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폭발 직전인데 무슨 소비 기대?
[기고]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의 '미신'
<맨큐의 경제학>을 읽다보면 경기변동이나 경제성장을 논하는 부분에서 이 내용을 자주 접한다. 그 중 하나만 예를 든다면 단기경기변동을 설명하는 이런 내용이다.
“이자율이 낮아지면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거나 기계장비를 구입하려는 기업의 자금수요가 늘어난다. 이처럼 물가가 하락하면 이자율이 하락하여 투자재에 대한 지출이 늘고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량이 증가한다.”
이 논리가 주류경제학자들의 “금리인하는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근거논리다. <맨큐의 경제학>에 이 논리가 여러 번 언급되는 것을 보면, 주류경제학이 ‘금리의 경제효과’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 논리임을 알 수 있다.
이 문장 역시 “통화량이 증가하면 수요가 증가한다”는 문장처럼 언뜻 듣기에는 맞는 말처럼 들린다. 금리란 투자의 비용이므로 그 비용이 낮아지면 기업이 투자를 늘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이 명제가 “거짓”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기업이 보유한 현금이 사상최대치를 경신한다는 기사가 일주일이 멀다 하고 눈길을 끌지 않는가. 그런데 기업의 투자는 때론 증가하기도 때론 감소하기도 한다. 현금이 차고 넘치는데도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지 않는 이유를 주류경제학 교과서는 “금리가 너무 높아서”라고 말하고 있다. 금리가 사상최저수준에 수년간 머물러 있는데 “금리가 높아서”라는 참으로 황당한 주장을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하고 있다.
기업투자를 결정하는 핵심요소는 “수요”다
투자비용인 금리가 낮아지는데도 왜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지 않을까? 그것은 투자를 결정하는 데 금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수십조원 또는 수백조원의 현금을 보유한 대기업 경영자에게 한번 물어보자.
“왜 투자를 하지 않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딱 하나다.
“물건을 생산해도 팔리지 않는데 무엇 하러 투자를 늘린단 말이오.”
수백명의 기업인을 만나 똑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금리가 높아서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대답은 듣기 힘들 것이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금리를 낮추면 기업투자가 증가한다는 명제는 “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금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중요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그 요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요인을 아무리 개선한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그것은 “수요”다. 수요가 증가하지 않으면 금리를 아무리 낮추어도 기업투자는 증가하지 않는다. 수요의 증가에 비하면 금리 인하는 매우 작은 요인이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현실에서 그 사실을 체득하여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아는 데 정교한 경제이론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식만 있다면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경제를 탐구하고, ‘기업투자 부진’이라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문가라 자처하는 경제학자들은 그 상식이 없는 것 같다.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의 “미신”
‘금리인하가 기업투자를 증가시킨다’는 논리가 현실에서 작동되던 시기가 분명 있기는 했다.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바로 팔리던 시기에는 판매는 걱정하지 않았다. 생산을 제약하는 요소는 오직 생산비용뿐이었다. 그러므로 생산비용인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은 즉각 투자를 늘렸다.
그러나 그것은 까마득한 예날 이야기다. 이미 그 논리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미신’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도 주류경제학자들은 아직도 그 미신을 신봉한다. <맨큐의 경제학>은 아직도 버젓이 이런 논리를 펴고 있다.
“장기적으로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량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공급량(GDP)은 그 경제가 지니고 있는 노동과 자본의 양, 그리고 생산기술에 의해 좌우된다.”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가 팔릴지 안 팔릴지에 대한 고려는 아예 하지 않는다. 마치 생산만 하면 판매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인들이 생산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판매다.
주류경제학자들이 구시대의 미신을 믿던 말던 누가 상관하랴만, 그 미신을 근거로 금리인상을 극구 반대하는 것은 참으로 아둔하고도 후안무치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들의 거짓 주장 때문에 집값이 폭등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국민의 절반이 넘는다.
현실을 슬쩍만 돌아보아도 “거짓”임이 금방 드러나는 사실을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이 왜 주구장창 외쳐대고 있을까? 내놓고 말하지 못할 무슨 사정이 있음이 분명하다.
“기업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신자유주의 논리
그 사정이란 ‘경기침체의 근본원인이 수요부족이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에 대한 해결책에 대한 논의가 뒤따를 것인데, 수요를 늘리는 근본적인 방법은 가계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특히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는 곧바로 증가한다.
문재인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이 바로 가계소득을 늘려서 성장을 이끌겠다는 정책이다. 그리고 그 정책의 핵심은 임금의 인상이다. 이 지점에서 주류경제학의 격한 반발이 일어난다. 임금이란 기업에게는 비용인 것이니, 임금인상은 곧바로 기업이윤의 하락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계가 결사적으로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기업이윤의 감소다. 그래서 경기침체의 원인을 수요부족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고, 논리가 궁색해지자 이미 죽은 지 오래 된 ‘미신’을 무슨 경제이론이라고 주구장창 외쳐대는 것이다.
초저금리정책의 계승이 낳은 대불행, “집값 폭등”
미국 레이건 이후의 신자유주의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을 꼽으라면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 생산양식의 특성 상 자본과 노동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경제체제다. 그 갈등에서 철저하게 자본의 편에 서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속성이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식이나 논리는 쉽사리 무시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행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앞의 주장이다.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주류경제학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KDI등 국책연구기관과 금통위는 까마득한 옛날에나 들어맞던 ‘미신’을 꺼내들고 금리인상을 극구 반대하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이 구축해 놓은 아성은 대단히 강고하고 방대해서 제도권 경제학자들 대다수를 포괄할 정도다. 불행히도 문재인정부 출범 시 통화와 금융정책을 결정하는 핵심에도 주류경제학 논리에 포획된 인사들이 대거 기용되었다.
통화정책을 책임진 한은총재의 연임도 그런 맥락에서 가능했을 것이고, 초대 경제부총리는 금융완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했었다. 금융위원장은 경제전문가 대다수가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이라고 경고한 가계부채를 억제하려는 어떤 발언이나 정책실행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임명된 윤석헌 금감원장만이 거의 유일하게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라며 은행 최고경영진을 다그쳤다.
이러한 잘못된 인사 기용이 이전 정부의 초저금리정책의 계승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집값 폭등이라는 대불행을 낳은 것이다.
<송기균경제연구소 (blog.daum.net/kig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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