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어음(CP) 투자위험이 커지고 있다!
[송기균의 마켓뷰] 건설업-조선업계 CP금리 급등 배경은?
‘채권(CP) 8개월 5.4% XX중공업 채무인수 선착순 한정판매-2010.2.1’
‘채권(CP) 9개월 5.4%, 12개월 5.7% △△건설 연대보증 선착순 한정판매-2010.1.27’
‘채권(CP) 12개월 확정금리 6% ××공제회 인수 선착순 한정판매- 2010.1.19’
요 며칠 동안 내 핸드폰에 수신된 문자 메시지들이다. 발신처는 OO은행이다.
한동안 뜸하던 은행의 기업어음(CP) 투자 권유가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2월1일자 <뷰스앤뉴스>의 ‘건설사 연쇄도산 공포 마침내 수면 위로’라는 기사를 보고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기사에 의하면 성원건설을 비롯한 많은 건설사들이 심각한 자금부족을 겪고 있다고 한다. 자금부족의 원인은 작년 하반기 이후 미분양 물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통계에 의하면 작년 3월 이후 감소하던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작년 11월에는 전월 대비 2천여 가구 증가함으로써 증가세로 반전하였고, 12월에도 소폭이나마 미분양 물량이 늘어 두달 연속 증가를 기록했다. 특히 12월에는 준공후에도 분양되지 않은 '악성 미분양'이 1만 가구나 늘어 건설업계가 벼랑끝 위기에 몰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말, 연초에 걸쳐 건설업계들이 양도세 감면 특혜를 겨냥해 앞다퉈 분양에 나선 점을 감안하면 이런 추세는 상당 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주택건설 시장의 침체는 증권시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부동산 호황기에 공격적으로 아파트 사업에 투자하고 그 결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지급보증규모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GS건설과 대림산업의 주가가 최근 급락하였다.
GS건설의 주가는 1월12일부터 2월1일까지 14 거래일 간 25% 하락하였고, 대림산업은 1월14일 이후 12 거래일 간 23% 하락하였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6% 하락한 것에 비하면 폭락 수준이다.
주식 투자자들이 아파트 건설 비중이 높은 건설사의 경영전망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신호다.
최근 건설회사들이 발행한 CP에 대한 투자 권유가 부쩍 잦아진 이유가 바로 미분양 증가로 인한 건설회사들의 자금 악화 때문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된다.
문제는 미분양이 상당 기간 지속되어 건설회사들의 현금흐름이 더 악화되면 그들이 발행한 CP의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CP투자가들이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은행들이 자기 고객들에게 공격적으로 CP 투자를 권유하는 데 있다. 은행의 고객은 대부분 가장 보수적인 투자자들이다.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낮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은행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보수적인 투자성향의 고객들에게 은행이 CP 투자를 적극 권유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작년 6월 CP 투자를 권유하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은행 지점을 방문하여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은행 담당자는 지나칠 정도로 공격적으로 투자를 권유하였다.
“대기업 계열의 건설사가 채무인수(지급보증)하였으므로 위험이 전혀 없다”라는 말로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건설경기가 냉각되고 미분양이 더 증가하게 되면 대형 건설사라고 안전할 수 없다. 오히려 아파트 분양을 많이 할수록, 그래서 PF 지급보증 규모가 클수록 위험도는 높아진다.
문제는 정기예금만 해왔던 은행 고객들이 CP라는 복잡한 투자상품의 위험도를 평가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CP 투자에 따른 위험을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건설회사의 재무구조뿐만 아니라 PF 지급보증 규모와 미분양 물량, 분양 후 대금납입의 지연금액 등 아주 많은 요소들을 분석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로서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쉽게 말해 CP 투자의 위험 분석은 기관 투자가의 영역에 속한다. 수많은 연기금과 보험사, 은행들이 수백조원 이상을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개인자금을 모아서 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형 펀드도 60조원이 넘는다.
이들 기관투자가들도 리스크가 높다고 판단하는 CP를 가장 보수적인 투자자인 은행 고객에게 공격적으로 권유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은행 직원이 “손실위험이 전혀 없다”라고 말하면 그 말만 믿고 별도의 분석 없이 투자할 고객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열기를 더해가는 일부 은행의 CP 투자 마케팅을 접하고 몇 년 전 대다수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전개했던 주식연계상품(ELS) 마케팅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은행고객들에게 안겨준 엄청난 손실을 은행은 벌써 잊었는지 묻고 싶다.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2), 동원증권 런던현지법인 대표, 코스닥시장 상장팀장, 코스모창업투자 대표, 경기신용보증재단 신용보증본부장, (현) 송기균경제연구소 소장. 저서 <불황에서 살아남는 금융의 기술>과 <유동성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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