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난 2005년 1월 취임사에 강력하게 언급된 '민주주의의 확산'이란 내용은 부시 대통령이 직접 <민주주의론 (The Case for Democracy)>이란 책을 읽고서 감동을 받고 인용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부시 대통령의 '도덕교사'라고 불리울 만큼 대통령에게 큰 영향을 주는 '나탄 샤란스키(Natan Sharansky)' 라는 유태인이다. 2004년 연방의회에서 북한 인권법안을 제정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탄 샤란스키'는 구소련시절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의 영어통역관을 지냈고 당시 사하로프 박사와 함께 소련권력을 비판했다가 미국 스파이로 간주되어 브레즈네프 권력에서 10여 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미.소간 스파이교환 프로그램으로 감옥에서 풀려나서 1986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오랫동안 해외유태인 자유운동을 주도하면서 이스라엘에서 '해외유태인부장관'을 지냈다. 그는 샤론 총리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과 협상하여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하게 된 것에 반발하여 장관직을 던져버렸다.
부시 정부에게 "민주주의 확산론"의 근거를 제공했으며 라이스 장관이 언급한 '폭정의 전초기지'란 외교용어도 바로 나탄 샤란스키가 쓴 <민주주의론>에서 인용한 말이다. 나탄 샤란스키가 2004년 부시 대통령을 만나고서 대통령이 그의 책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그의 책은 수도 없이 팔려 나갔고, 물론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필자가 바로 이 '나탄 샤란스키'를 만났다.
조지 W. 부시(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작년 12월26일 백악관에서 자신의 '도덕교사' 역할을 해온 나탄 샤란스키에게 '2006 자유의 대통령 메달'을 수여하며 악수하고 있다. ⓒ 미 백악관 국제사회에 이란의 핵개발이 핵심 현안으로 떠올랐다. 미국과 이란 간 초긴장 상황임에도 중국은 원유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2천억 달러 이상을 이란 석유개발에 투자했으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란을 옹호하고 나섰다. 미국의회는 이란의 특수부대인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란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핵개발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비상이 걸린 곳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홀로코스트는 없던 일을 지어낸 것"이라고 연일 유태인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이란 대통령의 손안에 핵무기가 쥐어진다는 것을 이스라엘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장 민감한 반응은 미국내 유태인들에게 나타났다.
지난 10월 27일부터 3일 동안 필라델피아에서 유태인공공정책위원회(AIPAC)의 지도부가 긴급하게 모였다. 겉으로는 유연하게 'AIPAC 정상회의(AIPAC Summit Conference)'라고 했다. 미국 유태인들의 가장 강력한 정치력 단체인 유태인공공정책위원회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워싱턴내 가장 유력한 싱크탱크의 중동전문가들, 의회내 외교안보 분야의 유력한 정치인들과 그의 보좌관들, 그리고 주류미디어의 정치분석가들, 행정부내 외교안보라인의 고위관료들, 그리고 10여명 이상의 연방 상원의원들이 참가했다. 이스라엘에선 국방부장관이 이스라엘총리의 외교안보 보좌관들을 대거 인솔해서 참석했다.
2천여 명 이상의 유태인 지도자들이 모인 전체모임에서의 초청연사로는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저서 <흑야(The Night)>로 유명한 엘리 위젤 보스톤 대학 교수와 부시 대통령의 '도덕교사'로 통하는 나탄 샤란스키가 연설을 했다. 공화.민주 양당의 대선주자들의 선거캠페인 본부가 다 모여 들었다. 역시 유태인들이고 AIPAC이다. 매년 1만달러 이상을 기부하는 회원들로 구성된 지도부 회의이다.
필자는 10번 이상 AIPAC 사무국에 참가요청을 했고 철저하게 비공개 원칙을 지킨다는 약속을 하면서 참가를 허락 받았다. 회의기간 중에 필자는 '나탄 샤란스키'를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도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전 세계 유태인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에이팩(AIPAC)의 기동성에 탄복을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북한과 관련한 필자의 질문에 그는 북한의 시리아 관련설에 거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 즉답은 피했지만 그의 어투로는 분명히 이란에 대한 공격에 동조하는 듯 했다.
미국에서 한국인과 유태인은 닮은꼴이다. 근면 성실이 같고 우수한 두뇌와 가족단위의 목표가 뚜렷이 설정되었다는 것이 유사하다. 참혹한 민족수난의 경험을 했고 여전히 분쟁국가 출신이라는 것이 또한 같다. 기부문화와 참여하는 열의, 그리고 생김새만 빼고는 정말 닮은 꼴이다. 그래서 유권자센타가 AIPAC을 배우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규모에 주눅이 들었고, AIPAC과의 올해 만남에서는 오히려 이번엔 두려움마저 들었다. 국제사회와 슈퍼파워인 미국에서 발전과 도약을 모색하는 한국으로서는 꼭 배워야할 중요한 많은 순간들을 거듭 체험하고 절감한 3일간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4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미국 정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