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후임 국무총리? 시켜줘도 안 한다!"
<인터뷰> 김종인 의원 “2007년 대선 핫이슈는 경제될 것”
"나는 할 일과 못할 일을 구분할 줄 안다. 자리가 탐나서 일하지는 않는다"
여권 일각에서 이해찬 총리의 유력 후임자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김종인(66) 민주당 의원의 일갈이다.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총리를 시켜줘도 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김 의원은 그 이유로 "정책이란 시기가 중요하다. 지금 해봐야 현황 파악하고, 계획하다 보면 내년에나 정책을 실행하게 되는데 대선 정국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더불어 그는 “참여정부가 서민계층에 대한 보호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화려하게 출범했으나 3년여가 지난 지금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며 경제성적으로 C-를 준 뒤, “DJ 정권 말기처럼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식의 무리한 정책을 펴지 말고 현상 유지만 잘 해 다음 정권에게 넘겨주는 것이 낫다”는 뼈 있는 조언을 했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에게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만 꾸지 말고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는 “내년 대선은 경제가 당락을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는 예의 주장을 폈다.
4선 의원인 김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국민경제자문회의위원 등을 역임한 경제석학으로 우리나라 경제계의 산 증인 중 한 사람이다. 해박한 이론과 풍부한 경험, 일관된 경제철학을 지닌 탓에 역대정권이 경제가 난관에 부딪칠 때면 경제부총리로 거론되곤 했다.
지난 10일 오전 10시부터 국회의원 회관에서 가진 인터뷰는 1시간여 동안 진행되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DJ 정권의 보수적 경제관료 중용한 것이 패인
뷰스앤뉴스 : 참여정부 3년 경제정책에 점수를 준다면.
김종인 : 후하게 주면 C 마이너스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서민계층에 대한 보호였다. 대선 때부터 이 부분을 상당히 강조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어떤가. 더 악화되었다.
거시지표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결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경제문제에 대한 인식이 처음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자승자박한 면이 없지 않다. 전 정권인 국민의 정부에서 문제를 엄청나게 안고 넘어왔는데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 부담을 털어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DJ 정권에서 일 하던 사람들을 그대로 기용하다보니 그랬다. 그러다 보니 시간만 허비한 꼴이 되었다.
뷰스 : 앞으로도 낙관적이지 않다는 뜻인가.
김 : 금년 경제성장률을 5%로 잡았는데 국제적인 상황을 보더라도 5% 달성은 힘들 거다. 4% 조금 넘을까. 이는 최근 수치를 봐도 그렇다. 수출도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 소비 기대심리도 그렇고. 전망처럼 되지 않을 거다.
정부가 경제정책을 뚜렷이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그게 더 문제다. 예를 들어, 교통체증이 심해져 물류비용이 늘어난다고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 이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그는 일본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지난 10여 년은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후 일본은 깨어나고 있다. 그가 다카나카라는 교수를 내각의 금융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금융개혁을 대대적으로 했다. 보수적인 관료들이 저항하는 것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우편 민영화, 관료 개혁 등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은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처칠은 지도자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역사공부를 많이 해 국가 흥망성쇠를 아는 식견이고, 둘째는 사람 보는 눈이라고 했다.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실패는 집권 초기 보수적인 경제 관료를 중용한 것에서 기인한다. 임기동안 현상 유지만 해도 잘 하는 거다. 국민의 정부 임기 말처럼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신용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남발하는 식의 무리수는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기 끝이 보이니까 조급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뷰스 : 연초에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를 화두로 제기했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선거용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
김 : 그런 것 같은데, 정부 스스로 양극화 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무를 지닌 당사자다.
예전 정권들에서는 양극화와 같은 문제가 없었는가? 있었다.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양극화를 사회 이슈화하는가. 심화되었다면 적극적으로 해소 방안을 찾아야지 그것이 정치적 논의의 사안인가. 정권을 갖고 있는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풀어야 할 과제다.
피부로 느껴지는 양극화 문제,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실패 탓
뷰스 : 참여정부는 양극화의 원인을 지난 시대의 성장통의 결과라고 한다.
김 : 변명이다. 양극화라는 말은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말인데 국제적 수준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의 소득분배 지수는 양호했다. 미국 신용평가 기관 책임자가 말했듯이 현재도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은 심해졌다고 느끼고 있다. IMF 사태 이후 중산층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극화의 책임은 현 정부가 더 크게 느껴야 한다. 정부도 시인하지 않았는가. 문제가 심각하다고. 그렇다면 해소 방안을 내놓아야지 세금을 올리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러다보니 또 다시 성장이니 분비니 하는 논란만 일고…. 논쟁은 학자들이 할 일이지 정부가, 정치인들이 할 일이 아니다.
성장 속에서 분배를 추구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70년대, 고도성장의 시기였다. 성장이 최우선의 가치였다고 해서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산업화는 그 자체로만 끝나지 않는다. 사회 전체를 변화시킨다. 그로 인해 사람의 마음도 변한다. 절대빈곤이 해소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과 같은 것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민심을 방치해 두었다가는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니까 위정자가 나서서 해소 방안을 찾고 하는 거다. 그래서 생기는 것이 복지정책이다. 70년대 생긴 근로자 재산 형성법, 사회의료보험 등이 그런 예다.
지금 일반 국민들은 소득 분배구조가 나빠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비정규직 또한 많게는 8백만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들의 월급이 정규직의 50%밖에 안 된다는 데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돈이 있어야 한다.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지가 관건이다. 경제가 글로벌화 되면 모든 것을 개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기업의 세계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임금을 쉽게 높일 수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런 것이 현실이다. 그런 것을 풀어내는 것이 정책이고, 정치력이다.
참여정부가 자랑하는 것이 주가가 1300에 도달했다는 것인데, 2004년 세계 경제는 30년만의 호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3% 조금 넘었다. 자랑할 수준이 아니다. 또 국제수지에 있어서 흑자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국내의 소비가 줄면 수입 물량이 줄어 흑자는 당연히 나는 거다.
또 주가가 오른 것을 정권의 업적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의 40%가 외국 돈이다. 그 중 10%만 빠져도 주가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구조다.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하루 오고가는 돈이 1조8천억 달러가 넘는다. 그런 돈이 오고가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의 주자를 상승시키고, 폭락시키고 있다. 우리가 잘 해서라기보다 외부적 요인 때문이다.
경제를 운용하는 틀과 환경이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다. 이 속에서 대처를 잘 하는 것이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의 과제다. 그런데 우리네 사고방식은 아직도 옛날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문제다.
뷰스 : 이렇게 꼬인 경제정책을 풀어달라는 요청이 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김 : 정책이란 시기가 중요하다. 정권 말기에 정책을 추진하려면 보통 힘으로는 안 된다. 지금 해봐야 내년에나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내년은 대선정국이 아닌가. 무엇을 할 수 없는 시기다. 임기 말에 획기적인 정책을 한다는 것은 순리상 맞지 않다.
뷰스 : 그러면 다음 정권에서 요청이 온다면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인가.
김 :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웃음) 나는 할 일과 못 할 일을 구분할 줄 안다. 자리가 탐나서 일하지는 않는다.
뷰스 : 경제정책 중 가장 먼저 수정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 : 정책이란 여러 가지 요인을 총망라해서 틀을 짜야 하는데 기본적인 틀이 보이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러다보니 수시로 나타나는 현상에 맞춰 정책을 입안하고, 다시 문제가 나타나면 또 다시 수정하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아닌가.
그러면 정책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로드맵은 잔뜩 만들었는데 만들었으면 가는 길을 관리해야 하는데 그런 게 보이질 않는다. 관리자의 능력도 문제고. 잘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준비된 대통령에게 임기 5년은 결코 짧지 않다
뷰스 : 현재 차기 대권주자로 여러 사람들이 거론되고 있다.
김 : 제발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비책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집권 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준비를 좀 했으면 좋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지 고민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대통령 임기 5년, 결코 짧지 않다. 임기가 5년밖에 되지 않아서 일 하기 어렵다며 4년 중임제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4년 중임제를 해도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 면 똑같다.
노 대통령도 준비는 별로 안 한 것 같다. 지금 대권 후보로 나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뷰스 : 그러면 경제전문가 입장에서 보기에 자질 있어 보이는 사람은 누군가.
김 : 그들을 평하는 것은 실례다. 다만 대권을 꿈꾸는 사람은 최소한 세 가지는 갖춰야 한다고 본다. 이는 실패한 대통령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첫째, 주변이 간단해야 한다. 둘째, 특정 이해집단과의 연결고리가 없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탐욕스럽지 않아야 한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런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끌어갈 수 있는 각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도 있어야 한다. 경제정책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때문에 경제를 끌고 갈 지휘봉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나라가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958년 프랑스는 드골의 등장으로 근대 프랑스의 기초를 확립했다. 영국의 대처 총리 같은 사람도 그렇다. 당시 영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대처의 출연으로 오늘의 영국경제가 다시 유럽에서 독일 다음 가는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지도자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뷰스 : 국민도 그런 지도자를 고르는 안목이 필요할 텐데...
김 : 국민도 갈 데까지 가다 보면 혜안이 생긴다.(웃음) 60년대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IMF사태 이전까지) 선거에 있어서 경제가 크게 정치문제화 된 적이 없다. 국민들은 경제는 누가 해도 저절로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경제정책 운영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기 대선은 경제가 큰 이슈가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문제가 처음 이슈화된 것은 1956년 제 3대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란 구호를 내걸었다. 당시의 경제상황을 그대로 표출한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나라를 다스렸던 이승만 정권은 결국 몰락했다.
5.16 쿠데타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혁명공약으로 내건 것 역시 "절망과 기아에 허덕이는 민생을 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당시 국민들에 강하게 어필했다.
정부 스스로가 양극화가 심하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 그 문제를 자인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다음 대선에서는 경제가 이슈화될 수밖에 없다.
뷰스 : 삼성이 8천억원을 사회에 헌납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 용처도 정해지지 않고 논의조차도 지지부진하다.
김 : 일단 삼성이 너무 무책임하게 기금을 내놓았다. 기여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내놓으니까 생색도 안 나는 거다. 반재벌 정서 때문에 내놓은 것 같은데 사실 반재벌, 반기업 정서는 기업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국민들의 마음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다른 나라도 대기업들이 초기에는 지탄을 받았다. 그러다가 후세들이 사회에 많은 기여도 하고, 노력도 하면서 나름의 입지를 확보해 나갔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거다.
8천억원은 소비적으로 낭비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총리, 할만큼 했고 능력도 소진되었을 텐데...
뷰스 : 이해찬 총리의 거취를 놓고 여권 내부는 물론 정치권이 일주일째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퇴니, 유임이니 분분한데 어떻게 보는가.
김 : 정치인은 진퇴를 분명히 해야 정치인으로서 입지가 분명해 진다. 정치인은 국민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스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대통령과 상의해서 결정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정권 말년이 되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기 쉽다. 그로 인해 좋지 않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골프 파문이 전형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총리로) 2년 정도 일했으면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 능력도 소진되었을 테고... 사퇴 여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뷰스 : 여권 내부의 향후 역할 관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말도 있다.
김 : 그건 핑계다. 정치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 역학관계를 따져 가며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가 발전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은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뷰스 : 최연희 의원 사건도 그렇게 보는가.
김 : 자리가 아깝다고 버티는 꼴인데 우습지 않은가.
뷰스 : 여권 일각에서는 이 총리 후임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 중 김 의원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제의가 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김 : 나는 내 능력과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다. 자리가 좋다고 아무 거나 슬쩍슬쩍 집어먹는 사람은 아니다.
뷰스 : 다음 정부가 해야 할 경제정책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 : 사실 다음 정부의 경제정책은 더 어려울 것이다. 참여정부가 남은 임기동안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를 완성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미국과 FTA가 이뤄지면 우리 경제가 대응해나가야 할 문제가 참으로 많다. 헌데 그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된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문제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1.13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인데 이를 어떻게 높이느냐도 난제 중 하나일 것이다. 참으로 심각한 지경이다. 이는 단기간에 승부가 나는 것도 아니라 쉽게 올릴 수가 없다.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단일민족이란 생각에 대해 유연성을 갖는 것이다. 노동력 확보도 차원에서도 그렇고,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국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소비 시장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란 개념을 고수하면서 치열한 국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왔다.
또 노령화,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양극화에 따른 일반 국민들의 저항을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 성장 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먹고 사는 문제는 기업들에게 맡겨도 된다. 한동안 정부가 이를 찾느니 어쩌느니 해서 말이 많았는데 그것은 기업이 가장 잘 한다.
내가 경제정책에 관여했을 때, 나 역시 앞으로 무엇을 수출해야 할지 고민하고 걱정한 적이 있다. 그때 반도체란 분야를 찾은 것은 기업이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가는 기업이 가장 잘 한다. 그들이 가장 잘 찾는다. 기업이 그것을 찾아 오면 정부는 잘 할 수 있도록 환경만 조성해주면 된다.
앞으로 경제 정책은 간섭은 최소한으로 하면서 그들의 영역은 최대한 확보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신 정부는 룰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재벌문제 같은 것은 개방화 사회가 되면 저절로 정리가 된다. 늦더라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우리는 또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여건이 있다. 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햇볕정책은 곧 돈’이다. 남북관계에 변화가 생겼을 때 돈을 지불할 능력과 의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한국경제를 튼튼하게 만들어 놓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 통일과정에서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도 독일은 이제는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성공 동력은 바로 서독의 경제력이었다. 우리의 경우 그 당시 독일의 여건과 외적으로는 비슷한 것 같은데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독일은 내부적으로 불만이 없었던 상태다. 우리는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다. 우리는 통일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그것을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방향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다음 대통령은 준비된 사람이길 바란다. 국민들도 그 점을 잘 알 거라 믿는다.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국민밖에 믿을 곳이 없다. 한국의 발전은 다 국민들의 의식변화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민주화 과정도 말은 일부 운동권 세력이 했다고 하지만 국민의 의식이 민주화를 가져온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 이해찬 총리의 유력 후임자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김종인(66) 민주당 의원의 일갈이다.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총리를 시켜줘도 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김 의원은 그 이유로 "정책이란 시기가 중요하다. 지금 해봐야 현황 파악하고, 계획하다 보면 내년에나 정책을 실행하게 되는데 대선 정국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더불어 그는 “참여정부가 서민계층에 대한 보호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화려하게 출범했으나 3년여가 지난 지금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며 경제성적으로 C-를 준 뒤, “DJ 정권 말기처럼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식의 무리한 정책을 펴지 말고 현상 유지만 잘 해 다음 정권에게 넘겨주는 것이 낫다”는 뼈 있는 조언을 했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에게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만 꾸지 말고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는 “내년 대선은 경제가 당락을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는 예의 주장을 폈다.
4선 의원인 김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국민경제자문회의위원 등을 역임한 경제석학으로 우리나라 경제계의 산 증인 중 한 사람이다. 해박한 이론과 풍부한 경험, 일관된 경제철학을 지닌 탓에 역대정권이 경제가 난관에 부딪칠 때면 경제부총리로 거론되곤 했다.
지난 10일 오전 10시부터 국회의원 회관에서 가진 인터뷰는 1시간여 동안 진행되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DJ 정권의 보수적 경제관료 중용한 것이 패인
뷰스앤뉴스 : 참여정부 3년 경제정책에 점수를 준다면.
김종인 : 후하게 주면 C 마이너스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서민계층에 대한 보호였다. 대선 때부터 이 부분을 상당히 강조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어떤가. 더 악화되었다.
거시지표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결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경제문제에 대한 인식이 처음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자승자박한 면이 없지 않다. 전 정권인 국민의 정부에서 문제를 엄청나게 안고 넘어왔는데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 부담을 털어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DJ 정권에서 일 하던 사람들을 그대로 기용하다보니 그랬다. 그러다 보니 시간만 허비한 꼴이 되었다.
뷰스 : 앞으로도 낙관적이지 않다는 뜻인가.
김 : 금년 경제성장률을 5%로 잡았는데 국제적인 상황을 보더라도 5% 달성은 힘들 거다. 4% 조금 넘을까. 이는 최근 수치를 봐도 그렇다. 수출도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 소비 기대심리도 그렇고. 전망처럼 되지 않을 거다.
정부가 경제정책을 뚜렷이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그게 더 문제다. 예를 들어, 교통체증이 심해져 물류비용이 늘어난다고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 이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그는 일본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지난 10여 년은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후 일본은 깨어나고 있다. 그가 다카나카라는 교수를 내각의 금융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금융개혁을 대대적으로 했다. 보수적인 관료들이 저항하는 것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우편 민영화, 관료 개혁 등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은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처칠은 지도자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역사공부를 많이 해 국가 흥망성쇠를 아는 식견이고, 둘째는 사람 보는 눈이라고 했다.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실패는 집권 초기 보수적인 경제 관료를 중용한 것에서 기인한다. 임기동안 현상 유지만 해도 잘 하는 거다. 국민의 정부 임기 말처럼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신용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남발하는 식의 무리수는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기 끝이 보이니까 조급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뷰스 : 연초에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를 화두로 제기했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선거용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
김 : 그런 것 같은데, 정부 스스로 양극화 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무를 지닌 당사자다.
예전 정권들에서는 양극화와 같은 문제가 없었는가? 있었다.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양극화를 사회 이슈화하는가. 심화되었다면 적극적으로 해소 방안을 찾아야지 그것이 정치적 논의의 사안인가. 정권을 갖고 있는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풀어야 할 과제다.
피부로 느껴지는 양극화 문제,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실패 탓
뷰스 : 참여정부는 양극화의 원인을 지난 시대의 성장통의 결과라고 한다.
김 : 변명이다. 양극화라는 말은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말인데 국제적 수준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의 소득분배 지수는 양호했다. 미국 신용평가 기관 책임자가 말했듯이 현재도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은 심해졌다고 느끼고 있다. IMF 사태 이후 중산층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극화의 책임은 현 정부가 더 크게 느껴야 한다. 정부도 시인하지 않았는가. 문제가 심각하다고. 그렇다면 해소 방안을 내놓아야지 세금을 올리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러다보니 또 다시 성장이니 분비니 하는 논란만 일고…. 논쟁은 학자들이 할 일이지 정부가, 정치인들이 할 일이 아니다.
성장 속에서 분배를 추구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70년대, 고도성장의 시기였다. 성장이 최우선의 가치였다고 해서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산업화는 그 자체로만 끝나지 않는다. 사회 전체를 변화시킨다. 그로 인해 사람의 마음도 변한다. 절대빈곤이 해소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과 같은 것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민심을 방치해 두었다가는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니까 위정자가 나서서 해소 방안을 찾고 하는 거다. 그래서 생기는 것이 복지정책이다. 70년대 생긴 근로자 재산 형성법, 사회의료보험 등이 그런 예다.
지금 일반 국민들은 소득 분배구조가 나빠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비정규직 또한 많게는 8백만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들의 월급이 정규직의 50%밖에 안 된다는 데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돈이 있어야 한다.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지가 관건이다. 경제가 글로벌화 되면 모든 것을 개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기업의 세계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임금을 쉽게 높일 수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런 것이 현실이다. 그런 것을 풀어내는 것이 정책이고, 정치력이다.
참여정부가 자랑하는 것이 주가가 1300에 도달했다는 것인데, 2004년 세계 경제는 30년만의 호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3% 조금 넘었다. 자랑할 수준이 아니다. 또 국제수지에 있어서 흑자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국내의 소비가 줄면 수입 물량이 줄어 흑자는 당연히 나는 거다.
또 주가가 오른 것을 정권의 업적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의 40%가 외국 돈이다. 그 중 10%만 빠져도 주가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구조다.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하루 오고가는 돈이 1조8천억 달러가 넘는다. 그런 돈이 오고가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의 주자를 상승시키고, 폭락시키고 있다. 우리가 잘 해서라기보다 외부적 요인 때문이다.
경제를 운용하는 틀과 환경이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다. 이 속에서 대처를 잘 하는 것이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의 과제다. 그런데 우리네 사고방식은 아직도 옛날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문제다.
뷰스 : 이렇게 꼬인 경제정책을 풀어달라는 요청이 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김 : 정책이란 시기가 중요하다. 정권 말기에 정책을 추진하려면 보통 힘으로는 안 된다. 지금 해봐야 내년에나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내년은 대선정국이 아닌가. 무엇을 할 수 없는 시기다. 임기 말에 획기적인 정책을 한다는 것은 순리상 맞지 않다.
뷰스 : 그러면 다음 정권에서 요청이 온다면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인가.
김 :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웃음) 나는 할 일과 못 할 일을 구분할 줄 안다. 자리가 탐나서 일하지는 않는다.
뷰스 : 경제정책 중 가장 먼저 수정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 : 정책이란 여러 가지 요인을 총망라해서 틀을 짜야 하는데 기본적인 틀이 보이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러다보니 수시로 나타나는 현상에 맞춰 정책을 입안하고, 다시 문제가 나타나면 또 다시 수정하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아닌가.
그러면 정책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로드맵은 잔뜩 만들었는데 만들었으면 가는 길을 관리해야 하는데 그런 게 보이질 않는다. 관리자의 능력도 문제고. 잘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준비된 대통령에게 임기 5년은 결코 짧지 않다
뷰스 : 현재 차기 대권주자로 여러 사람들이 거론되고 있다.
김 : 제발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비책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집권 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준비를 좀 했으면 좋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지 고민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대통령 임기 5년, 결코 짧지 않다. 임기가 5년밖에 되지 않아서 일 하기 어렵다며 4년 중임제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4년 중임제를 해도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 면 똑같다.
노 대통령도 준비는 별로 안 한 것 같다. 지금 대권 후보로 나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뷰스 : 그러면 경제전문가 입장에서 보기에 자질 있어 보이는 사람은 누군가.
김 : 그들을 평하는 것은 실례다. 다만 대권을 꿈꾸는 사람은 최소한 세 가지는 갖춰야 한다고 본다. 이는 실패한 대통령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첫째, 주변이 간단해야 한다. 둘째, 특정 이해집단과의 연결고리가 없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탐욕스럽지 않아야 한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런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끌어갈 수 있는 각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도 있어야 한다. 경제정책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때문에 경제를 끌고 갈 지휘봉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나라가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958년 프랑스는 드골의 등장으로 근대 프랑스의 기초를 확립했다. 영국의 대처 총리 같은 사람도 그렇다. 당시 영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대처의 출연으로 오늘의 영국경제가 다시 유럽에서 독일 다음 가는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지도자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뷰스 : 국민도 그런 지도자를 고르는 안목이 필요할 텐데...
김 : 국민도 갈 데까지 가다 보면 혜안이 생긴다.(웃음) 60년대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IMF사태 이전까지) 선거에 있어서 경제가 크게 정치문제화 된 적이 없다. 국민들은 경제는 누가 해도 저절로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경제정책 운영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기 대선은 경제가 큰 이슈가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문제가 처음 이슈화된 것은 1956년 제 3대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란 구호를 내걸었다. 당시의 경제상황을 그대로 표출한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나라를 다스렸던 이승만 정권은 결국 몰락했다.
5.16 쿠데타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혁명공약으로 내건 것 역시 "절망과 기아에 허덕이는 민생을 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당시 국민들에 강하게 어필했다.
정부 스스로가 양극화가 심하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 그 문제를 자인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다음 대선에서는 경제가 이슈화될 수밖에 없다.
뷰스 : 삼성이 8천억원을 사회에 헌납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 용처도 정해지지 않고 논의조차도 지지부진하다.
김 : 일단 삼성이 너무 무책임하게 기금을 내놓았다. 기여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내놓으니까 생색도 안 나는 거다. 반재벌 정서 때문에 내놓은 것 같은데 사실 반재벌, 반기업 정서는 기업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국민들의 마음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다른 나라도 대기업들이 초기에는 지탄을 받았다. 그러다가 후세들이 사회에 많은 기여도 하고, 노력도 하면서 나름의 입지를 확보해 나갔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거다.
8천억원은 소비적으로 낭비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총리, 할만큼 했고 능력도 소진되었을 텐데...
뷰스 : 이해찬 총리의 거취를 놓고 여권 내부는 물론 정치권이 일주일째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퇴니, 유임이니 분분한데 어떻게 보는가.
김 : 정치인은 진퇴를 분명히 해야 정치인으로서 입지가 분명해 진다. 정치인은 국민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스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대통령과 상의해서 결정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정권 말년이 되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기 쉽다. 그로 인해 좋지 않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골프 파문이 전형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총리로) 2년 정도 일했으면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 능력도 소진되었을 테고... 사퇴 여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뷰스 : 여권 내부의 향후 역할 관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말도 있다.
김 : 그건 핑계다. 정치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 역학관계를 따져 가며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가 발전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은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뷰스 : 최연희 의원 사건도 그렇게 보는가.
김 : 자리가 아깝다고 버티는 꼴인데 우습지 않은가.
뷰스 : 여권 일각에서는 이 총리 후임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 중 김 의원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제의가 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김 : 나는 내 능력과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다. 자리가 좋다고 아무 거나 슬쩍슬쩍 집어먹는 사람은 아니다.
뷰스 : 다음 정부가 해야 할 경제정책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 : 사실 다음 정부의 경제정책은 더 어려울 것이다. 참여정부가 남은 임기동안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를 완성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미국과 FTA가 이뤄지면 우리 경제가 대응해나가야 할 문제가 참으로 많다. 헌데 그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된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문제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1.13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인데 이를 어떻게 높이느냐도 난제 중 하나일 것이다. 참으로 심각한 지경이다. 이는 단기간에 승부가 나는 것도 아니라 쉽게 올릴 수가 없다.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단일민족이란 생각에 대해 유연성을 갖는 것이다. 노동력 확보도 차원에서도 그렇고,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국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소비 시장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란 개념을 고수하면서 치열한 국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왔다.
또 노령화,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양극화에 따른 일반 국민들의 저항을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 성장 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먹고 사는 문제는 기업들에게 맡겨도 된다. 한동안 정부가 이를 찾느니 어쩌느니 해서 말이 많았는데 그것은 기업이 가장 잘 한다.
내가 경제정책에 관여했을 때, 나 역시 앞으로 무엇을 수출해야 할지 고민하고 걱정한 적이 있다. 그때 반도체란 분야를 찾은 것은 기업이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가는 기업이 가장 잘 한다. 그들이 가장 잘 찾는다. 기업이 그것을 찾아 오면 정부는 잘 할 수 있도록 환경만 조성해주면 된다.
앞으로 경제 정책은 간섭은 최소한으로 하면서 그들의 영역은 최대한 확보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신 정부는 룰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재벌문제 같은 것은 개방화 사회가 되면 저절로 정리가 된다. 늦더라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우리는 또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여건이 있다. 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햇볕정책은 곧 돈’이다. 남북관계에 변화가 생겼을 때 돈을 지불할 능력과 의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한국경제를 튼튼하게 만들어 놓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 통일과정에서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도 독일은 이제는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성공 동력은 바로 서독의 경제력이었다. 우리의 경우 그 당시 독일의 여건과 외적으로는 비슷한 것 같은데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독일은 내부적으로 불만이 없었던 상태다. 우리는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다. 우리는 통일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그것을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방향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다음 대통령은 준비된 사람이길 바란다. 국민들도 그 점을 잘 알 거라 믿는다.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국민밖에 믿을 곳이 없다. 한국의 발전은 다 국민들의 의식변화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민주화 과정도 말은 일부 운동권 세력이 했다고 하지만 국민의 의식이 민주화를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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