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29일.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의 마지막 날을 맞아 보스턴에 모인 3만5천여명의 대의원과 당직자, 그리고 언론인들 앞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존 케리’는 후보수락 연설에 나섰다. 전당대회장인 플리트센터 내부 연설무대의 오른편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프리티저스 스윗룸에 50여명의 VIP들이 모였다.
200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 전 부통령, 최근 섹스스캔들로 주지사 자리에서 낙마한 엘리엇 스피처 당시 뉴욕주 검찰총장, 흑인계의 정치거두인 제시 잭슨,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도 보였다. 그리고 민주당원들로 부터의 인기가 가장 높은 정치인 중 한 명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케리의 연설무대에 오르지 않고 그 안에 있었다. 입장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서 필자도 그냥 그 안으로 들어갔고 와인을 한잔 들고서 힐러리 클린턴 옆자리로 갔다. 뉴욕서 왔다고 인사를 건네는 필자에게 약간 미소만 보일뿐 그냥 묵묵히 무표정으로 있었다.
나중에야 알아차렸지만 그 순간 그녀는 만 4년후 전당대회장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을 향한 그녀의 꿈은 그야말로 집요하고 강렬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던 힐러리가 최근 경선 패배 이후 오바마에 협력하지 않고 대통령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미묘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다 상대 정당인 공화당의 TV광고에 등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보면서 당시 전당대회에서 그녀의 무표정 속에 드리워진 야심과 욕망을 다시 떠올렸다.
1968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은 도무지 당선 가능성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상대당인 민주당의 분열을 최대한 활용했다. 후보로서 자신의 정견을 내놓기보다는 상대당인 민주당의 싸움을 부추기는 데 전념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상대방을 분열시켜 정복한다” 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대선전략으로 마침내 선거에서 승리해서 백악관에 입성했다. 대통령선거전에서 이러한 전략은 그후 네거티브 캠페인의 원조로 알려져 왔다.
2004년 대선기간 내내 현역인 ‘조지 부시’와 맞붙었던 민주당의 ‘존 케리’는 시종 지루한 모습으로 도전자가 갖추었어야 할 싱싱한 활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선거의 달인이고 전략의 귀재인 클린턴 대통령은 일찌감치 조지 부시의 재선을 예상하고 있었다. 앞으로 4년을 준비해서 공화당의 3선을 막아내는 일이 그에겐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으로 자신했다. 8년을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민주당의 주도권을 케네디계로부터 거의 완전하게 인수를 해놓은 상황이었다. 부자 대통령 다음은 부부 대통령이라고 속으로 장담을 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만들기를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다. 클린턴은 자신이 나토 사령관으로 임명했던 웨슬리 클라크 장군을 후보로 내세워서 조직을 관리토록 했다. 그 후 2006년 중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뉴욕주에서 무난히 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했다. 여유있게 선거자금을 모았고 인기 정치인의 자리를 충분히 즐겼다. 월가의 금융인들, 할리우드의 대중 스타들, DC의 로비스트들, 소수계 커뮤니티의 지도자들이 모두 힐러리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2008년 대통령 자리를 향해서 막힘없이 준비를 진행시켜 왔다.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패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했지만 그녀는 패자의 현실을 거부할 방도가 없었다. 무섭게 돌풍을 일으키며 질주하는 ‘버락 오바마’에게 후보의 자리를 내 주고서도 도저히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대의원 수에선 졌지만 유권자수로는 그녀가 이겼다. 더구나 본선거전의 승패를 결정하는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등에서는 모두 이겼기 때문에 포기하기가 그렇게 어렵고 미련이 큰 것이다. 그래서 힐러리 측근들은 4년을 더 기다리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11월 본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힐러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오바마 캠프에 협력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힐러리측은 오바마에게 부통령지명권을 주거나 아니면 예비경선 중에 산더미 같이 불어난 빚 청산을 요구했다. 쉽게 해결될 일들이 아니었다.
오바마 캠프가 아주 다급해졌다. 신상품을 선 보여야 할 때인데 새로운 것이 없다. 전당대회의 프로그램도 아직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이 주춤거려 이틀 전 여론조사에선 오히려 맥케인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주간 타임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는 전체 지지도에서는 매케인을 앞서지만 개별 정책 지지도에서는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는 지지율 46%로 매케인(41%)을 앞섰다. 반면 이라크전 수행 능력에선 매케인이 52% 대 36%로,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56% 대 29%로 오바마를 압도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 캠프에서는 힐러리측을 떠안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눈치 챈 클린턴 대통령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힐러리는 최근 인터넷에 유포된 동영상에서 “경선 참여 유권자의 목소리가 후보지명 전당대회에서 그대로 표출돼야 한다. 그래야 오바마 의원에 대한 지지와 단결이 확고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고, 클린턴 전 대통령은 ABC방송 인터뷰에서 ‘오바마 의원이 대통령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에 “누구도 대통령 준비가 돼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양측의 갈등은 오히려 깊어만 가는 듯하다.
공화당의 존 맥케인 후보는 민주당의 이러한 갈등의 골을 파고들었다. 존 맥케인 측은 민주당 예선에서 힐러리가 오바마를 공격했던 광고를 그대로 복제해 내보내고 있다. 예비경선에서 힐러리는 오바마의 경험부족을 공격하려고 ‘ 공화당의 존 맥케인이 오히려 오바마를 앞선다 ’고 까지 했었다.
맥케인이 그것을 써먹기 시작했다. 이 광고에서 힐러리는 매케인을 당리당략이라는 선을 넘나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 ‘존경스런 정치인’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맥케인 측은 이와 함께 힐러리가 앞서 경선 유세에서 “매케인 상원의원은 백악관에 가져갈 평생의 경험을 갖고 있지만 오바마는 2002년에 연설한 게 고작”이라고 오바마의 경륜 부족을 신랄하게 비난했던 부분을 넣었다. 미국 대선 광고전에서 상대 후보의 당내 경선 경쟁자들의 비난 발언을 이용한 것은 드문 일로, 맥케인의 광고에 상대당 경선자인 힐러리가 등장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1968년 닉슨이 써 먹었던 ‘ 분할해서 정복한다 ’ 란 바로 그 네거티브 전략이 40년만에 맥케인에 의해 재현된 셈이다. 오바마가 민주당내 분란을 진정시키고 맥케인 측의 이이제이 전략을 극복할지, 맥케인이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공화당이 잘 써먹었던 네거티브 전략을 성공시켜 백악관행을 따낼지 미 대선 캠페인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존 맥케인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예선에서 힐러리가 오바마를 공격했던 광고를 그대로 복제해 내보내 네거티브 광고의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세하는 맥케인 후보의 모습 ⓒ 맥케인 홈페이지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오른쪽)가 힐러리의 지지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상대당인 공화당의 맥케인 후보가 힐러리가 등장하는 네거티브 광고를 선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3월 당내 경선 당시 CNN 프로그램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두 후보. ⓒ CNN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이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