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7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미국정치가 2008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대선 레이스로 돌입했다.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정치인들은 정치 자금 모금과 함께 미 전국을 순회하며 지명도 높이기와 지지세 넓히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의 중간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에 미국의 국내외 정책 전면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이런 국내외 여론을 바탕으로 대선 공약을 다듬어나가고 있다. 김동석 본지 편집위원 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은 앞으로 미국의 워싱턴 및 지방정가를 중심으로 펼쳐지기 시작한 미국 대선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진단할 예정이다. 미국의 대선 흐름은 2007 한국대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1995년에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한 '로버트 제임스 월러' 원작의 불륜영화(?)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 of Madison County) 는 서부영화의 단골 총잡이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만들고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가 화젯거리가 된 것은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정서에나 딱 들어맞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멜로물에서 공전의 인기를 모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뿐이 아니고 ‘마쵸맨(Macho man, 사전적 의미로는 '늠름하고 강한 사내대장부'를 가리키나 최근 남성우월주의자라는 뜻으로 자주 쓰임)’의 상징으로 되어 있는 배우 멜 깁슨이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또 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돼 정치인으로 변신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유치원에 간 사나이>(Kindergarten Cop)나 <주니어>(Junior)'에 주연으로 출연해 아이들 돌보고 부엌일을 하면서 천연덕스러운 눈물연기를 보여 주었는데 예상외로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국민의 정서가 감성에 치우치게 되는 현상을 설명해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정치는 역시 미국에서도 대중들과는 일정한 괴리감이 있는 영역이다. 의식주에 별다른 변동이 없는 한 대부분의 미국들이 무관심한 분야이다. 안정된 중산층의 투표율이 바닥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1990년초 걸프전을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경쟁국이 사라졌고, 따라서 국민들에게 더 이상 정치인들의 강력한 지도력은 호소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의 상황변화에 따른 국민정서의 저간을 간파한 정치인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그 기라성 같은 정치 컨설턴트들의 전략과 제안을 부분적으로만 받아 들였고, 항상 마지막엔 자신의 직관과 감성에 의해서 모든 사안을 결정했다. 1992년 선거유세에서 클린턴은 선거참모들이 준비한 원고를 무시하고 "나는 당신의 고통을 이해합니다(I feel your pain)" 라고 스스로 준비한 연설을 했다. 주류 언론들은 지도력의 연약함을 꼬집어 ‘시골뜨기 후보’라고 조롱했으며 당내에선 후보자격을 운운하고 참모들은 벌컥벌컥 화를 내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클린턴은 국민들과 감성적 교감을 찾아내는 자신감이 있었다. 국민과의 공감능력을 과시하려는 그의 목표가 적중했다. 정당정치의 정책을 설명하는 것에 우선하여 울고 웃으면서 전국을 종횡무진하면서 당의 울타리를 뛰어 넘었다. 공화당의 보수정책보다 더 보수적인 정책을, 때로는 민주당의 좌파 정객들도 입을 벌리게 하는 진보적인 현안을 설명하면서 패키지 아젠다로 인기를 몰아갔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서도 울고 웃으면서 국민들을 만났다. 역사상 가장 눈물이 많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대통령도 일반인과 똑 같이 햄버거를 먹고 연애도 하고 울고 웃는다는 것을 여과 없이 내 보여 주면서 자신이 국민들 가슴속 고통을 얼마나 절절히 이해하고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던 것이다.
현재 대선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힐러리 로댐 클린턴(59) 뉴욕주 민주당 상원의원이 '감성정치'를 통한 정쟁과 분쟁 해결의 적임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 힐러리 클린턴 홈페이지
클린턴보다 먼저 이렇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대통령이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정신병자의 총격으로 암살의 위기를 겨우 넘긴 직후에 "피하는 것을 잊어 버렸다"고 말해 경호팀과 보좌관들을 어리둥절케 했지만, 그러나 그는 클린턴처럼 자연스럽지 못했고 본질적으로 마쵸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1996년 대선전에서 온갖 스캔들 속에서도 클린턴은 공화당의 밥 돌 후보가 보여준 엄숙하고 경건한 지도력을 이겼다. 밥 돌은 국민의 감정지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위와 같은 미국 지도력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흐름에 잠시 제동이 걸렸었다. 전쟁수행을 위한 강력한 지도력이 잠시 자리를 잡았었지만, 머리로 보다는 가슴으로, 이성보다는 감성을 선호하는 국민정서의 대세를 막지는 못하는 것 같다. 지난번 중간선거 결과가 이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중간선거 이후 정치저널이나 정치전문 주간지들은 연일 양당의 2008년 대권 주자들의 동향에 주목해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감성의 정치'를 예견하고 국민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로서는 단연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1순위다. 예견하건대, 여성대통령이 아직은 이르다고 하지만 국민정서는 예상보다 빨리 변하고 있다. 국제사회에도 국내 현안에서도 정쟁과 분쟁을 해결하는 지도력은 감성정치의 공감능력을 앞세우는 여성성이 ‘통제와 제압’의 마쵸적 남성성에 우선한다고 유권자들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클린턴이 선보였던 감성정치의 맛 뵈기가 사실은 힐러리의 영향이었고, 힐러리가 대권주자의 제 1순위로 등장한 것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직은 여성대통령...' 운운하기보다는 시민사회의 흐름을 옳게 보려는 노력에 신경을 쓸 일이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4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