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초, 전 세계의 여론이 이라크 전쟁에 관심을 집중했다. ‘전쟁이 정당한 것이었는가?’에 관한 논란이 미국의 안방인 워싱턴DC를 비롯한 전국 여기저기서 퍼져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 테러집단을 소멸시키겠다'란 명분으로 기세 등등 하게 이라크를 침공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국 공중파 방송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 덜미를 잡히면서 부시와 공화당의 ‘테러와의 전쟁’ 명분은 위기에 빠져들었다. 부시 대통령은 60여분 동안 진행된 토크쇼에서 우물쭈물 동문서답하는 식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피해 가다가 "잘못된 정보로 인한 전쟁"이란 확신을 국민들에게 안겨주게 되었다. 그 후 이라크 전쟁에 관한 진실이 결국엔 밝혀졌고 그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서 부시 공화당 권력의 지지도가 사상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2004년에 접어들어 미국의 이라크 무기사찰단 책임자인 데이빗 케이(David Kay)는 그동안 조사활동의 결과를 " 애시당초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전쟁에 관한 국내.외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워싱턴 DC에 있는 미 국방부 펜타곤의 주전론자들인 네오콘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밖으로 새나왔다. 바로 이때를 놓칠 리 없는 NBC의 간판 앵커 '팀 러서트'가 백악관을 접촉해 출연섭외를 했다.
워싱턴 정치인들에게 소위 '편안한 도살장'이라고 불리우는 NBC의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 에 대통령이 직접 출연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에게는 달갑지 않은 요청이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전쟁에 대한 의혹이 증폭된 상황이고 민주당으로 부터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상 질문을 내비치면서 대통령을 편안하게 그리고 국정에 큰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러서트의 요청이 부시를 설득시켰고, 결국 부시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
2004년 2월12일 생방송된 이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팀 러서트는 이라크 전쟁의 결정 과정과 경제정책의 문제점, 그리고 만일에 생화학 무기나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쟁을 어떻게 정당화 시키겠는가? 라고 물었다. 부시 대통령의 답변은 알맹이가 없었다. 그저 “후세인은 미친 사람이고 위험한 인물이다, 후세인으로부터 해방된 이라크는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역사의 부름”이라는 식의 논점을 회피한 수사학적인 답변만을 반복했다.
이튿날 미국의 주요일간지에서는 대통령으로서 창피한 수준의 답변을 했다는 공통적인 논평을 쏟아냈다.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의 답변에서 드러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자기합리화에 능하다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부시 대통령은 전설적인 킹 메이커 '칼 로브'의 덕분으로 재선에 성공은 했지만, 결국 미국 역사상 가장 실패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국가 안보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하여 '전쟁을 끝내야한다' 라는 선거 슬로건을 내걸고 2004년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그날 '팀 러서트'의 초청에 응한 이후부터 부시는 전쟁을 일으킨 주역들을 줄줄이 백악관과 행정부에서 내보내야 했다. 전쟁에 대한 진실이 속속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NBC 간판 앵커인 '팀 러서트'의 능력이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엔 워싱턴을 울고 웃게 하는 공중파 방송의 정치토크쇼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가장 인기가 높은 NBC의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 ABC의 <이번 주>(This Week), 그리고 CBS의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 뒤로 팍스뉴스(Fox News)나 CNN의 프로가 뒤를 잇고 있지만 시청률로는 공중파 3파전이다. 이것을 시청하지 않으면 워싱턴 DC에선 월요일 아침 테이블에 앉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다. 대통령을 위시한 거물들이 서로 출연하려고 경쟁을 하는가 하면, 피하려고 전전긍긍하는 그야말로 ‘언론의 전장’이다.
NBC의 간판 프로그램인 <언론과의 만남> 진행자인 '팀 러서트'가 지난 12일 방송녹화 도중에 과로로 쓰러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대 최고의 정치전문기자로 불리우는 팀 러서트는 가장 부드러운 질문법으로 가장 날카롭게 정치인들을 궁지로 내모는 NBC 워싱턴 지국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언론과의 만남>은 미국방송사상 최장수 정치대담프로이기도 하다. 그는 뉴욕주지사를 지낸 마리오 쿠오모의 정치참모로 일하다가 NBC에 발탁되어 워싱턴 여론의 향배를 결정하는 영향력을 쥐게 되었다.
그는 84년 NBC 뉴스에 입사한 이듬해 맡은 ‘투데이쇼’에 교황 바오로 2세를 처음으로 생방송 출연시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교황이 미국 TV에 생방송으로 나오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꼽히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계 이민자였다. 그는 버팔로 시청의 청소부가 직업이었던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가 55살이 된 2004년에 펴낸 아버지에 관한 책인 <아버지와 아들: 인생의 교훈들>(Father and Son : Lessons of Life)은 미국내에서 감동과 함께 화제를 모았다. 미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부곡’이라 불리는 책이다.
필자는 숨가쁘게 돌아가는 워싱턴 DC를 이해하려고 일요일 아침엔 TV 앞에서 늘 팀 러서트를 만났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치열하게 미국 정치와 사회의 현장에서 큰 역할을 했던 그를 더 이상 찾아볼 방도가 없게 되었다. 그는 NBC 뉴스 워싱턴 지국의 책임자로서 오는 11월 열리는 미국 대선 경선전이 이어지는 동안 매일 밤늦게까지 근무를 한 피로가 누적돼 심장마비를 일으켰으며, 미국언론들은 그의 치열한 언론인 정신을 칭송하고 있다.
그의 죽음이 당장에 필자의 활동에 이렇게 큰 지장을 주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과로로 쓰러질 때까지 미국국민들의 명석하고 행복한 일요일 아침을 위해 밤잠을 설치면서 준비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늘 손에서 놓치않았던 '팀 러서트(Tim Russert)'의 명복을 빈다.
당대 최고의 정치전문기자로 불리우는 팀 러서트는 가장 부드러운 질문법으로 가장 날카롭게 정치인들을 궁지로 내모는 워싱턴 최고의 언론인이었다. ⓒ 위키피디아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이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