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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철새'와 한나라당의 운명

<뷰스 칼럼> 2002년 이회창 몰락을 초래한 '흑표백표'

한나라당으로 이적을 타진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있다는 전여옥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11일 발언 배경을 놓고 한나라당내에서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계가 이들을 끌어들이려는 데 대한 박근혜계의 견제라든가, 한나라당 원외 지구당위원장 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발언이라든가 하는 식의 해석이 그것이다.

열린우리당 쪽은 '전여옥 발언'을 '열린우리당 흔들기' 음모로 받아들이고 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이같은 의혹 제기 자체가 열린당에 대한 국민들 지지를 더욱 떨어뜨리고 친노-반노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에서다. '전여옥 발언' 직후 열린우리당이 전 최고위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격한 성명을 낸 것도 이런 위기감의 발로로 풀이된다.

한나라당 기웃거리는 열린우리당 일부 철새들

그러나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한나라당행(行) 타진설'은 전 최고위원의 공식적 문제 제기 전부터 정가에 나돌아왔다. 성향적으론 보수, 지역적으론 충청-수도권 및 부산경남 의원들 중 일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다음 총선에서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셈법인 셈.

또한 최근 당내 개혁진영으로부터 부동산정책 실패 등과 관련해 호된 질타를 받고 있는 보수성향의 경제관료 출신 의원들 중 일부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구체적으로 실명과, 10명이니 15명이니 20명이니 하는 식으로 숫자까지 나돌 정도로 이들의 고민은 상당히 농도가 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대권주자는 이와 관련, "차라리 그들이 한나라당으로 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록 의석수가 줄어들어 정부 주도권은 더욱 약화되겠으나, 반대급부로 그동안 모호했던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오늘날과 같이 곤두박질친 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독주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것과 동시에, 정체성을 흐리게 만든 보수성향 의원들의 책임도 크다"고 덧붙였다. 일종의 뺄셈의 정치학인 셈.

실제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 상임위 등에서 함께 일을 하다보면 어떤 때는 한나라당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더 보수적이고 기득권층 이해를 대변하곤 한다"고 쓴소리를 할 정도로, 열린우리당 의원들 상당수의 정체성에는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천수만을 찾은 겨울 철새들. 정치권에도 철새들의 계절이 도래했다. ⓒ연합뉴스


어김없이 찾아온 철새들의 계절

과거에도 대선이 도래하면 예외없이 다음 유력 권력을 향한 '정치 철새'들의 이동이 있었다. 그때마다 비난여론이 거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철새들은 이동해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뱃지'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 또다시 철새 이동설이 나돈다 해도 이상할 것도 없다.

또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과연 이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도 어떨 때 보면 의문이다. 열린우리당 상당수 의원들이 노 대통령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노 대통령이 던진 '중-대 선거구제'에 대해선 강한 관심과 미련을 보이는 것도 본질적으론 마찬가지 맥락에서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오늘날 국민들의 외면 대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철학이나 정체성에 앞서 금뱃지가 우선하는 현실. 이것이 현 우리나라 정치권의 일천한 현주소인 것이다.

2002년 한나라당의 패인, '흑표백표'론

흥미로운 것은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의 어긋나는 반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측은 상대적으로 "환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개중에는 괜찮은 분도 더러 있고 한나라당이 잘 나가더니 폐쇄적이 되었다는 비난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다.

반면에 박근혜-손학규 캠프쪽은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의원 몇명을 받아들인다고 외연이 확대되는 것이냐", "지금 필요한 것은 한나라당의 외연 확대가 아니라 자기 쇄신이다"라는 이유에서다.

과연 어느 쪽 반응이 정확한 것인가.

2002년 '이회창 대세론'이 정점에 달했을 때 일이다. 네거티브 이미지의 수많은 정치 철새들이 날아들었고, 한나라당은 오는 족족 이들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그 때 한나라당이 내세운 강변이 '흑표백표(黑票白票)'론이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중국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빚댄 해명이었다.

"표에 흰 표, 검은 표가 따로 있나. 아무리 국민여론이 좋지 않은 구태 인사가 할 지라도 수천, 수만표는 갖고 오게 마련이다. 한 표가 아쉬운 판에 흰 표, 검은 표 가릴 때가 아니다. 우선 이기고 볼 일이다."

그러나 이 '흑표백표'론이 결국 이회창 패배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합리적 국민들은 '이회창 정체성'을 의심하고 '이회창 집권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이회창의 연패였다.

"철새들을 받는다고? 스스로 무덤 팔 일 있냐"

'철새 논란'과 관련, 한나라당의 한 전략통은 "철새들을 받는다고? 스스로 무덤 팔 일 있냐"고 말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우리하게 집요하게 해온 게 대연정 제의다. 지금도 대연정 제안은 계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함께 책임을 지자는 것이고, 한나라당은 그래서 대연정 제안을 거부한 게 아닌가.

그런데 열린우리당 철새들을 받아들이면 어떤 결과가 될까. 숫자상으로 열린우리당에서 의원 13명만 받아들이면 한나라당이 제1당, 열린우리당은 제2당이 된다. 제1당이 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싫든 좋든 노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 국민들이 공동책임을 요구할 것이다. 부동산대책이든 뭐든 말이다.

과연 한나라당에게 지금 그런 능력이 있나. 부동산정책만 해도 대권주자들마다 다르고, 다른 정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철새들을 받아들인다면 2002년 대선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요즘 철새들이 조류인플루엔자를 옮겨 가축농가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 철새들도 한국 정치권에서 비슷한 취급을 받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박태견 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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