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1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공화당 전당대회가 뉴욕 맨해튼에서 열렸다. 미국의 심장부로서 9.11테러사건의 현장인 뉴욕시 맨해튼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다. 미국의 대테러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이미 폐허가 되었고 세계 도처의 이슬람세력은 미국을 공격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였다.
9.11의 현장인 맨해튼에 대통령, 부통령을 비롯한 미국 최고의 권력이 모였다. 전쟁과 테러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한 아이디어는 부시 대통령의 책사인 “칼 로브”였다. 오로지 안보문제에 집중해 표를 끌어 모으는 소위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다. 두달후의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은 완벽하게 재집권에 성공했다.
문제는 단지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성공 위주의 정략적인 전략이었다. 그후 4년이 지나면서 미국은 잘못된 전쟁으로 인하여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다. 민심은 한없이 휘청거리고 있다. 그로부터 꼭 4년후인 지난 9월1일부터 미네소타의 쌍둥이 도시인 ‘세인트폴’에서 공화당 전당대회가 개최되었다. 부시 대통령의 영원한 장자방, ‘칼 로브’는 “ 나라의 꼴이 어떻든 이기면 애국이다 ”를 다시 부르짖기 시작했다.
전당대회 첫날, 2만명을 수용하는 엑셀 에너지 센터는 한산하기만 했다. 대의원들도 모으지 못한채 공화당 전당대회가 시작됐다. 카트리나에 뒤이은 허리케인 구스타브의 본토 상륙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재집권을 목표로 한 전국정당의 행사 치고는 너무나 초라했다. 당 안팎에서만이 아니고 모든 미디어로부터 걱정과 의문의 시선이 쏟아졌다. 모든 원인을 존 맥케인 후보의 무모한 러닝메이트 지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미디어의 관심은 갑자기 세계적인 신데렐라로 떠오른 43세, 미모의 ‘새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다음날도 그리고 마지막날 맥케인의 후보수락연설시까지 ‘새라 페일린’은 미디어를 자신의 품안에 가두고 말았다. 그리고 존 맥케인의 후보수락연설을 절정으로 만들었다.
미네소타의 쌍둥이 도시인 ‘세인트폴’에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맥케인 후보가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연설을 하는 모습 ⓒ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존 맥케인 후보와 러닝 메이트인 새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 맥케인 홈페이지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는 맥케인 후보 ⓒ 맥케인 홈페이지 다운증후군이란 것을 알고도 출산시킨 갓난아기의 어머니, 그래서 미국에서 낙태반대의 의지가 가장 강한 여성이란 것, 17세의 임신중인 딸의 어머니란 것, 이혼한 여동생의 남편을 해고 시키라고 주 경찰국장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 신비주의 종교인이란 것, 남편이 알래스카 독립주의 당원이었다는 것 등등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심지어는 17세 딸을 임신시킨 그야말로 “사고 치고 횡재한” 데릴사위 까지도 전당대회로 끌어 올렸다. 세계의 미디어가 열광을 하면서 전당대회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존 맥케인’을 바로 그 한가운데에 세웠다.
공화당은 노예해방을 시킨 링컨 대통령이 공화당 소속이고, 휘청거리는 미국을 곧게 한 루스벨트가 공화당이고, 21세기를 또 다시 미국의 세상으로 만든 레이건도 공화당이란 것을 강조했다. 지금 엉망이 된 미국을 진정으로 변화 시키는 역할은 당연히 공화당의 것이라는 소명의식을 각인시켰다. 이같은 전략은 도무지 지지율의 변동이 없는 ‘존 맥케인’의 지루한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날 엑셀 에너지센터에서 2만여명의 대의원과 당원들, 지지자들, 그리고 특별히 초청된 공화당 인사들은 ‘공화당에 숨통이 터진다’라는 느낌을 갖는 극적인 드라마를 함께 즐기게 되었다. 이러한 반짝반짝거리는 전략의 주인이 역시 ‘칼 로브’였다.
폭스뉴스(FoxNews)의 선거해설가로 미네아폴리스에 와 있는 칼 로브를 ‘혹시나 만날까’ 하면서 찾느라고 필자는 매일같이 한나절은 거리를 해매고 다녔다. 대회장 맞은편의 가장 고급호텔인 세인폴 호텔에 맥케인의 출신주인 아리조나주 대의원들이 묵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 사흘째 되던 날, 그 호텔 로비에서 죽치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칼 로브를 발견했다. 맥케인의 선대본부장인 마크 샐터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옷자락을 붙잡았지만 그는 악수하고 웃어주기만 하면서 달아나 버렸다. 갑작스런 ‘새라 페일린’의 등장에서 칼 로브의 냄새를 맡았던 필자에게 확신을 주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맥케인의 최측근하고 있는 것을 봤으니 100% 아니겠는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필자의 이 분야의 후각이 어지간하게 발달된 것 같다. 필자를 동행취재 하는 특파원 한 명이 칼 로브를 직접 만나는 횡재를 했으니까....
일주일전 덴버에서의 민주당 전당대회와 비교해선 그야말로 여름과 겨울의 차이다. 덴버에서는 사람이 너무 몰려와서 통제를 했지만 세인트폴은 사람이 너무 없어서 별별 궁리를 다했다. 덴버에서는 마당잔치를 벌였기 때문에 소문만 듣고 와도 참견할 공간이 많았는데 세인트폴은 마치 소문나면 창피한 내막이 있기나 한 듯 문닫은 집안잔치였다. 덴버에서는 정책 관련 브리핑 행사가 많았는데 세인트폴은 간부는 간부대로, 일반당원은 당원대로 교제와 관광을 하는 모습이었다. 덴버의 민주당엔 소수계가 많아서 아시안인 필자도 편안했는데 세인트폴의 공화당엔 마치 남의 집 잔치음식에 관심을 갖고서 몰래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덴버에서는 시위대와 당원이 한데 엉겨서 어우러졌지만 세인트폴은 시위대에 대해 과도한 공권력을 동원했다. 어느 전국지 언론에서는 “당원보다 시위대가 더 많은 대회” 라고 하기도 했다.
공화당의 전략적인 전당대회가 끝났다. 선거가 꼭 두 달이다. 앞으로 3회에 걸친 대통령후보 TV토론회를 중심으로 양당의 선거유세가 치열해 질 것이다.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느낌으로, 정서적으로 어렴풋이 선택하지 않고 정책에 관심을 두고 선택했으면 하는 희망을 다시 갖는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이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