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패권이 확보된 20세기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미국 예외주의’가 그 바탕에 깔려있다. 북미지역의 초기 정착민사회 지도자 중의 한명인 존 윈스롭(John Winthrop)이 1630년 동료 청교도들에게 “미국은 성서에 나오는 ‘언덕 위의 도시’(The City on the Hill)”라면서 자신들이 떠나온 부패한 구세계인 유럽과는 다른 특별한 성스러운 사회로서 미국을 정의했다. 이 말이 지금까지 ‘미국은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주장이 되었다.
미국인들이 각종 행사에서 암송(국기에 대한)하는 충성 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에 “신 아래 하나의 나라”라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를 암송할 때마다 미국시민들은 미국이 최선이고 특별한 소명이 있는 나라처럼 인식하게 된다. 미국의 국민들은 미국의 건국을 종교성에 부합시키는 것에 주저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떠한 위기가 있을 때마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특별한 소명’ 의 종교성인 신앙을 앞세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그리고 기독교 복음주의자들도 미국과 신의 가까운 관계를 흔히 ‘천년왕국설’ 이라는 것으로 전파하고 있다. 신의 목적을 지상에 이루기 위해서 미국이 쓰여져야 한다는 것이 현재 미국 기독교 우파인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자들의 기본 신앙이다. 소련 공산권이 무너지고 난후 오히려 이런 해석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정치.사회 운동 세력이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요즘이 처음은 아니다. 청교도들의 신앙을 기반으로 미국의 가치가 정해져 왔기 때문에 미국의 기독교는 사회 가치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다, 남북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가치의 흐름이 기독교 원리에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 세력은 각종 사회.정치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기독교 세력 가운데에 1970년대 이후 떠오른 기독교 우파세력이 바로 기독교 복음주의(Evangelicalism) 세력이다.
미국 남부 기독교복음주의 세력이 집결한 바이블벨트(붉은색 부분) ⓒ 위키피디아
2008년 대선을 겨냥해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 결집에 나설 공화당의 전략가 칼 로브(왼쪽)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2003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부시의 브레인> ⓒ 위키피디아
복음주의 특징은 어느 교파도 중심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주의의 기반은 교회에 있기보다는 교회와 사회의 틈새에 널려있는 각종 사회기관들의 조직에 두고 있다. 기업체, 민간단체, 비영리기관, 음악이나 서적 등 출판업계, 라디오, TV의 미디어 등과 함께 연구소나 학습센터, 중등학교와 대학 같은 곳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두드러진 라디오, TV 등 미디어를 통한 복음 전도는 복음주의를 미국시민의 일상으로 정착시켰으며 시민들의 사회인식의 흐름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도 기독교 신자가 많고 그리고 교회가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인 수준에서 이를 기독교 우파라는 말은 별로 쓰지 않는다. 기독교 발전의 본산인 유럽에서도 정치는 교회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 교회가 모든 것을 지배했던 암흑의 중세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중세의 봉건주의나 군주제를 경험하지 않은 미국인들은 교회의 정치세력화에 별로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미국의 기독교는 신념을 갖는 특별한 정치세력이다. 개신교 복음주의자가 중심이고 이를 이끌고 있다.
워싱턴을 향한 ‘텍사스 군단’인 2000년 부시 캠프의 핵심 전략은 기독교의 진군이었다. 당시 부시 후보의 정치고문이었던 칼 로브는 투표율이 높고 몰표성 표 쏠림 현상이 심한 ‘기독교 우파’를 앞에 내세우는 전략을 구사했다.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80% 가량이 투표에 임했고 그들 가운데에 78%가 공화당에 투표를 했다. 이러한 전략과 결과는 2004년 선거에서도 성과를 냈다. 두 번의 선거를 통해서 공화당은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을 확고한 지지기반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상품이 되는 공화당 정책은 누가 뭐라고 해도 대테러 전쟁을 은근히 기독교와 이슬람간 종교적 전쟁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부시 집권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인 후랭크 그레이엄 목사는 부시 행정부에서 가장 자유스럽게 백악관을 출입하는 인물이 되었다. 부시 행정부가 정치적으로 전쟁에 실패했지만 전쟁은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을 자기편으로 확고하게 붙들어 두는 데는 큰 성과를 냈다.
2008년 대선을 겨냥해서 미국의 보수주의가 구심점 없이 방황하고 있다. 공화당의 대선후보 가운데에 올바른 보수 지도자가 없다는 것을 꼬집어 얼마 전 시사 주간지 <타임>에선 울고 있는 레이건의 얼굴을 표지에 내기도 했다.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세력인 기독교 우파를 다시 결집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 전쟁이라는 대선 현안이 갔어도 기독교 우파를 집결시킬 어젠다는 얼마든지 있다.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신앙적으로 옹호하는 사회가치가 위협받을 듯 싶으면 과감하게 나서서 용감하게 싸우는 전통이 있다. 기독교 보수세력은 1960년대 이후 인종차별, 성적평등, 전쟁반대 등 리버럴한 사회 가치 어젠다에 동참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일관된 대응을 하지 못한 기독교 보수주의 지도력에 깊은 실망감을 가졌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최근 기독교 보수주의 세력은 정치적 세력 확보를 위한 전술적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낙태권리에 대해선 ‘생명옹호’로, 성적자유에 대한 반론은 ‘절제와 질서’로, 여성운동에 대해선 ‘가족옹호’로, 동성애자 운동과 사회적 약자보호법(Affirmative Action)에 대해선 ‘특권배격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현재 민주당내 대선후보들은 자당의 정강정책을 적절하게 포장하여 도시와 농촌, 남성과 여성, 주류와 소수계를 넘나들며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비해서 집권 공화당은 정책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특출한 선두주자 없이 ‘거기서 거기’라는 평가다. 아무래도 ‘칼 로브’가 다시 나서야 할 때가 온듯하다. 때문에 각종 스캔들에도 요리조리 피해서 살아남은 칼 로브를 향한 민주당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인기가 추락한 공화당의 유일한 탈출구는 칼 로브가 또다시 전가의 보도처럼 내밀 남부 기독교복음주의 세력인 '바이블 벨트' 앞세우기 전략이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4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근자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