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對노무현 반란'의 딜레마
[이연홍의 정치보기] <6> 노무현과 정동영의 '명분 전쟁'
애당초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통령의 권유를 수용할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당의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선거 전에 말이다. 당내 분위기가 그랬다. 그걸 기다리는 세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정동영이 그럴지 몰랐을까. 물론 알았다고 봐야 한다. 알았으니 그렇게 한 거다.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 둘의 관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 마음대로 해석하라는 얘기다.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동영은 예측을 못했을까. 거부했을 때 어떻게 비쳐질지를 말이다. 대통령과 선을 그었다고 할 텐데도 말이다. 정동영도 알았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거부한 거다.
그건 또 무엇을 의미할까. 싸우겠다는 의사표시다. 다만 상대를 딱히 대통령으로 정한 건 아니다. 불특정 다수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다는 얘기다. 앉아서 죽느니 싸우다 죽겠단 것일 수 있다. 그만큼 그에겐 지금이 위기다. 그래야 산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정동영은 김근태와 달랐다. 대권문제에 임하는 몸가짐 말이다.
그는 기다렸다. 권력을 넘겨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서 잘 보이려 노력했다. 자존심 구기면서 그랬다. 대통령의 그림자도 안 밟았다. 그러면 줄 줄 알았다. 하기야 그 때문에 가장 차기 대권에 근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한계에 봉착했다. 그만 대중성을 잃어버린 거다. 인기 없는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 해서다. 동반 추락을 가져왔다. 그러니 이젠 그의 경쟁력이 문제된 거다. 나가봐야 이길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대두됐다. 그래서 호남 지지를 고건한테 뺏긴 거다.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이 오기 시작한 거다.
그러나 김근태는 달랐다. 처음부터 기대를 안했다. 오히려 뺐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은 듯했다.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도전적이었다. "계급장 떼고 말하자"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다. 그러다 보니 밉보였다. 결국 대권 서열에서 처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마음을 비울 수도 있었다. 그러니 선택 폭도 넓어졌다.
문제는 뒤늦게 그걸 알게 된 정동영이다. 그래서 자기도 달라지려 했던 것 같다. 당의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스타일을 바꾸려 했다. 대중성 회복을 위해서였다. 뭔가 도전적 분위기를 그려가는 듯 했다. 선거가 그걸 합리화시킬 줄 알았다. 그러던 참에 이번 일이 터졌다. 그래서 승부수를 던진 거 아닌가 여겨진다. 그로선 여러 생각을 했음직하다.
어차피 대통령은 탈당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혼자만 나간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물론 우르르 나가지도 않을 것이다. 일단은 혼자 갈 거다. 상당 기간 그걸 유지할 거다. 그러나 일정 시점이 되면 친노 의원들도 나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국상황이 결행여부를 결정할 거다. 시점도 물론이다.
정동영은 그걸 막아야 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정말이지 끝이다. 낙동강 오리알이다. 그걸 막는 길은 하나였다. 오직 '명분'이다. 명분에 살고 죽어야 했다. 명분 싸움을 시작한 거다. 명분을 지키는 한 그런 상황은 쉽게 오지 못한다.
사학법 개정 거부는 그에게 좋은 명분이었다. 그가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선 말이다. 대연정을 다시 꿈꾸는 대통령을 향해선 말이다. 그를 따라갈 지 모를 친노 의원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명분을 지켰기에 김근태도 동조한 거다. 강금실까지도 말이다.
대신 당내 주도권은 김근태한테 상당 부분 내주었다. 노무현 없는 열린우리당의 다른 축은 김근태다. 정동영은 김근태를 뺏겨선 안된다. 누구한테도 말이다.그것도 명분밖엔 없다. 또하나의 명분 싸움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명분을 지켜갈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계속된 선택이 그 앞에 달려오고 있다. 거의 생과 사를 가르는 선택일 것이다. 명분 싸움을 하는 한 그는 강경해질 수 밖에 없다. 보다 개혁적 입장을 견지할거다. 사학법처럼 말이다. 그게 그의 딜레마다.
문제는 그것이 그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는 거다. 김근태라면 오히려 쉬울 거다.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동영은 다르다. 그래서 문제란 얘기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과는 멀어질 것이다. 갈등은 깊어질 거다. 해소의 기미는 현재로선 없다. 그러나 그게 이익일지 손해일지는 정동영 하기에 달려있다. 그것이 대권 게임의 묘미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