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은 굶어죽으면서도 볍씨를 지켰다"
<뷰스칼럼> 어떤 나라가 먼저 대불황 늪에서 빠져나올까
모 대학병원이 석달째 월급을 못줄 정도...
며칠 전 송년모임때 만난 한 병원 원장은 강북의 유명 대학종합병원이 석달째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IMF때도 없던 일로 충격적이었다. 대불황이 도래하면서 환자가 급감했기 때문이라 했다.
"그 대학병원만 그런 게 아니다. 지금은 어느 대학병원을 가도 며칠씩 기다리지 않고 당일에 바로 입원할 수 있다. 병실의 30%가량이 텅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살기가 힘드니 죽을 병이 아니면 병원을 안찾고 있다는 얘기다. 병원을 찾아도 돈이 많이 드는 MRI 검사 같은 것을 안받으려 한다. 대학병원이 이 정도니 일반 병원 사정은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병원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얼마 전 보험공단이 내년도 건강보험료를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 생각을 한 측면도 있으나, 또다른 숨겨진 이유는 올해 예상됐던 지출이 급감하면서 돈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그만큼 요새 국민들이 병원을 안 찾고 있다는 얘기다. 아파도 병원을 갈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지금 국민들 삶이 고달프다."
서울 명문대 입학을 말리는 아버지의 눈물
대구의 <매일신문> 18일자엔 서울 상위권 사립대에 합격한 아들에게 지역 국립대학을 가라고 서울행을 말리는 한 아버지의 사연이 실렸다. 아버지의 회사가 2개월째 생산을 줄이고 명예퇴직을 검토중이며 회사측이 밝힌 명퇴대상에 그도 포함돼 있기 때문. 또다른 학부모도 서울 유명 사립대에 지망하는 딸에게 "두 말 말고 학비 덜 들고, 취직걱정 덜한 교대(敎大) 가라"고 윽박지르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은 "학비에다 별도의 생활비를 부담해야 하는 '서울 유학'을 둘러싼 부모와의 의견차로 자녀가 가출하는 일도 발생하는 등 극한의 경기불황 속에 맞는 올해 대학입시는 시작단계부터 '눈물' 고난길을 예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녀들 교육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하는 우리 부모들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몰리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풍광이었다.
고려인의 '볍씨' 정신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난 원로금융인이 며칠 전 언론계 지인들과 송년 오찬을 했다. 언론계 사정은 요즘 엉망이다. 한 마이너 신문사는 지난달부터 월급을 주지 못하고, 또다른 신문사는 내년에 30%를 감원하든지 임금을 30% 줄이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할 정도다. 이러다가 쓰러지는 언론사들이 속출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이 원로가 언론계 지인들에게 이런 덕담을 했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다. 잘들 견뎌내야 한다. 1937년 고려인들이 스탈린에 의해 큰 고초를 겪었다. 한겨울에 연해주 살던 고려인들을 기차에 실어 역도 없는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내다버렸다. 추워서 많이 얼어죽고, 먹을 게 없어 또 많이 굶어죽었다. 그때 깡말라 굶어죽으면서도 끝내 먹지 않은 게 있다. '볍씨'였다. 볍씨마저 먹으면 정말 희망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부모, 형제, 자식이 굶어죽어 나갈 때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볍씨만은 지켰기 때문에, 다음해 봄이 왔을 때 땅을 일구고 볍씨를 뿌려 오늘날과 같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게다."
이 원로가 말한 우리시대의 '볍씨'는 무엇일까.
기자같은 글쟁이들에게는 '정신'일 게다. 기업에겐 '최고의 경쟁력'일 거다. 정부에겐 재정, 즉 국민돈일 게다. 국민의 피같은 돈을 어려운 국민들을 위해서만 알뜰살뜰 써야지, 사적 이해관계 때문에 쓰러져야 할 부실기업 등에게 밑빠진 독처럼 쏟아부어선 안될 거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런 쪽으로 가지 않는 분위기이나...
"누가 먼저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지금은 세계 모두가 어렵다. 단지 정도 차가 있을뿐이다. 앞으로 상황은 더 나빠질 게 확실하다. 누가 먼저 대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똑같이 상황이 나쁠 때는 노사정이 똘똘 뭉친 나라가 가장 먼저 빠져나올 거다. 집안이 어려울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가족구성원들이 서로 아끼고 고통을 나눠갖고 하면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된다."
외국계은행 고위임원이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런 얘기도 덧붙였다.
"다행히 한국 기업들은 한국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국제적 경쟁력이 있다. 국민도 세계 어떤 국민보다 탁월하다. 남은 건 정부다. 한국정부에 대한 평가는 국제사회에서 그리 높지 않다. 위기대응이 느리다. 위기의 심각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가 많다. 시간이 좀 지나면 문제가 풀리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 걱정되는 건 한국내 갈등이 커져가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론 제대로 노사정 단결을 이끌어낼 수 없다. 한국에겐 정부와 국민간 신뢰 회복, 소통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제3자'의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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