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태광직원이 증언하는 '이호진의 실체'
"70년대식 황제경영, 직원들에겐 가혹, 대학동창들도 등돌려"
태광그룹의 전 직원이 1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태광 사태를 보고 사람들이 '쌍팔년도 기업을 보는 것 같다'고 하는데,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70년대 기업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시대 변화에 최소한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태광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젊은 이호진 회장(48)의 구태의연한 '70년대식 황제경영'의 많은 예를 들었다.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지난 3월 태광산업 주주총회때 배모 감사의 교체 문제를 놓고 장하성펀드 등 소액주주와 이호진 회장측이 격돌했다. 결국 주식수가 많은 이 회장측이 표 대결에서 이겼지만, 문제의 배 감사는 애당초 감사가 될 수 없는 부적격자였다. 그는 이 회장이 태광산업 사장 시절에 구매·전략기획 등을 담당했던 직속부서인 업무부의 차장 출신으로, 이 회장은 그를 잠시 퇴사시켜 경력을 '세탁'한 뒤 대한화섬 감사를 거쳐 태광산업 감사를 시켰다. 정상적인 회사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자금을 관리해온 핵심인물인 계열사 대한화섬의 박모 사장도 경리부장을 20년간 해온 이 회장 일가의 사실상의 재산관리인이며, 또다른 핵심인 송모 부장도 같은 경리부 출신으로 오너와 고향이 같은 포항 출신이기도 하다. 송 부장은 지난 2006년에 태광이 말 많았던 쌍용화재를 인수할 때 오모 부회장과 함께 인수작전에 참여했던 정도로, 이 회장의 신임이 절대적이다. 태광은 말이 주식회사지, 철저하게 사기업으로 운영돼 왔다."
"이렇듯 회사를 철저히 개인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회장인만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더없이 적극적이었고 직원들에게 가혹했다. 나만 해도 재직 시절에 명함에 두 회사 이름과 직책을 새겨 다녀야 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2001년 태광산업 울산공장에서 직원들을 대량 해고할 때는 멀쩡한 흑자기업을 적자기업으로 회계를 맛사지해 많은 직원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파업 등이 발생했다. 이 회장은 본사에 절대로 노조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의 전횡에 걸림돌이 되는 걸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 같은 질문을 던진 뒤 스스로 답하기도 했다. 그는 "검찰에 누가 이 회장 비리를 제보했겠는가"며 "겉으로는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가 한 것으로 돼 있으나, 실제로는 이 회장의 서울대 동창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회장은 전근대적 경영을 하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학력이 화려하고, 따라서 주위에 똑똑한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81학번) 출신으로 미국 코넬대에서 MBA(경영학석사) 학위를 딴 뒤 뉴욕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다가 1996년 선친이 급작스레 세상을 뜨자 귀국해 35세에 그룹 모기업인 태광산업 사장이 됐다. 나어린 3남인 그가 그룹을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은 큰형은 불치병을 앓고, 둘째형은 불미스런 일로 고인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회장은 많은 서울대 동창들을 회사로 끌어들였다. 이 회장 못지 않은 학력의 소유자인 이들은 나름대로 야심을 갖고 회사에 들어왔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모두 회사를 떠났다. 이 회장이 너무나 회사를 전근대적으로 운영하다보니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예외없이 싸우고 회사를 떠났던 것이다. 이들이 지금 이 회장에 대해 보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처럼 똑똑한 친구들을 모두 내보내고 지금 이 회장은 선대 회장 때부터 비자금을 관리해온 늙은 임원들을 데리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며 "그러다가 이번에 사고가 터지니, 대다수 전·현직 직원들이 '결국 터질 게 터졌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회장의 외삼촌인 이기택 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과 이 회장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미심장한 증언을 했다. 그는 "태광그룹은 이호진 회장이 다 키운 게 아니라 그의 또다른 외삼촌인 이기화 회장때 석유화학 등에 진출하면서 사세를 크게 확장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전권을 잡는 과정에 혹독하게 그를 몰아냈고 그 결과 외가와의 관계가 일정하게 서먹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삼촌인 이기택 부의장과의 관계는 한마디로 '불가근 불가원(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사이)'이라 말할 수 있다"며 "서로 필요에 따라 계속 관계를 맺고 있으나 끈적끈적한 혈연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과 모친 이선애씨 사이에 왜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관계가 형성돼 있으며, 이 회장이 나어린 미성년자 아들과 딸에게 서둘러 주식을 편법 증여해 '3대 세습'을 완성하려 했는가를 미뤄 짐작케 하는 증언이기도 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태광사태가 터지자 어디서도 이 회장을 돕는 우군은 보이지 않고 모두가 앞다퉈 태광 비리를 폭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말들을 못해서 그랬지, 이 회장의 전횡에 모두가 공분을 느껴왔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언론과 검찰이 강도높게 태광비리를 추적하고 있는 배경도 궁금하고 과연 어디까지 파헤칠지도 지켜볼 일이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전횡을 일삼던 이 회장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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