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치의 무대인 워싱턴의 역사에서 북동부 작은 주의 주지사가 화제를 모은 적은 없었다. 때문에 2003년초 일찌감치 대선출마를 선언한 '하워드 딘'에 대한 워싱턴의 반응은 거의 무관심 수준이었고 한참동안 캠페인 전문가들의 인사말은 "딘이 누구냐?"였다.
그러나 하워드 딘이 간파한 것은 민주당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노쇠해 가고 있는 현상과 관련, 당내의 지지기반인 대도시의 젊은 유권자들이 집단적으로 조직에 반발하고 있고 거기에 부응한 새로운 홍보매체인 인터넷 조직이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워드 딘은 21세기에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정치인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새로운 방향으로 미국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각오를 미국민들에게 설파하고 과감하고 정열적인 모습으로 대선무대에 등장했다. 2003년초 뉴욕시를 필두로 선거운동에 나섰다. 연일 진보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연설을 쏟아냈다. 그에게는 워싱턴에 생소했던 만큼 다른 정치인들이 갖추지 못한 신선함이 있었다. 의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온갖 정치풍파 속에서 둥글게 마모된 존 케리 상원의원이나 하원의 거물인 리처드 게파트 의원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이미지가 보여졌고 대중이 이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과감했다. 전시(戰時) 지도자인 현직 대통령에게 맞서 누구보다도 강한 어조로 이라크 전쟁 반대를 명료하게 주장했다. 2003년 1년 내내 열정적이고 개혁적인 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무명의 주지사 출신으로 대권에 뛰어든 그는 1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2004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케리의 조직력에, 존 에드워즈의 전략적 홍보에 결정적인 일격를 당해 참담한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민주당의 희망에서 광딘병(Mad Dean Disease : 당시 사회적으로 큰 문제였던 광우병(Mad Cow Diseas)에서 Cow 대신 Dean을 집어넣어 만든 언론의 조롱이었다)환자로 취급 당했다.
인터넷을 통해서 대중을 조직하고 소액의 선거자금을 태산같이 끌어 모으기는 했지만 대선후보를 위한 스스로의 결정적인 약점에 너무나 소홀했었다. 하워드 딘을 통해서 민주당은 당원들이 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새로운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동시에 커다란 모험은 피해 가야 한다는 조직의 반응을 경험했다.
2008년 대선을 향한 양당의 예비경선 준비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공식적인 출마선언은 미루고 있지만 공화당에선 ‘뉴욕의 시장’을 넘어서 ‘미국의 시장’이라 불리우는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당내 ‘중도파 대통령’인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민주당에선 각각 최초의 여성대통령과 흑인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와 바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일찌감치부터 돈 모으기에 여념이 없다. 하워드 딘이 2004년 11월 대선을 향한 민주당내의 경선에 뛰어든 시점이 바로 2002년 12월이었으니 서서히 공식적인 선언을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지난달 11월30일, '탐 빌삭(Tom Vilsack)' 아이오와 주지사가 자기의 출신지인 아이오와 마운트 플리전트의 아이오와 웨슬리안 칼리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처음 예비경선이 시작되는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를 향한 5일동안의 유세여행을 출발했다. 지난 대선당시 존 케리의 부통령 러닝메이트 후보의 서열 2순위로 검토된바 있는 탐 빌삭 아이오와 주지사는 40년만에 민주당이 주지사와 주 의회를 모두 장악한 공로를 내세우고 있으며 대통령으로는 의원 출신보다는 주지사 출신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들어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더구나 예비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아이오와주에서의 기선제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강점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달 30일 아이오와 마운트 플리전트의 아이오와 웨슬리안 칼리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탐 빌삭 아이오와 주지사 ⓒ 탐 빌삭 홈페이지
아이오와 코커스(예비선거)의 중요성은 50개주 가운데에 예비경선이 가장 먼저 열린다는 데 있다. 1976년 이후 7번의 선거에서 아이오와 승자가 최종 승리한 경우는 민주당 4번, 공화당 3번으로 아이오와 승자가 승리하는 확률은 65%에 이른다. 탐 빌삭 주지사가 당당하게 출마를 선언한 배경에는 1976년 땅콩농장 농부 출신으로 조지아 주지사 경력이 전부였던 지미 카터 후보가 아이오와 코커스 승리를 계기로 결국 백악관에 입성한 소위 '아이오와 신화'에 대한 강한 미련이 그 배경에 있다.
캘리포니아의 민주당 대의원수가 4백10명 인데 아이오와는 52명이다. 대의원수로는 캘리포니아에 비해서 8분의 1에도 못 미치지만 아이오와는 4년에 한 번씩 미국 정치의 풍향을 좌우하는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양당의 모든 후보는 일차적으로 아이오와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한다.
빌삭 주지사는 1986년에 아이오와 마운트 플리전트라는 작은 동네의 시의원과 시장으로 정치직에 발을 들여놓고, 주 상원을 거쳐서 1998년 아이오와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30년동안 공화당이 독점해 온 주지사를 빼앗아 왔다. 당시에 가까운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그의 주지사 당선을 기대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정도의 이변이었다.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것 이상의 이변이었다.
그는 4년 임기의 주지사를 2번 하면서 아이오와를 민주당 주로 만든 공로로 민주당 중앙에서 발언권을 강화 시켰다. 하워드 딘의 결정적인 약점이었던 북동부 출신, 무명이었던 당내에서의 입지, 정치인으로서의 검증절차, 조직부재 등을 극복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 자질의 1번인 국제사회 지도력과 외교안보 정책 측면에서 그는 주지사 시절 22개 국가와 직접 상대하여 안보문제와 교역을 동시에 성공시켰다는 치적을 내세우고 있다.
대선후보로서 보여줘야 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현안에 대한 입장과 정책에 관해서 어떤 발표나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서 그의 정치철학이나 이념을 선거에 맞추어 단언할 수가 없다. 더구나 아직 그의 캠프에 합류한 홍보전문가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선거전략도 들여다 보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의 전격적인 대선출마 선언은 하워드 딘 같이 돌풍을 일으키며 기선제압을 통해서 이름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을 유추케 하고, 캠페인 스타일은 하워드 딘보다는 조 에드워즈 상원의원에 가까운 이미지 전략을 갖는 것으로 짐작하게 된다.
미국의 정치.경제.문화 등 전반적인 흐름의 변화는 대개가 4년만에 한번씩 치루는 대통령선거에 의해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소수계들, 더구나 한국인들처럼 분쟁국가 출신들은 더욱 더 그렇다.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보들의 캠프에 어떻게 해서든지 가까이 가 있어야 할 일이다.
선거전 초반에는 유력한 후보라도 그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지만 본격적인 캠페인이 시작되면 대권캠프는 순식간에 만원이 된다. 이미 시작된 미국의 대선전에 모두가 관심을 가지면 좋겠고, 가능하다면 연줄을 찾아서 대권후보의 각 지역캠프에 많은 한인들이 참가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4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