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오바마 보호주의'가 끝내 현실로 나타났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또하나의 최악의 악재가 출현한 셈이다.

오바마 정권, 세계대전 촉발시킨 '보호주의'로 회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8천19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안을 미 하원에 제출하면서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조항을 부칙에 삽입했고, 하원은 이를 함께 통과시켰다.

'바이 아메리카' 조항은 미국의 국내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8천190억달러의 경기부양 재원을 활용해 도로와 교량등 인프라 건설 공사를 할 때에는 미국산 철강 제품 이외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못박고 있다. 이 조항은 지난 1933년 대공황 당시 도입되면서 국제적 보호주의 경쟁을 촉발시키며 끝내 제2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바 있다.

오바마와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US스틸과 뉴코등 철강업체와 노동조합의 요구에 따라 '바이 아메리카'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원은 동시에 이날 교통안전국(TSA)이 직원들의 유니폼과 각종 섬유제품을 구입할 때 100% 미국산 제품만을 구매하도록 하는 규정도 통과시켜, 보호주의 부활을 노골화했다.

미 상원은 한술 더 떠, 철강뿐만 아니라 시멘트와 같은 다른 원자재도 '바이 아메리카' 조항에 포함시키는 더 강화된 부칙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보호주의'에 국내외 반발 확산

오바마가 보호주의를 부활시킨 데 대해 세계가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물론, 미국내에서도 보호주의 혜택을 입을 철강업계 등은 환영하나 수출의존도가 높은 미국기업들이 반발하는 파문이 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29일 일제히 오바마의 '바이 아메리카' 정책이 앞으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둘러싸고 심각한 통상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미국 상공회의소 등은 '바이 아메리카' 정책이 중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들과 통상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의회 지도부에 서한을 전달했다. 토머스 도너휴 미상공회의소 회장은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확대한 것은 우둔한 생각"이라면서 "미국은 앞으로 무역 상대국으로부터 국제 무역규정을 위반한 데 따른 같은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캐터필러와 제너럴일렉트릭(GE)도 "자유무역주의에 대한 전쟁 선언"이라고 비난하면서 해외에서 미국 기업이 보복을 당하게 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확대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보스 "미국, 자기 발에 총 쏘지 말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도 미국의 보호주의 회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29일 "무역에 장벽을 세우는 것이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며 "지금같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발에 총을 쏘지 않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도 전날 다보스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보호주의가 현재의 금융위기를 더 심화시키고 지속시키게 될 뿐"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국 수출에 치명타

문제는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이다. 미국의 보호주의 출현은 수출의존도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 치명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장 철강 수출 등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오바마가 예고했듯 앞으로 한미FTA 협상과정에 자동차 등에도 그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G20 회담때 보호주의 출현에 대한 강한 경계감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미국은 끝내 보호주의의 길로 걷기 시작한 양상이어서, 오는 4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G20 회담에서 치열한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오바마 보호주의'는 오바마가 '미국대통령'일뿐임을 일깨워주는 또하나의 분명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