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금 미국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중"
[김동석의 뉴욕통신] 일본, 북핵위기 이용해 ‘파워’ 확산
지난 2006년 6월1일, 연합뉴스의 일본 도쿄 특파원이 “6월 방미예정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워싱턴 상.하 양원 연설 무산”이란 제목의 뉴스를 알렸다. 뉴욕시간 자정 무렵이었다. 뉴스를 확인한 후 필자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꺼내 지난 3개월 동안의 가슴 조아렸던 갈증을 시원하게 씻어 내렸다. 6월 하순이 방문 일정이라면 “적어도 이번 주엔 발표가 나야 하는데...” 하면서 바로 이 뉴스를 기다리고 또 고대했던 것이다.
한.미간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를 궁리하면서 워싱턴에서 발견한 것이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 등에 올라타기’ 전략이었다. 역대 일본총리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고이즈미 총리는 임기내 미일관계의 밀착도를 가장 근접시키는 일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그의 워싱턴 방문 시 연방의회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동안 일본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연설한 적은 있었지만 상.하 양원의 합동회의에서 연설한 기록은 없다.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이란 미국행정부 뿐 아니라 워싱턴 의회도 일본의 외교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한국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강화되면 우리 민족은 늘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점에서 이같은 일본의 행보는 우리 한민족에게는 항상 경계의 대상이었다.
필자(유권자 센터)는 당시 하원국제관계위원회(현재의 외교위원회)의 헨리 하이드 위원장이 일본이 도발한 태평양전쟁 경험이 있고 일본의 군국주의 성향을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정치인이란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난 뒤부터 유권자센터 이름으로 연속해서 헨리 하이드 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한다면 그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은 환영해도 될 만한 일이다”란 내용의 편지였다.
우리의 예측(계산)대로 국제관계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실에 그렇게 통보했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연설은 포기해도 신사참배는 하겠다면서 합동회의 연설포기를 선언했다. 6월1일자 도쿄 발 연합뉴스는 고이즈미 총리의 의회연설 무산은 헨리 하이드 위원장이 하원의장에게 보낸 “고이즈미 총리로부터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연설기회를 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 때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워싱턴이 그야말로 정직하게 작동했다. 이때부터 필자는 “미국의 손을 빌려서 일본의 뺨을 친다”란 전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이듬해 성사시킨 일본군위안부결의안도 마찬가지 전략이었다. 이 모두가 동북아지역의 평화를 위하는 일이다.
필자가 워싱턴 정치서클의 작동방식을 접해보고서 가장 크게 몸서리를 친 부분은 일본의 영향력이다. 일본을 보면, 역으로 워싱턴의 결심을 알아차리게 될 정도다. 일본은 워싱턴에서 아시아에 있으면서 아시아권으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나라이다. 워싱턴의 권력이 일본을 특별하게 취급하는 이유에는 (현대)사적인 뿌리가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항복한 일본은 처음에는 단지 미국의 군사기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항하고, 동시에 1949년 중국 내전 이후 사회주의화된 공산주의국가 중국을 의식한 미국의 극동 정책은 일본에 그 기초를 두게 되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정치 군사적인 존립 기반이 되어버린 일본은 미국에 매우 중요한 세계적 동맹국이 되었다. 일본은 미국을 침공했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미국의 가장 친밀한 동맹국이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한 탓에 한국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한 반민족 친일세력이 이승만(친미)권력의 체제 기반 덕택에 대한민국의 주류세력으로 다시 편승하게 된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일본에게 미국은 우산과도 같은 존재다. 이 우산 밑에서 일본은 패전국의 지위에서 일어나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했다. 이를 기반으로 세계 열강의 자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우산의 존재가 일본의 행동자유를 제한했다. 일본은 세계적 국가이자 보호국가인 것이다. 일본의 군사력이 증대되어 질적인 면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현재로서는 일본의 군사력이 일본 대외정책의 수단이라기보다는 미국 군사력의 연장이란 관점에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목표는 보통국가로의 전환이다.
일본과 대만과 인도를 연결하는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신외교전략은 일본의 국제사회 진출 욕구에 불을 댕겼다. 게다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일본을 포함시키려는 미국의 의도가 언뜻언뜻 표출되자, 일본은 서서히 그리고 주도면밀하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국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남북한 민족공조 경향을 가장 크게 두려워하던 일본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워싱턴 로비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6자회담을 지연시키면서 중국의 주도권을 견제하고 독도와 관련해서 영토분쟁을 일으켜 한국과의 긴장관계를 조성했다. 물론 미국이 최소한의 침묵을 지켜줄 것이란 기대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무섭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외교력을 가진 일본은 세계의 경제가 다시 회복되기 전까지를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여나갈 둘도 없는 기회로 보고 있다.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 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 (AIPAC)의 유태계 전략가들도 이구동성으로 일본이 무섭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며, 워싱턴의 상.하 양원에서 친일본 그룹이 눈에 보이게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그냥 "무시"라고 할 정도며. 실제 워싱턴 외교가에서 한일간 외교력의 차이는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과정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것은 대화와 타협이란 오바마 정부의 평화노선에서 북한이 제외되는 효과를 발휘했다. 오바마 정부는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을 분명하게 표명했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는 변칙적인 무리수에 대해서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단호하고 강경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유엔의 제재 결의가 이전과 사뭇 다르게 구체적인 것을 보면 이것을 알 수가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협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고, 이를 방해하는 주변국가를 제외한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요청하는 전략이라 하더라도 미국이 그것을 전략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두려움이 생긴다. 워싱턴에서의 미주동포 역할에 민족의 존망이 걸려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워싱턴 숲속에서는 무시무시한 외교력으로 동분서주하며 움직이는 일본이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이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미간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를 궁리하면서 워싱턴에서 발견한 것이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 등에 올라타기’ 전략이었다. 역대 일본총리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고이즈미 총리는 임기내 미일관계의 밀착도를 가장 근접시키는 일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그의 워싱턴 방문 시 연방의회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동안 일본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연설한 적은 있었지만 상.하 양원의 합동회의에서 연설한 기록은 없다.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이란 미국행정부 뿐 아니라 워싱턴 의회도 일본의 외교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한국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강화되면 우리 민족은 늘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점에서 이같은 일본의 행보는 우리 한민족에게는 항상 경계의 대상이었다.
필자(유권자 센터)는 당시 하원국제관계위원회(현재의 외교위원회)의 헨리 하이드 위원장이 일본이 도발한 태평양전쟁 경험이 있고 일본의 군국주의 성향을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정치인이란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난 뒤부터 유권자센터 이름으로 연속해서 헨리 하이드 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한다면 그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은 환영해도 될 만한 일이다”란 내용의 편지였다.
우리의 예측(계산)대로 국제관계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실에 그렇게 통보했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연설은 포기해도 신사참배는 하겠다면서 합동회의 연설포기를 선언했다. 6월1일자 도쿄 발 연합뉴스는 고이즈미 총리의 의회연설 무산은 헨리 하이드 위원장이 하원의장에게 보낸 “고이즈미 총리로부터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연설기회를 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 때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워싱턴이 그야말로 정직하게 작동했다. 이때부터 필자는 “미국의 손을 빌려서 일본의 뺨을 친다”란 전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이듬해 성사시킨 일본군위안부결의안도 마찬가지 전략이었다. 이 모두가 동북아지역의 평화를 위하는 일이다.
필자가 워싱턴 정치서클의 작동방식을 접해보고서 가장 크게 몸서리를 친 부분은 일본의 영향력이다. 일본을 보면, 역으로 워싱턴의 결심을 알아차리게 될 정도다. 일본은 워싱턴에서 아시아에 있으면서 아시아권으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나라이다. 워싱턴의 권력이 일본을 특별하게 취급하는 이유에는 (현대)사적인 뿌리가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항복한 일본은 처음에는 단지 미국의 군사기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항하고, 동시에 1949년 중국 내전 이후 사회주의화된 공산주의국가 중국을 의식한 미국의 극동 정책은 일본에 그 기초를 두게 되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정치 군사적인 존립 기반이 되어버린 일본은 미국에 매우 중요한 세계적 동맹국이 되었다. 일본은 미국을 침공했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미국의 가장 친밀한 동맹국이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한 탓에 한국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한 반민족 친일세력이 이승만(친미)권력의 체제 기반 덕택에 대한민국의 주류세력으로 다시 편승하게 된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일본에게 미국은 우산과도 같은 존재다. 이 우산 밑에서 일본은 패전국의 지위에서 일어나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했다. 이를 기반으로 세계 열강의 자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우산의 존재가 일본의 행동자유를 제한했다. 일본은 세계적 국가이자 보호국가인 것이다. 일본의 군사력이 증대되어 질적인 면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현재로서는 일본의 군사력이 일본 대외정책의 수단이라기보다는 미국 군사력의 연장이란 관점에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목표는 보통국가로의 전환이다.
일본과 대만과 인도를 연결하는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신외교전략은 일본의 국제사회 진출 욕구에 불을 댕겼다. 게다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일본을 포함시키려는 미국의 의도가 언뜻언뜻 표출되자, 일본은 서서히 그리고 주도면밀하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국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남북한 민족공조 경향을 가장 크게 두려워하던 일본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워싱턴 로비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6자회담을 지연시키면서 중국의 주도권을 견제하고 독도와 관련해서 영토분쟁을 일으켜 한국과의 긴장관계를 조성했다. 물론 미국이 최소한의 침묵을 지켜줄 것이란 기대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무섭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외교력을 가진 일본은 세계의 경제가 다시 회복되기 전까지를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여나갈 둘도 없는 기회로 보고 있다.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 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 (AIPAC)의 유태계 전략가들도 이구동성으로 일본이 무섭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며, 워싱턴의 상.하 양원에서 친일본 그룹이 눈에 보이게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그냥 "무시"라고 할 정도며. 실제 워싱턴 외교가에서 한일간 외교력의 차이는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과정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것은 대화와 타협이란 오바마 정부의 평화노선에서 북한이 제외되는 효과를 발휘했다. 오바마 정부는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을 분명하게 표명했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는 변칙적인 무리수에 대해서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단호하고 강경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유엔의 제재 결의가 이전과 사뭇 다르게 구체적인 것을 보면 이것을 알 수가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협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고, 이를 방해하는 주변국가를 제외한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요청하는 전략이라 하더라도 미국이 그것을 전략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두려움이 생긴다. 워싱턴에서의 미주동포 역할에 민족의 존망이 걸려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워싱턴 숲속에서는 무시무시한 외교력으로 동분서주하며 움직이는 일본이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이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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