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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남사람 종이에요. 푼돈에 부려먹는..."

[김행의 '여론 속으로']<21> 盧의 인기 푸념과 민초들의 4가지 소리

“내가 너무 인기가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일 권양숙 여사와 함께 포천의 평강식물원을 방문했을 때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직도 인기 탓인가. 도대체 이 지경에 인기는 뭐에다 쓰려고. 그의 남은 1년 반, 그가 진정 고민해야 할 것은 ‘인기’가 아니라 ‘민생’이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단 1주일 동안의 필자의 다이어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난 1주일 동안 필자가 만났던 민초들의 이야기다.

# 1
밤 10시쯤, 광화문에서 택시를 탔다. 양평동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환한 불빛이 쏟아졌다. 4층 정도 되는 실내골프연습장인데 얼핏 보기에도 만원이다. “손님, 저기 보세요. 모두 팔자 좋은 사람들이죠.” 그제야 택시기사 얼굴을 봤다. 50대 후반쯤. “퇴근 후 운동하는 거겠죠.” 별로 말을 섞을 생각이 없었다.

“어휴. 모르는 소리 마세요. 밤에만 그런 게 아니에요. 낮에도 만원이에요. 논현동 가구거리 가보세요. 거기 대형 실내골프연습장이 있는데, 낮에도 차 못 대요. 그만큼 놀고먹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강남에 가면 대낮에 외제차 끌고 다니는 여자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모두 다 부동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부동산이라는 것이 돈 놓고 돈 먹는 투기판이잖아요. 강남 사는 사람들 모두 십억이 넘는 아파트 깔고 살아요. 아파트 투기다 상가 투기다 땅 투기다 해서 모두 벼락부자들이 됐잖아요. 하루 1억을 쓰는 사람도 있대요.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요. IMF 때도 이러진 않았어요. 이제 우리나라엔 중산층이 없어요. 하류층도 없어요. 나 같은 사람은 강남 사는 사람들의 종이에요, 종. 그냥 종. 잔돈푼에 부려먹는.”

아파트 진입로에 도착했다 “개봉동 이쪽은 아파트가 얼마나 해요?” “모르겠어요. 10년도 넘게 살아서” “10년 전이면 그 때 무척 쌌죠? 하긴 이쪽은 지금도 싸죠. 아마 서울에서 가장 싸지 않나요? 손님도 진작 강남으로 이사 갔어야 했는데. 손님도 저 보단 날지는 모르지만, 종이네요, 종. 강남 사는 사람들의 종.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종이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돼요. 희망이 없죠. 저는 집 사는 거 포기했어요”

졸지에 종이 된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어리석게 살았나.

지난 18일 오후 베트남에서 열린 APEC 제1차정상회의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김행씨는 최근 "인기가 너무 없어서 고민"이라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은 노 대통령에게 "진정 고민해야 할 것은 '인기'가 아니라 '민생'"이라고 질타했다.ⓒ연합뉴스


# 2
친한 친구가 사무실로 왔다. 눈물을 섞어가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2003년 운영하는 회사가 너무 어려워 20층 넘는 빌딩만 찾아다녔다고 한다. 사는 아파트는 12층이라 뛰어내려도 죽을 것 같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렵게 20층까지 찾아 올라간 빌딩들은 맨 꼭대기 층이 전부 잠겨 있더라고 했다.

그러기를 며칠. 어느 날 아침 신문을 보니 현대그룹의 정몽헌 회장이 사옥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기사가 실렸더라고 했다. 비록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처지도 다르지만, 죽지 못하는 자신이 불쌍하고, 그의 심정이 이해될 것도 같아 정 회장 상가를 찾아가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3년 세월. 죽어라 노력했으나 결국 항복했다. “작은 회사는 살 방법이 없어. 빚이 5억이 넘는데, 인수해 줄 큰 회사가 없을까? 직원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전투태세에 돌입해 있는데.” 애써 웃고 있는 그의 눈망울이 허공에서 어른거린다.

# 3
직장 근처에서 회식 후 택시를 탔다. 올림픽대로 코스다. 소주 두어 잔에, 한강다리들이 참 아름다웠다. 다리 구경에 넋이 나가 있는데, 택시 기사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한강 다리 중 어느 다리에 빠져야 죽는 줄 아세요?” 뜬금없는 질문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되물었다. “반포대교예요, 반포대교. 다른 곳에선 빠져 봐야 물살이 약해 죽기 힘들어요. 반포대교라야 물살이 빨라 떨어지면 바로 물살에 휩쓸려나가 죽을 수 있데요.” “.....”

“얼마 전 죽으려고 반포대교 갔었죠. 그런데 경찰들이 순찰 돌고 있더라구요. 잠수대교 끝에는 경비초소도 있어요. 그 후로도 두어 번 더 갔었는데 결국 포기했어요. 경찰들 때문에. 나 말고도 죽으려는 사람들이 많나 봐요.” “왜 그러셨어요?”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회사택시 운전해 봐야 사납금도 못내요. 죽어라 일해 봤자 가난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요. 자식 놈들만 불쌍하죠. 요즘, 어쩌다 손님들과 반포대교 얘기하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날 이후, 필자는 반포대교가 싫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과연 노대통령은 경호원 없이 대낮에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까.

# 4
후배기자들과 술 한 잔 했다. 대리기사를 불렀다. 이럴 때 쓰려고 대리기사 광고 문자메시지를 몇 개를 핸드폰에 입력해 놨었다. 【서울시내 같은 구간 10,000원, 먼 구간 14,0000원, OO 화재보험가입.】 전화를 걸었다. 개봉동 가자고 했더니 멀어서 안 된단다. 몇 군데 전화했더니 겨우 연결되었다. 1만8천원 달라고 한다. O.K. 그래도 집에 택시 타고 가는 것 보다 싸다. 집까진 보통 택시비가 2만5천원쯤 나온다. 10분 후 대리기사가 왔다. 말끔한 젊은 청년이었다. 인상이 좋아 안심이 됐다.

집의 위치를 설명해 주다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1만8천원 받아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요?”했더니 전철 타고 간단다. “그래 돈은 많이 버세요?,” “많이 벌긴요. 초반엔 경험이 없어 오히려 돈을 꼬나 박았죠. 길을 모르면 오히려 손해만 봐요. 돌아갈 차비도 안 나오거든요. 1만8천원 받아야 3천원 콜센터에 내고 1만5천원 받는데, 결국 콜센터만 돈 버는 거죠. 개봉동 같은 변두리는 대리기사들이 싫어해요. 돌아가는 동안 콜을 못 받아 계속 공치게 되거든요. 아무래도 강남쪽에 있어야 손님들이 계속 연결되죠. 그래서 개봉동은 가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저는 마침 집이 관악이고, 오늘 좀 일찍 들어가야 돼서 온 거죠, 콜센터에서도 자체 가입 대리기사들이 기피해서, 다른 회사 대리기사들에게 까지 오픈한 번호를 제가 잡은 거예요.”

“그럼, 지하철 놓치면 어떡해요?” “그래서 요령이 필요해요. 주로 대리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야간버스를 타고 가서, 4∼5명이 모이면 2∼3,000원씩 내고 택시 타죠. 재수 없는 날은 무작정 새벽까지 기다리다, 첫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기도 해요. 언젠가 그것도 시간대가 안 맞으면 집까지 하염없이 걸어간 적도 있어요. 그래도 택시 타고 돌아가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손해니까요.”

“사실 대리운전 1만원이 말이 됩니까. 그것도 인천이나 부천은 7천원이예요. 그런데도 워낙 대리들이 많고 경쟁이 심하니 어쩔 수 없죠. 요령껏 열심히 뛰어야 1건에 4 ∼5천원 남아요. 어쩌다 손님이 팁이라도 주면 정말 고맙죠. 장거리 지방손님은 더 반갑고요. 연말에 최고 20만원까지 벌어 본적이 한 번 있기는 있어요. 정말 사람 할 일이 아니죠. 매일 밤 대리 뛰어야 봐야 생활이 안돼요. 그래서 낮에는 오토바이 타고 음식점 배달해요. 그렇게 투 잡을 뛰어도 2백만원도 못 벌어요. 지금 정권에선 희망이 없고, 다음 대통령이라도 잘 뽑혔으면 좋겠는데….”

2천원 더해 2만원을 주고도, 눈 맞춤을 피해 자동차 키를 넘겨받았다. 아무 책임 없는 내가 왜 죄스러울까. 그날 밤 잠을 설쳤다. 다음날 신문을 보니 노무현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택으로 알현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이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위세 좋게 빼어들었던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결국 하루 만에 풀렸단다. 퇴임 후에도 정치, 언론운동을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상대는 과연 누구인가. 일주일 사이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든 사연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지금의 정권을 원망하고 있다. 지난 2002년 그들의 마음속에 노무현 후보는 혹시 ‘희망’이 아니었을까?
김행 여론조사전문가

댓글이 2 개 있습니다.

  • 21 36
    얼씨구

    수준좀 보소.
    전부 노무현 탓이네 전부.
    전부 노무현 탓.
    그소리 아닌가?
    저사람들 생계가 전부 노무현땜에 망쳐졌다는.
    아휴 참..
    도대체 글의 목적이 뭔데?
    '전 인기 없어요'라는 말 꼬투리 잡기?
    꼬투리 잡기 밖에 더되나?
    저 한마디 하면, '노무현은 민생보다 인기에 집착한다'는 논리가
    생겨나는 건가...
    뷰스앤뉴스 그동안 황당한 기사들 많았는데.
    이쪽저쪽 다 때려대기만 하니.
    하긴. 제대로된 놈이 없기는 하지만.

  • 30 18
    dy Han

    왜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게 되지?
    글도 조근 조근. 평소 말씀하시는 그대로네요. 특히 오늘은 숨소리가 깊고 긴 주위사람들 생각케 했습니다. 내가 짊어진 짐이 결코 무거운 게 아니고나, 나의 걱정은 행복의 푸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다만 그분 임기가 '1년 반 남았다'는 표현은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겁니다. 정확하게 1년 3개월 남았습니다. 하루 30명이 자살한다는 데 3개월이면 1000명 가까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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