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펼쳐진 5일간 '독도 반전 드라마'
[김동석의 뉴욕통신] 독도 '한탕'하겠다는 마음으로는 백전백패
유권자센터는 월요일인 28일 오전 ‘애니 팔레오마바네가’ 아태환경소위원장에게 국무부 산하 지명위원회가 갑자기 한국령 독도를 주인 없는 섬인 ‘주권 미지정지역’으로 변경한 것을 올바로 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그렇게 하기 위해서 팔레오마바네가 위원장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에게 그러한 시민의 요청을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 팔레오마바네가 위원장이 우리의 요청을 들어 주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것도 혼자의 명의가 아니고 외교위내 아태소위원들의 서명을 받아서 전달한 것이다.
필자는 외교위원회 의원들과는 모두가 구면이었다. 위안부결의안 통과를 위해서 할머니들을 앞세워서 만 일년 내내 그들의 사무실을 업무마비 수준으로 성가시게 했기 때문에 그들이 필자를 기억해주고 있었다. 레이번 빌딩에 들어서는 의원들이 오히려 먼저 알아보기도 했다. 마침 그날(30일)이 결의안 통과 꼭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일 오전에 유권자센터 뉴욕으로부터 인턴학생 30여명을 대형버스에 태워서 외교위 내 위원장 다음 서열인 게리 애커맨 의원을 방문했었다. 애커맨 의원의 뉴욕시 지역구엔 8천여명의 한인유권자를 유권자센터가 확보하고 있고 매번 선거때마다 한인들이 몰표를 행사한다는 것을 애커맨 의원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인턴 학생들은 게리 애커맨 의원에게 유태인들이 경험한 참혹한 홀로코스트와 한국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당한 치욕이 같은 내용이라고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챙겨 줄 것을 졸랐다. 어떤 학생은 지역구의 한인유권자들이 심리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정치인이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따지는 듯이 호소하기도 했다.
한국계 언론들이 애커맨 의원의 대답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가운데 애커맨 의원은 독도 문제가 자기 지역구의 문제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입법보좌관을 불러서 꼭 챙기도록 지시하고 아주 진지하게 학생들에게 약속을 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애커맨 의원이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독도 이슈에 주목했다고 아태소위원장실에 알렸다.
30일 오전 백악관 NSC로부터 원상복귀 전화통보를 받은 이태식 대사는 곧바로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고 그리고 언론에 공개가 되어서 ‘독도’ 관련 아무도 가능성을 점치지 않았던 원상복귀가 정말 극적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이 사실이 특종뉴스로 세상에 알려질 때에 유권자센타 인턴학생들은 뉴저지 한인밀집지역의 의원인 공화당의 스캇 가렛 의원을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독도’ 관련해서 지명위의 원상복귀를 요청한 외교위 소속 의원들이 리셉션 행사장에 도착했다. 모두가 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 통과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했던 의원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역구에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주동포를 의식해서 이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 나서주기도 하는 것이다.
LA의 한인밀집지역이 지역구인 다이안 왓슨(민주당소속 4선의원 : 이 다이안 왓슨 의원은 지난해 일본군위안부결의안 추진당시 일본의 전쟁범죄에 관해서 가장 목소리를 높이면서 상정 초반부터 강력하게 지지를 해 주었던 의원이다.)을 필두로 LA북부지역 한인밀집지역의 다나 로라바허(공화당 소속 10선의원 : 이 로라바허 의원은 위안부결의안에 관해서 초반에는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가 자신의 지역구내 한인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의결할 때엔 반대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로라바허 의원은 피해자 청문회때 반대 의견을 개진했고, 이에 이용수 할머니가 일어나서 분노를 표시하자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추기도 했었다. 외교위내 공화당 거물이다.), 그리고 이어서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장인 아메리카 사모아 출신의 “애니 팔레오마바비가”(민주당 10선 의원, 위안부결의안 당시 청문회를 개최를 주도했던 아태환경소위원장)의원이 들어섰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역시 LA의 한인밀집지역이 지역구인 에드 로이스(공화당 소속 8선의원 코리아코커스 공동의장이며 일본군 위안부결의안 당시 공화당의원으론 뉴저지의 크리스 스미스 의원과 함께 초반기에 동의를 해준 의원이다)의원이 들어섰고 거의 동시에 인디애나의 댄 버튼(인디애나 출신의 13선 거물이다. 아태환경소위의 간사직을 맡고 있으며 유권자센타는 이 의원이 외교위내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을 감안해서 정말로 공을 들여서 관계를 밀착시켜 왔었다. 그는 한인이 일본측의 로비를 제친 것을 알아차리고서는 일부러 뉴욕으로 유권자센터를 방문까지 했던 의원이다)의원이 왔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55주년을 기념해서 모이는 리셉션이었지만 참석자 모두가 “독도” 관련 이슈에 생각이 가 있었다. 마침 한미의원협회 연례회의에 참가차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 국회의원방문단(단장 박진, 그리고 김부겸 의원등 5명) 의원들이 참가했다. 특별한 것은 마침 7월30일은 일본군위안부결의안 하원통과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필자는 행사장에 들어서는 의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면서 오늘이 그러한 특별한 날임을 일깨웠다. 일본관련 “독도”의 이슈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의원들이 한국과 한인들에게 주목하고 있음을 생각하니 어떤 일이든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참석한 외교위 하원의원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준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 ‘독도’와 관련해서 어떠한 일이 발생해서 급하게 찾아와도 된다는 허락의 상징으로 이들과의 핫 라인 전화번호를 받았다. 거의 기적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지명위의 변경을 원상복귀 시키는 일에 미주동포가 한몫 했다는 자부심에 정말로 흥분에 가깝게 가슴이 떨렸다. 그냥 앞만 보고 “해야 되는 일이면 해야 한다”란 신념으로 고생하는 뉴욕 사무실의 김동찬 사무국장에게 가장 먼저 이 사실을 알렸다.
사실, 이 지명위(BGN)의 결정을 번복시켜서 원상복귀 하는 것은 상식선에서는 포기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이야기 했다. 그래서 곧바로 모두가 다 이태식 대사의 책임과 경질을 언급하면서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결론은 정부의 외교력, 미주동포의 정치력, 그리고 상황에 맞게 아주 고도의 전략을 구사한 이태식 대사의 개인적인 뚝심이 아주 환상적으로 작용하여 3일 만에 기적같이 원상복귀 시켰다. 이태식대사의 “대사직을 그만 둔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민족 성원의 일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는 의지가 아니었으면 가능치 않았던 일이다. 이태식 대사가 그 상황에서 절박하게 기도로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두 가지가 이번 일을 성사시키는 데 주효했다고 한다. 한 가지는 지난 월요일(28일) 아침에 이태식 대사가 국가안보위원회(NSC) 고위층과의 면담에서 아주 자극적인 예로 강력하게 이 사안의 중대성을 알렸다는 것이다. 이 대사는 이 고위층에게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내 아내를 다른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의 첩이라고 우긴다면 용납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왜 이렇게 민감한 한.일 간의 문제를 미국이 떠 맡으려 하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태식 대사의 이 ‘사례’가 NSC부보좌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결심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29일 백악관에서 열린 FTA비준을 위한 정부 민간 합동대책회의에 참석한 이태식 대사가 잠시 회의장에 들른 부시 대통령에게 의전을 무시하고 그대로 따라 잡았다고 한다. 대통령은 먼저 알고서 ”라이스 장관에게 지시했으니 국무부와 잘 협의하라“ 고 했다고 한다. NSC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30일 오후 1시에 부시 대통령은 아시아 언론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원상복귀의 결정을 알렸다. 대통령의 지시가 라이스 장관에게 전달된 바로 그때 애니 팔레오마바네가 아태소위원장의 서한이 전달되었다. 지난 주말 사건이 터지고 나서 대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책과 경질의 압력이 높아갈 때에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상황에서 인사 책임을 묻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표명이 결국엔 일을 성사 시킨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독도와 관련해서는 미국에서는 ‘방어의 개념’ 이다. 한국이 실제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압력만 없으면 지금으로서는 바뀔 가능성은 없다. 정치적인 방어는 곧 의회를 선점해야 한다. 그것은 ‘미주 동포의 몫’이라고 결론을 냈다.
지난 7월14일 의회 도서관에서의 명칭변경 이슈가 터졌을 때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권자센타는 하원외교위를 움직였었다. 그 과정에서 명확하게 알아차린 것은 미국 행정부내 각 부서에서 미국밖(다른나라)의 일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국무부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국무부는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의 영향력하에 있다. 정책뿐이 아니고 인사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국무부는 늘 외교위의 눈치를 보고 있는 형편이다. 백악관에선 외교안보부보좌관, 의회에서는 외교위원회 아태환경소위원장, 국무부에선 동아태차관보, 그렇게 3명이 핵심이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외교력이 늘 닿을 수 있지만 의회는 그 차원이 다르다. 하원외교위에선 언제든지 당사자를 의회로 불러서 공개적으로 실상을 따질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의회는 동포의 몫이다. 유권자에게 가장 민감한 곳이 정치권이다. 지난 만 2년 동안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추진하면서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다. ‘독도’와 관련해서 이것이 시작인 셈이다. 언제 어디에서 터져 나올지 모를 일이다. 한시도 긴장을 풀지 말고 민간차원의 방어벽을 튼튼히 해 나가면서 실제지배(실효지배권)의 영역을 넓히고 지배권한을 스스로 강화시켜 나가야 할 일이다. 최근 워싱턴에서의 연타성 사건도 어느 특정한 세력(일본측)의 공격이라고 보이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 다만 일본이 오랫동안 치밀하게 자국영토 같이 일을 벌여 왔기 때문에 의회 도서관에서의 문제는 업무상 편리를 위해서, 그리고 국무부 지명위원회에서는 미국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란 이유로 일이 터진 것이다. 흥분과 감정을 앞세우는 일은 금물이다.
그동안 유권자센터는 현안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 ‘로키(Lower Key)’의 입장을 강조했었다. 워싱턴에서, 특히 의회안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책임자 입장에선 한번 손을 대면 꼭 이겨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산같이 거대하게 밀려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간차원에서의 활동이라 해도 철저하게 적을 알고 나서야 할 것이며 한탕하겠다는 마음으로는 백전백패일 것이다. 독도를 지키는 일은 인기몰이의 이벤트성 행사가 절대로 아니다. 적어도 미국서에서만은 확실히 그렇다. 지명위원회의 결정을 원상복귀 시키는 일에 미주동포도 한몫 했다는 자랑스러움 보다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어떻게 터질 것인가의 걱정이 앞선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이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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