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일감 받으면 '로또 됐다'고 한다"

<현장> 새해 첫날 영등포 인력시장 "12월에 겨우 5번 일해"

"일이 있을지 모르겠어. 오늘도 그냥 가면 큰일인데..."

새해 첫 인력시장이 문을 연 2일 새벽 4시 30분, 서울 영등포로터리 인력시장 앞.

강모씨(56)는 연신 담배 연기를 바닥으로 내뿜으며 한숨을 쉬었다. 벌써 보름 가까이 일을 쉰 탓에 강씨의 초조함은 인력시장에 일용직 노동자들이 늘어날수록 깊어진다. 강씨는 가뜩이나 일감이 줄어든 상황에서 하나 둘씩 모여드는 사람들이 탐탁치 않은 눈치다.

일용직 노동자 강씨 "12월에는 겨우 5번 일해"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강씨는 최근 2달간 월세를 내지 못했다 한다. 그가 보여준 수첩에는 '11월- 9', '12월- 5'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강씨가 지난 두 달간 일한 횟수다. 신통치 않은 허리와 무릎의 고통을 무릅쓰고 매일같이 인력시장에 나왔으나 일거리 따내기란 말 그대로 하늘에 별따기다.

기술자가 아닌 인부들의 하루 일당은 많을 때 7만원, 적게는 6만원이다. 여기서 소개료 5천원과 버스비 4천원을 빼면 남는 돈은 5만원 안팎. 보름을 일해야 최저임금에 근접하지만 강씨에게는 언감생심이다. 12월 한달 동안 고작 25만원을 손에 쥐었다는 의미다.

그는 "예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세 번에 하루는 (현장에) 나갔는데 요즘은 아예 일이 씨가 말랐다"며 "그나마 나오는 일은 30~40대에서 다 가져가서 나 같은 50대는 일이 별로 없다"고 탄식했다.

영등포 인력시장은 창신동이나 남구로에 비해 규모가 적은 편에 속하고 기술직보다 건설잡부에게 일감을 주는 곳이다. 하지만 한창때는 100여명 이상이 일감을 받아갔었다. 그러나 건설경기가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이제는 50~60여명이 모여도 절반도 일거리를 받아가기 힘들다.

남구로역 근처의 새벽 인력시장. 일거리를 찾지 못한 일용직 노동자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끼리 일감 받으면 '로또 됐다'고 한다"

새벽 5시 11분. 뿔뿔이 흩어져 추위를 녹이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시작했다. 인력업체 관계자가 일감을 갖고 나온 것. 현장 시공사에서 한 번이라도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일감 배정은 10여분만에 마무리됐다. 1시간을 넘게 기다린 강씨는 다행히 아파트 건설현장으로 가기 위해 20인승 미니밴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공사현장별로 많게는 10명, 적게는 2명씩 무리지어 떠난 영등포로터리에는 여전히 30여명의 사람들이 남았다.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다른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못 받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찾아온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인력업체들이 매일 출근해 얼굴을 익힌 사람들에게 일을 주기 때문이다.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당분간 일감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땜방'이라도 할 욕심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김모씨는 "원래 남구로로 나갔는데 요즘 일감을 얻지 못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와봤다"며 "우리끼리는 (일감 받으면) 로또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근 용역업체 관계자는 "겨울에는 원래 일감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지만 요즘은 공사를 중단하거나 사람 수를 줄이는 곳이 많아 더 일자리가 없다"며 "일하러 오는 사람들은 늘어나지만 건설경기가 살아날 때까지는 날이 풀려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용역업체 "구직자는 늘지만 공사현장은 오히려 사람 줄여"

아침 6시, 영등포로터리와 10분 거리인 영등포역 인력시장도 일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영등포역 인력시장에 모인 30여명의 사람들은 아무도 일을 나가지 못했다.

직장인들의 출근길이 시작되기도 전에 하루를 공친 이들은 여기저기 모여 건설현장 외에 일감을 수소문하거나 정보지 <교차로>를 뒤적이기 바빴다.

새벽 4시에 나왔지만 일감을 받지 못한 이석재씨(48)와 한모씨(30)도 지난 해 크리스마스 이후로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해 여름부터 고시원에서 혼자 살고 있다. 경기도에서 식당 일을 하고 있는 아내를 못 본 지도 꽤 됐다.

이씨는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인력회사 버스 2대가 항상 서 있었는데 12월부터 구경도 못하고 있다"며 "인력업체 사람들이 아예 안 나온 것도 벌써 열흘째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가끔 떨어지는 일도 현장 하나에 7~8명이 붙을 정도로 치열해서 일 따기가 점점 힘들다"며 "20년 넘게 이쪽 일을 했지만 이렇게 힘들기는 처음이다. 당장 고시원 방세 20만원도 못내 월말까지는 짐을 싸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다방 심야요금 3천원도 아껴야할 판"

영등포역 인력시장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축에 드는 한씨도 크리스마스 이후 딱 하루 일을 했을 뿐이다. 그는 수백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석 달 전부터 역 인근 24시간 다방에서 하루 6천원(심야 3천원)을 내며 버티고 있지만 줄어든 일감에 노숙인 주거 시설에 신세지는 일이 잦아졌다.

출근길 직장인들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한 6시 40분께 이씨는 "경제가 어렵다고들 얘기해도 노가다들이 다 굶겠냐. 날씨 따뜻해지면 나아진다 생각하고 별 수 없이 내일도 나와야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뒤, "소주나 한 잔 하고 들어가야겠다"며 고시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한씨도 "지금 다방에 들어가봤자 3천원을 더 내야하니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보는 게 낫겠다"며 추위를 피해 영등포역사로 발길을 옮겼다.

아침 7시. 구직자들이 일감을 놓쳐 하루를 마감한 인력시장 휴게소는 어느새 노숙인 주거시설에서 밤을 보내고 나온 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2009년 새해 첫날도, 이들에겐 단지 힘들었던 어제와 다름없는 또하나의 오늘일뿐이었다.
최병성 기자

댓글이 2 개 있습니다.

  • 19 13
    ㅁㅁ

    딴나라 알바하는 애들도 시위대열에 합류할 것
    배고픈데에는 장사없지.
    여기에 김정일 장군님 운운하는 알바놈도 명바기 경제파탄때문에
    굶주린 배을 움켜잡다가 결국은 은근슬쩍 反한나라당 시위대열에 합류하게 될것.
    다들 각자 알아서 근검절약하고 헤쳐나갈 준비하는게 좋을 것.
    이미 현정권은 아무런 능력도 없고 방송국, 은행, 공기업 팔아
    자기들 뒷돈챙길 궁리만 하고 있으니.

  • 25 17
    111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면 실업자는 넘쳐나.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폐해
    사람은 넘쳐나고 일감은 점점 더 줄어들고
    부동산거품 투기 더이상 안한다니까.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