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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좁은 골에도 우리네 삶이 있다

민정아
조회: 250

곳곳에 솟은 산과 산 사이의 좁은 계곡, 합천이 주는 의미와 땅 모양새가 꼭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면적이 좁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래봬도 경남에서 가장 넓고 서울보다 1.6배 큰 합천이다. 면적만 큰 게 아니라 해인사와 더불어 영암사터 등을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합천은 경주와 함께 잘 나가던 고장이었으며 아직도 천 년 전의 기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철쭉으로 유명한 황매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모산재는 오르기 전 영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사찰 터를 볼 수 있는데 무려 1000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다.

해인사 가야산에서 비롯한 산줄기가 황매산을 지나 거침없이 뻗다가 해발 767m의 바위 봉우리로 솟은 모산재는 높지 않지만 소나무 숲 뒤로 하늘을 향해 치솟은 바위들이 가히 위압적이고 신령스럽다. 그래서인지 주민들은 모산재를 '영암산' 혹은 '잣골듬'이라고도 부른다.

산이 될 뻔했으나 봉이 아닌 재에 머물렀으나 그 어느 산보다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다. 모산재가 명당이긴 명당인가 보다. 예로부터 제일의 명당으로 알려진 무지개터도, 또한 고려 말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들러 조선 창업을 기도하러 온 국사당도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길 따라 오르는데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쉴 틈 없이 오르다보면 아주 작은 석굴이 보이는데 바로 국사당이다. 600여 년 됐을 법한 국사당은 소박하지만 천지신명과 이성계의 위엄이 묻어난다. 바로 아래 보이는 영암사지는 신묘하기까지 하다. 아래서 봤을 땐 어마어마한 가람 터 규모에 감탄하고 위에선 옆 저수지와 어우러진 터가 모산재를 지켜주는 듯해 든든하다.

합천은 이름 그대로 좁고 좁은 골들이 많다. 평야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그 산을 깎지 않고 자연이 주는 터를 이용해 살아가고, 그곳에서 또 다른 미학을 세웠던 선인들의 솜씨가 아련하다. 자연과 어우르고 이상향에 가까이 가기 위한 그 길도 조각한 우리네 조상들이었다. 합천은 불교와 유교 문화의 꽃을 피운 곳이며 화려하고도 단아한 모습이 공존한다.
출처: 글마루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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