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범죄와 마약, 가난과 실업, 그리고 인종차별 등 어둡고 우울한 이미지들이다. 맨해튼 센츄럴 파크 북쪽, 동서를 길게 가로 지르는 125번가의 음울한 길거리, 학교의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할 흑인 10대 청소년들이 떼로 몰려서 자동차에 달려드는 곳, 그러한 곳으로만 기억되는 맨해튼 할렘.
필자는 20년 이상을 뉴요커로 살고 있지만 아직도 그곳은 쉽게 다가가지 않는 곳이다. 도시의 하층민들이 몰려 사는 맨해튼의 할렘이 19세기에는 백인 중산층 주거지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부동산 경기침체, 1929년에 미국을 강타한 대공항 등으로 중산층이 몰락하여 그곳을 뿔뿔이 빠져 나간 후에는 남부로 부터 흑인들이 몰려왔고 동시에 남미의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서서히 슬럼화 되었다. 극빈자들의 주거지역으로 되면서 거리의 상점이 문을 닫아 125번가 거리는 점점 어두운 지대로 바뀌어 갔다.
그래서 그곳은 뉴욕시 극빈자들의 상징이 되었으며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흑인들의 몸부림이 배여 들게 되었다. 경제적 사회적 박탈감에 젖어 있어도 그 나름의 문화적 다양성과 깊이 그들의 자긍심이 들어있고 그러한 문화가 그 방식대로 퍼져 나갔다. 1920년대 미국 대중문화의 한 주류인 재즈가 여기서 무성하게 숲을 만들어서 세계로 퍼져 나갔고 연극,문학 등..창작 예술이 꽃이 피기도 했다. 소위 할렘의 르네상스라는 시기였다. 1990년대 한국의 청소년들도 열광한 힙합 음악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경기회복 덕분에 고용이 늘고 범죄가 감소했으며 125번가에 재개발 바람이 불어왔다. 드디어는 '흑인 대통령'이라 할 정도로 흑인들의 지지를 받았던 빌 클린턴 대통령이 125번가에 자신의 사무실을 내면서 할렘은 경제적으로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
미국에서 가장 화가 난 흑인은 ‘말콤 엑스’다. 말콤 엑스의 아버지는 백인 테러 단체인 KKK단원에 의해서 살해당했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말콤 엑스는 소년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뉴욕 할렘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건달이고 마약중독자이고 뚜쟁이고 절도범이었다. 무장강도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기도 한 강력 전과자였다. 1963년 8월10일 “흑인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흑인들 끼리 따로 살아야 한다”라고 외치면서 플로리다를 떼어 달라고 분리주의를 외치는 말콤 엑스가 맨해튼 할렘의 125번가 선상의 아폴로 극장에 들어섰다. 흑인들의 실직과 빈곤은 백인들의 책략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백인을 향한 증오와 분노의 연설에 할렘의 흑인들이 열광을 하면서 그를 따르고 있었다.
민주당의 흑인 후보인 바락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 미국의 정치 지도자로서 무섭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선거자금 모금행사에 참석한 바락 오바마(오른쪽)와 부인 미첼 오바마. ⓒ 위키피디아
미국의 흑인은 두 사람,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 목사 두 사람으로 대변된다. 과격한 흑인 분리주의와 온건한 통합주의를 대표한다. 킹 목사는 ‘착한 흑인’이었고 말콤 엑스는 ‘나쁜 검둥이’였다. 이 둘은 서로 대립했지만 생애 마지막에선 서로 인정했고 협력을 모색했다. 킹 목사는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것에서 위험을 깨달았고 말콤 엑스는 ‘투표권이 아니면 총알을 달라’고 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1965년 암살당하기 직전 말콤 엑스는 "백인은 천성적으로 사악하다"라는 생각을 버린다고 선언했다. 당시 뉴욕의 흑인들 중 단지 6%만 말콤 엑스를 지지했지만 지금 뉴욕의 흑인들 중 85%가 그를 영웅으로 떠 받들고 있다. 그 후로 부터 꼬박 40년이 넘게 흘렀지만 백인사회에서 자수성가한 몇몇 흑인들만이 왕(King)처럼 살고 있지만 빈민의 대부분을 이루는 흑인들은 여전히 현실 부정(X)이다.
킹 목사와 말콤 엑스 이후 꼭 40년 만에 대통령에 출마한 흑인후보가 할렘의 아폴로 극장에 나타났다. 20년 전 흑인후보인 ‘제시 잭슨’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민주당의 흑인 후보인 바락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 미국의 정치 지도자로서 무섭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당의 예비경선을 앞둔 후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선지자 이미지가 앞선다. 그는 흑인이란 특별함과 함께 40대 지도자의 완전한 세대교체를 알리고 있다. 민주당의 바락 오바마가 지난 목요일 저녁에 미국 흑인의 상징인 할렘에 도착했다.
40년전 말콤 엑스가 흑인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던 그 아폴로 극장의 마이크를 이어 받았다. 아폴로 극장의 그의 연설에선 킹 목사와 말콤 엑스가 동시에 보였고 그의 외모에선 백인이 넘볼 수 없는 고결한 지성과 통합의 리더쉽이 넘쳤다. 1920년대 할렘의 문화 르네상스에 이어서 1990년대의 경제 르네상스 그리고 마침내 정치적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의 후광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해온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맞서 거대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오바마 후보의 행보에 전 미국이 긴장하고 있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4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미국 정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