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을 키운 800조, 알고 보면 '빚낸 돈'
[송기균의 '마켓 뷰'] 은행들이 버블 재생산의 주범
버블을 키운 ‘돈의 힘’이란 것의 정체가 알고 보면 ‘빚낸 돈’이었다.
지난 3년여 간 통화량이 449조원 증가하였다.(4월18일자 송기균의 ‘마켓 뷰’ 참조) 통화량 증가는 바로 시중 유동성 증가로 이어진다. 그런데 경기가 침체되자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이는 불황기에 나타나는 당연한 경제현상이다. 가계는 실업이 늘고 소득이 줄기 때문에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기업은 물건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시설투자를 늘릴 수 없다. 두 경제주체가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통화당국이 통화량을 늘리는 데 늘어난 돈은 소비나 투자로 흘러가지 않는다.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은 돈은 금융권에서 맴돈다.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실물부문의 돈이 오히려 금융부문으로 흘러나온다. 이것이 부동자금 800조원의 정체이다.
돈이란 본질적으로 수익을 추구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다. 부동자금이 많다는 것은 수익을 낼 부문이 없기 때문에 임시로 대기하는 돈이 많다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서 수익의 기회가 보이면 짧은 시간에 그리로 쏠리게 된다. 수익을 좆는 돈의 속성 때문이다.
때 마침 정부에서 부동산에 대한 규제를 풀었다.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수익을 낼 수 있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규제를 풀어준 것은 그 쪽으로는 돈이 가도 좋다는 강한 신호를 정부가 보낸 것이니까 돈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리스크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정부가 돈의 흐름을 부동산으로 유도한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부동산으로 일부의 부동자금이 흘러가자 가격이 급등한다. 가격이 급등하면 수익에 목말라하던 다른 부동자금이 일시에 몰려든다. 수익을 추구하는 돈의 속성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것이 바로 버블이 형성되고 팽창하는 전형적인 모델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 3년간 통화량이 급증하여 천문학적인 금액이 부동자금으로 대기 중인데 정부에서 부동산 규제완화라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부동산 버블을 촉발하였다.
지금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버블의 주범은 과다한 통화량 증가와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의 두 가지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다음 기회에 따져 보기로 하겠다.
둘 중에서 버블팽창에 더 큰 기여를 한 것은 과다한 통화량 증가이다.
비유하자면 통화량의 과다증가는 버블이라는 독버섯이 서식하기 좋은 토양이므로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가 없었더라도 또 다른 요인으로 또 다른 형태의 독버섯이 언제든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금액의 부동자금의 일부가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어 주식시장에서 버블을 형성한 것이 그 한 예이다.
정작 무서운 사실은 따로 있다. 통화량이 증가하는 메커니즘이다. 이것이 버블이 반드시 붕괴하고야 마는 버블붕괴의 필연성을 입증해주는 키워드다.
우리나라의 통화량을 누가 결정하느냐고 물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국은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통화량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 하지만 통화량 공급에 있어서 한국은행은 그 일부만을 담당한다. 나머지 더 큰 부분은 은행이 담당한다. 그러므로 통화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일은 은행이 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은행이 어떻게 통화량을 증가시키는가? 우리가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배운 통화창출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은행은 돈을 찍어내어 본원통화, 즉 현금을 증가시키는데, 은행은 통화창출을 통해 한국은행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통화를 공급한다.
통화창출 이론은 다소 복잡하여 이 자리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하지만 그 핵심은 간단하다. 은행이 100을 대출하면 통화량이 100만큼 증가한다고 이해하면 핵심을 이해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은행이 대출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지난 3년 간의 총통화(M2) 증가와 대출증가액을 비교해 보면 금방 이해된다. 지난 2월17일자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8년 금융기관대출금 동향’에 의하면 2006년~2008년의 3년 간 금융기관의 대출금 총액은 397조원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동안 총통화(M2) 증가금액은 374조원이다. (2006.1월부터 2009.2월까지의 증가액은 449조원이다) 대출증가가 바로 통화량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버블의 주범인 통화량 증가가 대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무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대출이란 부채다. 그러므로 통화량이 증가하여 시중 유동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빚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년여 간 449조원의 통화가 늘고 그 결과 지금의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거대한 버블이 형성되었는데, 그 에너지가 결국 빚을 내서 마련한 돈이었다. 4월17일자 <뷰스 칼럼> ‘돈 빌려 주식 사고, 아파트 투기까지’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버블에 의해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지금이라도 뛰어들지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버블을 키우는 돈의 힘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빚내서 마련한 자금이라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잘 알듯이 은행대출이란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이다.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는 그 돈으로 투자한 자산을 다시 팔아야 한다. 그 결과 자산가격은 하락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버블은 반드시 꺼지는 것이다.
빚내서 투자한 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동안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투자자는 이익을 누리고 은행은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챙길 수 있으니까. 문제는 버블로 인한 자산가격 상승이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산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심각한 상황이 전개된다.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데 투자한 자산가격이 계속 떨어진다. 은행은 손실을 줄이려고 원금상환을 독촉한다. 당연한 수순으로 압류와 경매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은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모든 버블의 경우 붕괴되는 속도가 버블형성 때보다 몇 배 더 급속히 진행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대출을 갚기 위해 서로 앞다투어 자산을 내다 팔려 할 테니까.
마치 대형극장에서 불이 나자 너도나도 좁은 출구를 향해 돌진하지만 무사하게 빠져 나오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대부분은 다치거나 죽거나 큰 피해를 입는다. 버블의 종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버블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위기 발생 이후 통화량이 줄고 있다. 통화량이 줄어드는 것은 경제주체들이 대출을 상환하여 빚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버블이 통화량 증가의 결과이므로 버블붕괴 이후 통화량 감소는 자연스런 것이다. 통화량 감소는 미국만이 아니라 금융위기를 겪는 모든 국가들의 공통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통화량이 줄기는커녕 늘고 있다. 그것도 두 자릿수로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버블이 무섭게 달아오르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버블이 붕괴되어 빚을 줄여가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빚이 늘어나고 그 결과 버블이 팽창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기가 두려울 정도다.
이 버블을 키운 힘이 빚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빚은 언젠가는 갚아야 하기 때문에 버블 이후를 예상하는 것이 더 두렵다. 빚을 내서 버블을 키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금 미국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데도 우리 경제는 거기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답답하면서 두려움이 앞서는 이유다.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2), 동원증권 런던현지법인 대표, 코스닥시장 상장팀장, 코스모창업투자 대표, 경기신용보증재단 신용보증본부장, (현) 기업금융연구소 소장. 최근 저서 <불황에서 살아남는 금융의 기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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