며 구분 자체를 탓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혹시, 대중가수 즉 ‘연예인’은 품위가 없다는 식의 의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말하는 것이다.
근자에는 어떤 여성 아나운서 사외활동 문제로 회자된 이야기 속에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라는 말이 있었다. 연예인이 어떻다는 것인가? 혹시 아나운서는 고결하고 연예인은 저급하다는 표현이 내포되어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오해인가? 혹시 그런 뜻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다면 우리나라의 교과서가 직업이 평등하다고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였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연예인은 자기의 재주와 노력으로 대중에게 휴식을 안겨주는 직업이다. 그의 재주가 훌륭한 연기나 노래일 수도 있고, 미모일 수도 있다. 미모를 추구한다고 해서 저급하다고 경시하는 것도 말이 안 되려니와, 일부 외모 지상주의적인 연예인이 있다고 해서 전체 연예인을 저급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더더구나 말이 되지 않는다. ‘연예인화’에 담긴 말뜻은 분명 연예인을 존중해서 ‘네가 감히 연예인이 되려느냐’는 뜻으로는 도무지 해석되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세월이 변하여 여러 분야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의혹을 파헤쳐도,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연예인들이 마약과 대마초 시련에서 어떤 억울함을 당하였는지는 파헤치려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마초와 관계된 자리에 본의 아니게 앉기만 했어도 생업을 포기해야 했던 억울함에 관심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일들이 혹시 딴따라, 광대로 천시하여 부르던 조상시대 때부터 내려온 무의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본다. 일반인이 반사회적 일에 가담이 되어 있는 것을 적발했을 때는 별로 큰 화제가 되지 않고, 연예인의 경우에는 화제의 집중이나 홍보효과가 훌륭하다 해서 사회적 단속보다 전시효과적인 연예인 때려잡기에 주력한 정권은 없는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하고, 그것이 연예인의 이미지 추락과 경시풍조의 원인은 아니었는지 반성하여야 한다.
연예인의 인권은 얼마나 보호되고 있는가?
조직폭력이 연예계의 투자와 관리에 간여되었다는 보도는 있었어도 그곳에서 울고 있을 어린 연예인에 대한 고통이나 억울함에 관심 갖는 사람도 없고 보호장치를 개발하자는 정책적인 제안도 없다. 혹시 억울함이 있는 어린 연예 지망생이나 연예인이 있다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순간 모든 꿈과 소망을 접어야 한다. 전혀 사회적 장치가 없다. 이 시대에 자살을 선택한 어린 연예인들이 혹시 그런 억울함은 없었는지, 또 다른 울고 있는 연예인은 없는지 우리 사회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언젠가 딸에게 술집에서 노래 불러달라고 거세게 요구하는 것을 견디다 못하여, 몇 날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대한민국 경찰청장실에 문의한 적이 있었다. “불안한 일이 있는데 비밀리에 조사와 보호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비밀리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사건으로 접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접수하는 순간에 이미 사건 기자에게 노출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이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 연예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정당한 비밀에 대하여 보장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지망생 시절에 본의 아니게 속칭 ‘비디오’가 촬영될 수밖에 없었던 연예인이 있었다고 가정하고(여자 연예인의 경우 출세하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무명시절에 준비한 기타 약점들 포함) 오늘날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해보자.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말 못하는 연예인에게 우리의 경찰이 그 ‘협박’이라는 범죄를 신고할 곳조차 막아놓는다면 그것 또한 ‘범죄 방조’는 아닌가? 우리는 신문에서 “은밀 내사” “도청” 등의 단어를 익숙하게 보아온 국민이다. 비밀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은 선택적이라는 뜻이냐고 묻고 싶다. 의사라는 직업도 환자의 신체상 비밀유지를 지키기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법리에서도 피해자의 노출을 보호해 주어야 인권이 보장될 것이다. <김모씨(43세,상업)> 등으로 표기해온 언론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김모씨(43세,상업)>는 절대 보호된 명칭이다. 그러나 <연예인 J양>은 절대로 보호된 명칭이 아니다. 범죄자인 경우라면 몰라도 피해자인 경우에 <연예인>이라는 직업에서부터 보호되어야 피해자 보호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 화장실회벽에 ‘양호선생님과 영어선생님이 했다”라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낙서를 흔히 보았다. 그 낙서는 한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웃어버리고 마는 무료한 시간의 유희이고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청소날 손톱이 까지도록 낙서를 지우며 낄낄대던 추억이 지금도 새롭다. 낙서의 즐거움도 있었다. 그 옛날 화장실 낙서는 낭만이 있었다. 하지만 현세에 이르러 인터넷상의 낙서는 문제가 크다. 변명할 틈이 없이 일방적이고 군중적이다. 예를 들어서 수백 개의 팬 페이지(해당 연예인이 좋아서 응원하는 팬들이 만드는)와 수십만 명의 회원이 있는 연예인에게 십여 개의 기십 명이 만든 안티페이지(해당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만드는 페이지)가 존재하면, 흥미위주의 언론은 곧잘 안티 페이지에만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곳에서 지어진 말들은 곧잘 기사화까지 하였다. 또한 정당한 비판이 아닌 욕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인터넷 상의 ‘피해가 있는 낙서’에 대하여 인터넷으로 돈 벌고 있는 업체들이나 주관하는 정부 부처가 방관하여 왔다. 그것이 오늘날 연예계 어린 연예인의 주검에 영향하지 않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실명제와 단속이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언젠가 아이피 추적과 발 빠른 대처로 범인을 체포하기까지 한 경력이 있는 대한민국이다.
다가오는 범죄에 대하여 신고할 곳조차 없는 연예인, 정당한 비판이 아닌 욕설과 지어낸 험담에 시달려야 하는 연예인, 회사의 배경에 있는 불순 세력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연예인... 그런 환경이 이 시대의 젊은 연예인 자살과 관계가 있다면 비약일까? 그것이 심약한 어린 여성들의 문제라고, 그들이 허황한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치르는 대가라고 가벼이 넘길 수 있는 문제일까? 그것이 과연 어린 연예인 만의 문제이고 연예계만의 문제일까? 어린 연예인의 우울증은 우리 연예계의 우울증이고 우리 사회의 우울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연예계가 앓고 있는 병은 바로 그런 우울증이다. 연예 전반에 걸친 보호 육성이 아쉽다. 대중문화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밖으로 진출하는 우리의 대중문화 ‘한류’를 위해서도 내강이 필요하다. 정부가 나서주기 기대한다. 나설 만하다.
주호성
연극배우.북경나라문화전파유한공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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