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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지-보수신문, 신세계 '왕따 만들기'

<한경>등 '다이 브로크' '회사 청산' '해외 이주' 등 협박도 서슴치 않아

신세계가 '법대로' 1조원의 상속-증여세를 내고 떳떳하게 상속을 받겠다고 발표하자, 경제신문들과 메이저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현행 상속-증여세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기업들이 경영을 포기, 경제가 초토화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벌 출자로 만든 회사거나, 소유구조가 재벌과 마찬가지인 족벌언론이라는 데 있다.

<한경>, '협박성 경고'하며 반발

가장 먼저 포문을 연 매체는 전경련 회원사들이 출자해 만든 <한국경제신문>이었다.

한경은 15일 <기업들 '상속세 5대 딜레마'>라는 제목의 1면 톱 및 3면 해설기사를 통해 현행 상속-증여세법을 맹성토했다.

신문은 "10년 전과 비교해 상속-증여세 최고 세율은 45%에서 50%로 조금 높아졌지만 스트레스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며 이른바 익명의 '민간 조세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기업들이 전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5가지 저항'을 열거했다.

1. 세금 내고 회사 문을 닫는 '회사 청산'
2. '성장전략 포기'
3. 세금으로 낼 바에야 다 써 버리자는 '다이 브로크(Die Broke)'
4. 재산을 현금화해 '세금이 없는 나라로의 이주'
5. 명의신탁 등 '편법'


현행법대로 상속-증여세를 매기면 판을 깰 수도 있다는 식의, 사실상의 '협박성 경고'였다.

<매경>, 신세계 '왕따' 만들기

<매일경제>도 뒤질세라 사설과 기사 등을 통해 반발하고 나섰다.

매경은 15일 <상속세 적정수준 공론화해야>라는 사설을 통해 "신세계의 입장표명이 나오자 정작 곤혹스러워하는 주체는 뜻밖에도 재계인 모양"이라며 "신세계는 오너 지분율이 30%에 육박해 50%세금을 싹뚝 떼어주고도 경영권 안정이 가능하기에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 몰라도 대부분 기업 소유주들은 그런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설은 "그러잖아도 정몽구 회장 구속 후 상속세 내고 나면 경영승계가 불가능하다며 불만이 노골화하는 기류가 감지됐다"며 "본지 조사결과 상당수 기업인들은 '노조에 당하고 은행에 구박받고 눈물로 키운 기업을 자식에게 넘겨주지 말라고 하면 누가 기업하겠느냐'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설은 "이쯤되면 상속세 문제에 대해 수면 밑에서 쑤군댈 게 아니라 한 번쯤 '한국의 상속(증여)세 제도는 적정한가'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현행 50%가 적절한 수준인지, 포괄제도로 가는 게 맞는 것인지 사회 전체적으로 밀도 있는 토론을 거쳐 기업하려는 의욕을 꺾지 않는 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현행 상속-증여세 완화를 주장했다.

매경은 이어 16일에는 별도 박스기사를 통해 재계의 목소리를 빌어 신세계를 맹성토하기도 했다.

경영권 승계를 앞둔 기업들에서는 "신세계가 혼자서 치고 나가는 바람에 우리만 힘들게 됐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롯데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갈수록 강조되는 추세에서 신세계 의지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이번 발표 자체는 참여연대나 세무조사 등 요즘 신세계 상황을 감안하면 뭔가 보여주려는 '쇼맨십'도 한몫 했을 것"이라며 "발표 내용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더 걸릴 것으로 본다"고 여운을 남겼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신세계처럼 돈이 없는 다른 기업들에는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전경련 등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상속세가 기업경쟁력 저해 요소로 논의가 이뤄지려고 하는데 혼자 현행법대로 상속세를 내겠다고 하면 지금 진행되는 개선 논의는 어떻게 되느냐. 황당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정당한 세금을 내는 것은 옳은 일"이라면서도 "신세계는 그만한 세금을 내고도 경영권 승계에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당황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의 신세계 '왕따' 만들기였다.

신세계의 '상속세 1조원 선언'에 대해 경제지와 보수신문들이 강력반발하고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해 신세계 본점 오픈을 하고 있는 신세계 회사관계자들. ⓒ연합뉴스


<중앙>, "한국대기업은 가족경영 성공사례"

조중동은 16일 사설을 통해 일제히 상속-증여세제 개편을 주장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상속세제 개편 논의 시작돼야>라는 사설을 통해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이 경영권 이전과 관련해 세금을 제대로 다 내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은 일단 반길 일"이라면서도 "문제는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재벌그룹의 경우 현행 세제에서는 정상적 방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사설은 "최근 몇몇 대기업의 편법적 경영권 상속이 논란의 도마에 오른 배경에는 바로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자리 잡고 있다"며 "신세계는 그러고도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지만 그럴 수 있는 재벌기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식의 징벌적인 상속세제에서는 기업들이 이윤을 빼돌리거나 편법적 우회 상속에 나설 유혹이 커지게 마련"이라며, 마치 최근 비자금 조성, 탈세 상속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재벌들이 '징벌적 상속세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편법을 행한 것처럼 주장했다.

사설은 "그렇다면 2세 상속을 포기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른다"며 "우리나라 대기업은 가족경영의 장점을 살린 성공사례로 꼽힌다"고 재벌예찬론을 폈다. 사설은 이어 "또 기업을 2세에 물려줄 길이 차단된다면 장기적으로 기업을 키워나갈 유인이 감소하고, 결국은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동아>, '탈세 불가피론' 전개

<동아일보>도 <상속-증여 세제, 기업현실에 맞게 개편해야>라는 사설을 통해 "대부분의 기업은 신세계와 달리 상속세를 내고 나면 경영권 승계가 어렵다"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한 편법 및 불법의 유혹을 더 받게 되는 것도 현실"이라고 '탈세 불가피론'을 폈다.

사설은 현행 상속·증여세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이 때문에 편법 승계에 따른 조세 회피 비용만 커진다. 또 편법 승계가 싫거나 두려운 일부 기업인은 일부러 기업 성장을 억제하거나 돈을 마구 쓰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며 앞의 <한경>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사설은 "무거운 상속세는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에 큰 짐이 된다고 보아 상속세율을 낮추거나 아예 없애는 나라가 늘고 있다. 미국은 상속을 할 때 부모가 연방정부에 납부하는 유산세를 영구 폐지하기로 했다. 캐나다 이탈리아 스웨덴 홍콩 싱가포르 등은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며 "한 차례 세금을 많이 거두는 것보다 기업을 계속 성장시켜 일자리와 사회적 부를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선>, 균형 잡으려 애쓰면서도 세법 개정 공론화

<조선일보>는 앞의 신문들과 비교해선 나름대로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다.

조선은 <신세계, “깜짝 놀랄 만큼의 상속세 내겠다”>는 사설을 통해 "재산을 상속·증여하면서 세법대로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며 "그럼에도 신세계의 상속 선언이 화제가 되는 것은 그 동안 국내 대기업집단들이 상속과정에서 절세라는 명분으로 탈법적·편법적 수단을 동원해 내야 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구체적 사례를 예시했다.

사설은 "국내 상속세 납부기록 1~3위엔 대한전선(1355억원), 교보생명(1338억원), 태광산업(1060억원) 같은 중견그룹들이 올라있다. 그런가 하면 상속시기는 각각 차이가 있지만 자산규모가 이들의 수십배에 이르는 삼성이 254억원(1987년), SK가 730억원(1998년), 현대가 300억원(2001년)에 지나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반기업 정서의 배경에는 부의 대물림 과정을 투명하게 하지 않았던 대기업집단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그러나 "법에 의한 상속세 납부의 당연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상속세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상속에 대비한다는 강박관념에서 각종 기업비리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원인을 따져볼 때가 됐다"며 "우리 상속 관련 세제가 실제로 기업과 경제에 얼마나 부담을 주고 있는지를 우리의 의식구조와 경제여건 그리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재검토해볼 필요는 없는지에 관해 공개적 논의를 펴볼 때도 된 느낌"이라고 조심스레 상속-증여세법 개정논의 필요성을 밝혔다.

보수언론과 재계의 '견강부회'

이같은 경제지와 보수언론들 주장의 요지는 한마디로 "선진국에선 요즘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대폭 깍아주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만 강화하고 있어 탈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이들 신문과 재계가 '상속세 폐지의 모범국가'로 꼽고 있는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상속세'라는 이름의 세금이 없을 뿐, 상속재산을 양도차익으로 계산해 부모가 주식을 취득했을 때 가격과 상속시 가격의 차이에 대해 최고 51.7%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부시 정권이 상속세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등 굴지의 재계인사들이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들어 상속세 폐지를 강력 반대하고 있다.

또한 이들 신문과 재계의 주된 공격대상이 되고 있는 상속세 포괄주의 역시 미국, 일본, 독일 등 대다수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신세계에 이어 삼성그룹도 이재용 전무에게 상속시 '법대로' 1조원대 이상의 세금을 내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재계의 주류기업들이 '정상화의 길'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길만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반기업 정서를 없애는 첩경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때 신세계의 결단을 격려하고 재계의 동참을 독려해야 할 메이저 언론들이 도리어 딴지를 걸고 나서고 있다. 과연 '광고' 때문인가. 아니면 이들 언론의 소유구조 역시 '족벌'이기 때문인가.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강한 언론의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닌가 싶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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