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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자초한 美공화당의 '부패와 무능'

[김동석의 뉴욕 통신] 현지에서 바라본 11.7 미 중간선거 결산

1990년을 전후한 소련을 중심축으로 하는 동구 사회주의권의 해체는 1백여년 이상 소련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정치권력을 만들고 대통령을 선출하던 미국 국민들에게 승리에 의한 발전적 희망보다는 목표를 상실한 허탈감을 안겨줬다.

걸프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아버지 조지 H. W. 부시의 공적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경쟁의 시대"는 갔다는 판단을 내린 미국 국민들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칸소주 출신의 무명의 시골뜨기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낮은 55%의 투표율과 과반을 밑도는 43%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때문에 클린턴은 스스로 내세웠던 어젠더에 대한 위임권(Mandate)을 갖지 못했다.

반면에 공화당은 걸프전 완승이라는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풋내기인 클린턴에게 권력을 내준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패배에 충격을 받았던 공화당 지도부의 유일한 관심사는 '얼마나 빨리 클린턴 일당을 워싱턴서 쫓아낼 것인가'였다.

1994년 중간선거는 공화당의 절치부심을 반영하듯 우선 당의 내부를 뒤집고 보수정책의 골간을 세우는 대대적인 '보수혁명'의 기치 아래 공화당을 새롭게 일으켜 세웠다. '과학적 정책'이라는 명목 아래 시도 때도 없는 각종 여론조사와 유권자 홍보를 위한 미디어 홍보전에 공화당이 보유하고 있던 천문학적인 달러가 투입됐다.

클린턴이 워싱턴에 적응하느라 어안이 벙벙할 때에 치룬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상-하 양원을 민주당으로부터 완벽하게 빼앗아 왔다. 하원에서 54석을, 상원에서 9석을 빼앗아 완벽한 여소야대의 국면을 만들어 버렸다.

40년 민주당 아성이었던 의회가 공화당에 넘어간 사건이었다. 당시 승리의 '주역 3인방'이 바로 네오콘 정치인으로 유명한 뉴트 깅리치(그후 하원의장을 역임했다), 얼마전 로비스캔들로 정치생명을 마감한 부시의 오른팔격이었던 탐 딜레이(직전 공화당하원 원내대표), 그리고 현재 하원 원내대표인 존 버너다.

당시 이들 3인방은 자나깨나 부패일소, 정풍운동을 부르짖었다. 깅리치의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 그후 꼭 12년 만에 바로 그들이 ‘가장 부패한 정치인’으로 탈바꿈되면서 워싱턴 의회를 민주당에 고스란히 넘겨주게 되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2006년 미국 중간선거의 결과는 워싱턴의 상.하원은 물론이고 주지사까지도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예견된 결과였지만 권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염증이 이렇게 엄청나고 생경한 동력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최종결과가 채 나오기도 전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을 경질했다. 만 6년 동안 초법적인 권력을 갖고서 자기 마음대로 세계지도를 그려냈던 럼즈펠드 장관이 민심의 분노에 의해서 단칼에 날아간 셈이다.

국민의 분노와 원망에 질린 부시 대통령이 알아서 기겠다는 표시이다. 머릿 속에서의 개념으로만 알았던 선거혁명, 오늘 우리가 그것을 피부로 경험하고 있다. 민심에 의한 정치권력의 대이동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당론에 따르던가? 아니면 배를 갈아 타든가”를 집요하게 요구하면서 당의 정체성을 우선으로 선거를 이끌어 온 민주당호의 선장인 '낸시 펠로시' 가 “국민은 변화를 선택했고 우리는 역사를 새로 쓴다”라고 열변을 토하면서 내년 1월이면 미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에 취임하게 된다.

당론으로 단결하면 진흙탕 선거전이라 해도 관객은 그것을 정치적 소신으로 보게 된다. 펠로시 의원은 "정치 현안에 대해 이념적으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상황에 대하여 정치적인 진지함을 갖춘다면 선거 불패를 보장하겠다"며 자신의 지역구를 뛰어넘어 전국을 종횡무진했고, 그 결과 올해 중간선거 최고의 스타가 됐다.

필자는 그녀가 인권문제에 집착하고 환경이나 노동, 여성 문제에 민감한 것을 늘 주목해 왔다. 2004년 대선 예비선거전에서 정계를 은퇴한 딕 게파트로부터 원내 대표직을 물려받았지만, 그녀는 줄곧 공화당 다수당의 횡포에 발목이 잡혔었다. 2007년 의회 110회기에서 그녀의 지도력이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가 된다. 더구나 그녀의 지역구가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안 밀집지역이라서 더욱 반갑다.

2004년 민주당의 떠오르는 별이었다가 과도한 몸짓과 괴성으로 하루아침에 낙마한 '하워드 딘'이 이번 중간선거의 두 번째 공로자다. 그는 바로 이 중간선거를 겨냥해서 당의 질서와 조직을 정비하라는 임무를 받고서 전국민주당위원회(DNC) 위원장이 되었다.

하워드 딘은 고정지지 기반을 챙기고 공화당내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를 끌어내어 접전지역에서 완승을 거두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오직 이라크 전쟁만이라고 할 정도로 이라크 문제를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시키면서 부시 행정부의 실패를 지적하고 공화당 지도부의 부정과 부패를 폭로하는 그의 전략이 이번 선거에서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갤럽>, <CNN>, <ABC>, <USA투데이> 등의 출구조사에서 공화당 유권자와 부동층 유권자는 "부정부패 때문에 공화당을 버렸고, 이라크전쟁 때문에 민주당에 투표했다"라고 자신들의 투표 이유를 밝혔다.

이번 중간선거는 역사적으로 가장 치열한 선거전이었고 유례가 없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지역선거전에서 주류 미디어가 이렇게 동원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홍보전을 위한 실탄(정치자금)을 책임진 람 임마뉴엘(Rahm Emanuel) 일리노이 하원의원의 돈 모으기 공로가 톡톡히 한몫을 했다는 평가를 내릴만하다. 그는 클린턴 정치자금책으로 민주당에 처음 이름을 올렸고, 2002년 중간선거에서 일리노이 제5지역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정치 초년생이다.

1994년도의 공화당 3인방의 종말이 이번 승리의 주역인 낸시 펠로시, 하워드 딘, 람 임마뉴엘 등 민주당 3인방에게 앞으로의 정치에 좋은 교훈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민주당 주도의 의회는 분명히 이전에 비해서 한국이나 미국내 한인들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이민개혁안, 사회복지, 조세정책이 그렇다. 특히 한국과의 당면 현안인 비자면제프로그램이나 일본군위안부결의안, 대북정책에서도 이전보다는 훨씬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공화당 주도 아래 진행됐던 것보다는 좀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듯 무엇이든 그 결과는 우리들의 노력에 비례할 것이다. 워싱턴을 알아야, 워싱턴의 냉혹한 정치구조와 그 과정에 한국인의 생각이 반영될 수 있는 의사결정 과정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렇게 워싱턴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우리에게 맞는 궁리를 할 수 있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4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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