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비행장 건설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집단거주하면서 만들어진 ‘우토로 마을’ 주민들이 고국인 한국을 찾아 “생명의 터전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우토로 주민회는 23일 국회 정론관을 찾아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이광철.김형주.강혜숙 열린우리당 의원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퇴거까지 며칠 남지 않았지만 우토로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정부와 민간에 요청했다.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51번지 마을은 1940년대 일본정부의 지시를 받아 일본국제항공공업이 재일조선인 1천3백여명을 동원해 군비행장을 건설하면서 형성됐으며, 45년 일제 패망으로 항공공업 사장이 A급 전범으로 체포되고 땅 소유권이 여러차례 바뀌었다.
이후 재일교포 64세대 2백여명은 상·하수도 시설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60여년째 살아왔으나, 최근 일본 부동산업체가 “땅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다”며 토지처분 기한을 이달 31일로 앞당기면서 이들의 삶의 터전이 강제철거를 앞둔 위기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날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청원서 낭독에 이어 반기문 유엔 사뮤총장에게 전달하는 요청문 발표, 다가와 아키코(田川明子) 일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대표의 호소문 공개 순서로 진행됐다.
우토로 주민회 김교일 회장은 “우토로에는 우리들의 아버지·어머니의 피눈물이 스며있다”며 “만약에 우토로 마을이 영영 없어진다고하더라도 절대로 잊지말고 좋은 시대가 온 다음에는 역사 교과서의 한페이지에 우토로를 적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순악.김교일.김군자.김소도.김진목자.엄명부.하수부.한금봉.황순례씨 등 우토로 주민대표단은 "이제 이 땅이 제3자에게 팔리면 강제철거가 닥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라며 "우토로 동포들이 모두 쓰러지더라도 지난 3년간 조국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 기로에 선 저희들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일본사람들이 사는 동네처럼 잘 갖추어진 마을은 아니지만, 폐품을 주으며 하루하루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김치를 먹고 장구를 치면서 살 수 있는 우토로가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며 “우물물을 먹고 살다가 전염병이 돌아도, 불이 나 불을 끌 소화전이 없어도 우리는 서로 가족처럼 돕고 의지하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10년 동안 피고의 몸으로 법원에 다녀야만 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정말 너무 억울했다. 내가 지은 집을 내 손으로 부수고 우리의 피와 땀이 서린 이 땅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정말 납득되지 않았다”며 “99년 대법원에서 우리의 항고가 기각된 날부터 지금까지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 우토로 문제가 해결되는 날을 손 꼽아 기다리던 1세분들도 억울함 속에서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3년전 우토로마을의 사정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모금운동이 전개됐고 2억5천만엔(약 18억원)이 마련됐지만 땅값인 7억엔(52억원)에는 미치지 못했다. 2005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반기문 당시 외교부장관은 “민간모금 부족분에 대해서 정부차원의 지원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다른 동포와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지원이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우토로 마을은 사실상 최후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다아와 아키코 대표는 “우토로는 재일조선인의 상징이어서 없어져셔는 안된다”며 정부차원의 지원을 촉구했고,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당시 마을을 지키는 문제에 대한 지원을 고려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우토로가 강제철거되지 않도록 유엔의 조속한 조치를 촉구하고 이른 시일내의 면담을 요청했다.
우토로주민회는 이날 주민 숫자만큼의 꽃송이와 청원서를 들고, 청와대·외교부·국회를 방문해 강제철거를 막아달라고 간청하는 등 고국 각계를 찾아 성원을 호소했다.
우토로 주민들이 23일 국회 정론관을 찾아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이광철.김형주.강혜숙 열린우리당 의원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퇴거까지 며칠 남지 않았지만 우토로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정부와 민간에 요청하고 있다. ⓒ 김홍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