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탄식 "미국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고"
미국 내수 급랭, 유럽 재정불안 확산에 국내금융시장 휘청
주가가 폭락한 25일 금융시장에서 흘러나온 탄식이다. 기대와는 달리 연초부터 미국·유럽의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기는커녕 불황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이러다 '더블딥'에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택-소비경기 급랭
우선 미국쪽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영 불길하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던 주택경기가 심상찮다. 미국의 신축주택 판매 실적이 석달 연속 감소하면서 사상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신축주택 판매 실적은 30만9천채(연율환산 기준)로 전월에 비해 11.2% 감소했다고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관련통계의 작성이 시작된 1963년 이후 47년 만에 최저치로, 사실상 사상 최저치라는 의미다.
이는 시장 예상치 36만채를 크게 밑도는 것으로, 미국 주택경기가 다시 급랭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1월 실적은 주택경기가 최악의 국면을 나타내던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서도 6.1% 감소한 것으로, '2차 주택경기 침체'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전날엔 충격적 소비 급랭 소식이 있었다.
미국 민간경제조사단체인 콘퍼런스보드는 2월 소비자 신뢰지수가 46.0으로 전월의 56.5(수정치)에 비해 크게 떨어져 지난해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예측치 55.0보다 크게 낮은 것이어서, 시장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6개월 후 상황을 예측하는 기대지수 역시 1월 77.3에서 2월 63.8로 하락했고, 현재상황에 대한 지수도 25.2에서 19.4로 하락하면서 지난 1983년 2월 이후 27년 만에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
금융 불안도 계속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미 예금보험공사(FDIC)의 분기 보고서를 인용해 작년 말 현재 미국 은행들의 전체 대출이 전년대비 7.4% 감소해 지난 1942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파산 위험에 처한 `문제은행(Problem Bank)'이 702개로 16년래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은행권 전체 대출에서 최소한 3개월 이상 연체된 여신 비율이 5.4%에 달해 FDIC가 기록을 보유한 지난 26년래 최고치에 달했다고 덧붙였다.
쉴라 베어 FDIC 총재가 올해 파산하는 은행 수가 작년 140개보다 많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생각보다 경제상황이 영 말이 아니자, 벤 버냉키 미연준 의장은 이날 하원 재무위에 출석해 미국경제 회복세가 고용 부진, 낮은 설비가동률 등으로 회복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어 가계와 기업의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한 초저금리 정책이 상당 기간 계속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버냉키 발언은 지난달 연준의장의 재임 인준청문회 때 경기상황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에 비해서는 크게 후퇴한 것이다. 버냉키 발언에 이날 미주가는 상당 기간 금리인상이 없을 것이란 기대에 반등했으나, 버냉키 발언의 본질은 미국경제 침체의 장기화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한국 등 아시아 증시는 25일 급락했다.
유럽, 긴축재정 저항에 몸살
유럽에서 들려오는 소식도 악재 일색이었다.
우선 국제신용평가사 S&P와 무디스가 이날 일제히 그리스에 대한 신용등급 추가강등을 경고하고 나섰다.
S&P는 다음달에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1~2단계 추가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도 이날 앞으로 수개월 내에 그리스의 재정 적자 축소가 당초 계획에서 어긋나면 신용등급이 조정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경고했다.
이는 그리스 최대 민간 및 공공 노조단체인 노동자총연맹(GSEE)과 공공노조연맹(ADEDY)가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 계획에 반발, 이날 24시간 총파업을 벌여 그리스를 마비시킨 데 대한 경고음이었다. 이날 총파업은 공공부문 노조가 첫 파업에 나선 지 2주 만에 재개된 것이어서 그리스 정부의 통제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지난 10일 첫 파업 당시에는 참가자들이 50만명에 불과했으나 이번 총파업에는 200만명과 60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는 그리스 최대의 민간 및 공공 노조인 노동자총연맹(GSEE)과 공공노조연맹(ADEDY)이 가세했다.
실제로 이들이 신용등급을 추가 강등하면 그리스 정부는 오는 4~5월 만기가 집중된 국채 상환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재정긴축으로 진통을 겪기란 그리스뿐만이 아니다. 마찬가지 국가채무 위기에 직면한 스페인, 포르투갈의 저항도 거세다.
스페인에서도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정년연장 조치에 반발하는 노동계의 대규모 시위가 23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등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벌어졌다. 스페인 정부는 재정적자 감축 조치의 일환으로 현재 65세인 법적 퇴직연령을 67세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내놓아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포르투갈 공공부문 노동계도 재정적자 해소에 주력하는 정부의 임금 동결 방침에 항의, 내달 4일 총파업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재정위기에 직면한 남유럽 국가들의 저항이 확산되면서, 과연 내달 16일 예정된 유럽연합(EU)의 그리스 지원이 순탄하게 진행될지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현재 돈을 꿔줘야 할 독일, 네덜란드 등에선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한국도 '나비효과'로 악영향
이처럼 미국·유럽의 경제적, 정치적 불안이 확산되자 당연히 우리 경제에도 '나비효과'에 따라 악영향이 미치기 시작했다. 우선 1월 경상수지가 1년 만에 4억5천만달러의 적자로 돌아섰다.
2월 돌아가는 분위기도 썩 좋지 않다. 우선 20일 현재, 무역수지는 적자다. 정부는 월말께는 적자가 아닌 소폭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하나, 한달전에 20억달러 이상 무역흑자를 호언하던 때에선 후퇴한 발언이다. 정부는 유럽발 재정위기로 유럽경제가 타격을 입으면서 대유럽 수출이 줄어든 게 주요요인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미국쪽도 영 시원치 않아 향후 수출전선에 황색등이 켜진 상태다.
단 한곳 믿을 곳은 중국이나 중국도 자산거품을 막기 위한 긴축에 착수한 상태여서, 1분기 전망은 기대 이하일 것이란 게 시장전문가들의 지배적 관측이다. 국제시장의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한은의 2월 소비자심리지수도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내수 위축 분위기도 읽히고 있다.
이처럼 불안심리가 되살아나면서 이날 코스피지수는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공세로 미국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25.32P(1.57%) 내린 1,587.51로 거래를 마감, 1600선이 힘없이 무너졌다. 코스닥도 9.41P(1.83%) 내린 504.63로 거래를 마감하며 간신히 500선을 지켰다.
세계경제 회복? 아직 갈 길이 멀고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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