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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유권자 잡는 주자가 美대선 승리

[김동석의 뉴욕통신] 백악관 가려면 유권자 욕구 두루 충족시켜야

1932년부터 1968년까지 32년 중 무려 28년 동안 백악관을 차지했던 민주당은 그 이후 선거 때마다 연패를 거듭했다. 1968년부터 1992년까지 24년 동안에 민주당 대통령은 단 한 사람뿐인 지미 카터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후유증 덕택에 당선되었던 카터 대통령은 현직임에도 패배했고, 그리고 그 후 월터 먼데일(1984)도 마이클 듀카키스(1988)도 공화당 후보에 연달아 참패했다. 민주당의 단 한번 지미 카터의 승리도 닉슨 사임에 따른 승계로 선거 없이 대통령에 취임한 제럴드 포드를 억지로 이기고 당선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경쟁력이 없는 정당의 후보로서 백악관을 점령하려고 마음먹은 빌 클린턴은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민주당의 노선을 중도로 바꿀 것을 결심했다. 클린턴은 중도노선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무소속 유권자를 민주당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승리했다. 1992년과 1996년에 연패한 공화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거머 쥔 ‘조지 부시’는 무소속 유권자를 끌어 들이지 않으면 승리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전당대회 직후부터는 당의 메시지를 바꾸고 노선을 중간으로 옮겨가 균형을 잡았다. ‘조지 부시’는 예비선거 과정에서 당내 기반을 튼튼하게 다졌기 때문에 새로운 영역이 승리의 요인이 되었다.

감세와 낙태. 국방비 증액, 레이건 칭송으로 당내의 기반을 탄탄히 했고 진보진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보수적인 프로그램을 활용한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면서 무소속 유권자를 적극 끌어 들였다. 당의 노선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면서도 당의 전열을 흐트러지게 하지 않았던 것은 그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준 전임자 클린턴으로부터 바로 그 테크닉을 배웠던 것이다. “ 승리를 위한 클린턴 방식 ”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0년 당내 보수 기반을 탄탄히하고 진보진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보수적인 프로그램을 활용한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면서 무소속 유권자를 적극 끌어 들여 대통령에 당선됐었다. 부시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있다. ⓒ 미 백악관


정치권이 당파적인데 반해 유권자는 그렇지 않다.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민주와 공화 양당으로 나뉘어진다. 5백35명의 의원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양당의 어느 한쪽에 소속되어 있다. 필자가 지난 한 해 동안 연방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추진하면서 절실하게 경험한 일이다. 지역구로 가면 안 되는 일이 없는데 워싱턴 DC사무실선 철저하게 당파적으로 나뉜다.

워싱턴은 이렇게 철저하게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양분되어 있지만 전국의 유권자들은 어느 한쪽 지지 세력으로 분류되는 일에 점차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체 유권자의 35%는 민주당, 30%는 공화당 지지자이다. 그리고 40%에 이르는 대다수 유권자는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무소속임을 자처한다. 지나온 대선전에서 무소속 유권자들은 공화당에서는 존 매케인을, 민주당에서는 빌 브래들리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반면 양당의 충실한 지지자들은 정강정책에 따라서 후보를 선택했기 때문에 부시와 고어가 후보가 되었다. 그들은 “당선보다 노선”이란 고전을 금과 옥으로 여긴다.

그래서 2008년 선거에서도 백악관 입성에 성공하려면 양당의 후보 공히 자당 내에서 후보로 지명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지지기반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일반선거에서 승리할 정도로 무소속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져야 한다. 양당제에서 세 갈래(민주당, 공화당, 무소속)로 나뉜 유권자들의 욕구를 두루 충족시킬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한다.

공화당 대선주자들이 최근 사상 처음으로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 주최 대선 합동 토론회에 참석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CNN을 통해서 전국에 생중계된 토론회는 지난 7월 민주당 토론회에 쏠렸던 유권자들의 관심도를 능가했다. 전국적인 지지도에서 선두를 유지하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예비경선이 처음으로 치뤄지는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에서 1위를 달리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간의 격렬한 논쟁이 압권이었다.

불법이민, 세금, 낙태, 총기규제 등의 주요 현안을 갖고 당내의 지지기반을 선점하는 경쟁이 치열했다. 아이오와 뉴햄프셔에서의 기선 제압을 목표로 하는 미트 롬니가 당내 보수층을 의식해서 낙태 옹호의 입장을 바꾸었다. 불법이민자의 운전면허 허용을 지지했다가 말을 바꾼 힐러리가 당 밖의 무소속 보수층을 겨냥 했다면, 미트 롬니는 우선 당내의 기반을 확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에도 무소속 유권자들이 대선 승패를 결정할 지 두고볼 일이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4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미국 정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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