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교수 "정부, 국민에게 거짓말한 대가 톡톡히 치러"
"무능하거나 국민 상대로 사기를 친 셈"
내달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이준구 교수는 이날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연말정산을 둘러싼 엄청난 파동은 정부, 여당이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 동안 박근혜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지난 번 세제개혁을 발표할 때도 증세가 될 것이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그 세제개혁으로 인해 소득세 세수가 거의 1조원 가깝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부는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정부가 증세효과가 발생할 것인지 모르고 세제개혁을 추진했느냐 아니면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추진했느냐는 의문"이라며 "만약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이것은 용서 받지 못할 무능이다. 그것이 아니고 은밀하게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세제개혁을 추진했다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셈"이라고 질타하기까지 했다.
그는 정부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하고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해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는 어디서 얼마만큼을 더 걷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담배세 파동, 연말정산 파동 같은 일들이 반복되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이미 땅바닥으로 떨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추락한다면 그것은 이만저만 불행한 일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이 교수 글 전문.
연말정산 파동 - '감추어진 증세'가 문제의 핵심이다
연말정산 파동에 대해 정부, 여당은 소급입법에 의한 연말재정산이라는 궁색하기 짝이 없는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평소의 새누리당이라면 소급입법이란 말이 나와도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을 텐데, 민심이 흉흉한 걸 알기는 하나 봅니다.
연말정산을 둘러싼 엄청난 파동은 정부, 여당이 스스로 불러온 재앙입니다.
고의였든 아니었든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겁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번 세제개혁의 핵심 포인트는 소득세상의 공제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신문에 자주 해설기사가 등장했기 때문에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그렇게 바꾸면 고소득층의 조세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무거워지는 변화가 발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지요.
(사실 나도 오래 전부터 그와 같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바 있습니다.)
그런데 세제개혁을 할 때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조세수입에 변화가 없다는 의미에서의 세수중립성(revenue neutrality)을 유지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이것은 조세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식 중에서 가장 평범한 상식에 속하는 사항입니다.
다시 말해 증세 혹은 감세가 필요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조세수입에는 변화가 없다는 큰 틀하에서 세제개혁을 진행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 뜻입니다.
그 동안 박근혜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세제개혁을 발표할 때도 증세가 될 것이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세제개혁은 당연히 세수중립성을 갖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그 세제개혁으로 인해 소득세 세수가 거의 1조원 가깝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부는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셈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게 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증세효과가 발생할 것인지 모르고 세제개혁을 추진했느냐 아니면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추진했느냐는 의문입니다.
만약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이것은 용서 받지 못할 무능입니다.
정부가 간단한 시뮬레이션 몇 번 돌리면 금새 알아낼 수 있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면 그건 정말로 용서 받기 힘든 일이지요.
그것이 아니고 은밀하게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세제개혁을 추진했다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셈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런 정부의 비상식적이며 무책임한 행동의 피해자 중 한 사람입니다.
오늘 한겨레신문에 퇴임관련 인터뷰가 실린 것을 보신 분이 있으실 겁니다.
인터뷰를 할 때 기자분이 대뜸 나에게 연말정산 파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그때만 해도 나는 지난 번의 세제개혁이 세금을 더 거둬가는 효과를 갖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단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데 따른 소득계층간 조세부담의 이동만이 문제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본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것은 잘못된 대답이 된 셈입니다.
'감추어진 증세'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할 만한 발언을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정부가 한 거짓말의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더러 재정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어떻게 진실을 모르고 있었느냐고 질책하는 분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특별히 정부를 의심해야 할 만한 이유가 없는 한 일단은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재정 전문가라 하더라도 정부가 모든 데이터를 제공하기 전에는 세제개혁이 조세수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부가 상식적으로 행동할 것으로 믿은 내가 잘못한 겁니다.
내가 늘 주장하는 바지만, 증세 없이 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허황된 주장은 이제 접어야 합니다.
국민에게 사죄하고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해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어디서 얼마만큼을 더 걷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합리적 수순을 밟지 않고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더 거둬 가려고 하니 국민의 분노를 불러온 것입니다.
소득세를 더 거둔다는 말 한마디도 없다가 갑자기 연말정산 세금폭탄을 안기니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담배세 파동, 연말정산 파동 같은 일들이 반복되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이미 땅바닥으로 떨어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추락한다면 그것은 이만저만 불행한 일이 아닙니다.
정권을 잡은 사람은 물론 온 국민이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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