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미국음모 희생물' 자초말라
<분석> 현대차와 S&P, 오바마 정권, 그리고 현대차 파업
상하이차 철수로 벼랑끝에 몰린 쌍용차의 한 관계자가 한 탄식이다.
자동차업계는 지금 위기다. 쌍용차, GM대우 등 국내자동차뿐만이 아니다. 미국 빅3가 파산 직전에 몰리는 등 전세계 자동차업계가 공황적 위기를 맞고 있다. 누가 살아남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살아남으면 욱일승천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관측이다. 세계적 장기 불황으로 자동차를 제때 교체하거나 새로 사지 못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잠재수요가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 호황'은 몇년 뒤 일이다. 지금은 상황이 심각하다. 현대차만 해도 지난해 12월 미국 자동차 판매가 반토막났다. 원-달러 환율이 그렇게 폭등했건만 일본경쟁사는 물론, GM-포드보다 더 박살이 났다. 그동안 현대차가 약진하던 인도 등 해외 신흥시장 판매에도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에도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14일 현대차-기아차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내렸다. 한 단계 내렸을 뿐인데 투기등급이 됐다. 그동안 잘나가는가 싶던 현대차-기아차가 사실은 '경계선'에 서 있었다는 의미다.
S&P는 15일 현대차-기아차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췄다. 몇달 뒤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낮추겠다는 경고다. S&P가 실제로 투기등급을 낮추면 현대차-기아차는 벼랑끝 위기에 몰리게 된다. 현대차-기아차가 외국은행에서 꿔온 돈이 2조3천억원이 넘는다. 투기등급이 되면 만기전에 돈을 회수해갈 수 있는 옵션이 걸려있는 외채다. 만에 하나,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현대차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함은 물론, 환율이 폭등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도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현대차-기아차 노조가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S&P가 향후 신용등급을 낮출 두가지 변수로 지목한 대목이다. 하나는 적자 여부, 다른 하나는 노사관계다. 노조는 후자를 주목해야 한다. 파업이 발생하는 등 노사관계가 악화되면 즉각 S&P가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국제신용평가사라는 데는 본디 문제가 많은 곳이다. 신용평가사 직원들의 연봉은 짜다. 그래서 고액을 주는 투자은행 등으로 옮기는 게 신용평가사 직원들의 꿈이다. 그러다보니 물밑에서 객관적이지 못한 평가가 적잖이 있었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때 이같은 '모럴해저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숱한 지탄을 받기도 했다.
또하나, 국제신용평가사는 미국 등 선진국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토록 망가진 미국에게도 여전히 AAA를 부여하는 기관이다. 미국과 이해를 같이 한다. 이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무장관 내정자 등 오바마 정권은 벌써부터 한미FTA 재협상 운운하며 한국자동차를 정조준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일본 두들기기'에 이어 이번엔 만만한 '한국 두들기기'가 시작된 양상이다.
오바마 정권이 이달말 출범하면 한국자동차는 집중타깃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본디 미국은 공화당 정권보다 민주당 정권이 더 장사꾼 속성이 강하다. 이들은 미국 빅3를 살리기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 정권이다. 더욱이 빅3는 오바마의 토대다. 이럴 때, 만약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하고 S&P 등이 이를 빌미로 현대차-기아차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낮추고 월가 등이 공격적으로 외채 회수에 나서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현대차에 대신 새로 외자를 빌려주려할 국제금융기관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다들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살리려고 혈안인데...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한국경제는 물론, 현대차와 현대차 노조에게도 치명적일 것이다. 국민적 분노는 현대차 노조로 집중될 것이다.
지금 현대차 노조는 사측의 2교대 약속 불이행, 무잔업 무임금 강행 등을 이유로 파업을 추진중이다. 노조입장에선 사측이 단체협약을 지키지 않은만큼 파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 불황기이자 절대 위기다. 전세계가 상대방을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는 살벌한 치킨게임중이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쌍용차 노조의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고통을 분담할 때는 분담해야 한다. 대신 나중에 좋아지면 고통을 분담한만큼 더 달라는 약속을 얻어내면 된다.
자동차산업은 한국경제의 기둥이다. 1997년 IMF사태도 기아차 부도가 결정타 역할을 했다. 다시 자동차산업이 위기의 빌미가 돼선 안된다. 이번 위기만 잘 넘기면 탄탄대로가 보이는 시점에서, 국제적 음모의 희생물이 되는 우를 범해선 결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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