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이용마 기자 "42년전 선배들처럼 일어서야"
"시민들, '기레기'라 비난하되 저항할 수 있게 힘달라"
5년여 전 해직된 이용마 전 기자는 이날 저녁 2천여명의 기자, 시민들의 ‘2016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에 투병때문에 참여할 수를 없음을 밝히며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동의어나 다름이 없다. 한 사회의 특정 세력만이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독재다. 과거 우리는 그런 시절을 산 적이 있다. 바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이뤄졌던 1970년대 얘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현직 언론인들에게 "저 역시 이 시대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작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속이 썩어 내린다. 하물며 현직 언론인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냐"면서 "이제는 현직 언론인들이 42년 전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다시 일어서 주기를 기대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시민들에게도 "현직 언론인들을 향해 ‘기레기’라고 비난하시기 바란다. 당연하다. 응분의 조치"라면서도 "하지만 그들을 향해 동시에 응원을 해주시기 바란다. 자신들의 위치에서 올곧게 저항해 나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이 전 기자와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 전문.
언론계 선배, 후배, 동료 기자 여러분!
MBC 해직기자 이용마입니다.
오늘(24일) 오후 6시 언론 현업인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모여 ‘2016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을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개인 사정으로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뜻 깊은 선언식이 있다고 해서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동의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한 사회의 특정 세력만이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독재입니다. 과거 우리는 그런 시절을 산 적이 있습니다. 바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이뤄졌던 1970년대 얘깁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의 자유는 확대되어 왔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그 수혜를 입어 언론인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여지없이 파괴되었습니다. 선배들이 피를 토하며 쟁취한 언론의 자유가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급기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42년 만에 다시 하게 되는 참담한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저 역시 이 시대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작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속이 썩어 내립니다. 하물며 현직 언론인들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이제는 현직 언론인들이 42년 전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다시 일어서 주기를 기대합니다.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전 선배들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기에 우리는 20년 넘게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후배들을 위해 현직 언론인들이 새로운 장을 열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여러분. 현재의 언론 상황을 많이 개탄하고 계실 것으로 압니다. 현직 언론인들을 향해 ‘기레기’라고 비난하시기 바랍니다. 당연합니다. 응분의 조치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 동시에 응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신들의 위치에서 올곧게 저항해 나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비난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들이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 10. 24.
이용마 드림
2016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과 거짓 언론 타파에 앞장서겠습니다
지금부터 42년 전인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의 젊은 언론인 200여명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1970년대 초부터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긴급조치 발동 등을 통해 신문과 방송에 재갈을 물리면서, 권력의 비위를 거스르는 기사와 논평을 쓰는 기자·논설위원들을 ‘남산’이라고 불리던 중앙정보부로 연행해서 고문을 가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투옥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언론사주까지도 정보수사기관의 협박과 보복을 당하곤 했습니다.
언론인들이 가장 분노하던 것은 ‘기관원’이라는 이름의 중앙정보부 간부나 직원이 언론사의 편집국이나 보도국에 ‘상주’한 채 제작책임자들에게 “이 기사는 빼고 저 논설은 이렇게 고치라”는 식으로 ‘지시’를 하면서 실질적으로 편집인 노릇을 하던 현실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동아일보사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로 시작되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세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외부 간섭 배제’, ‘기관원 출입 거부’ ‘언론인 불법 연행 거부’가 바로 그것입니다.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월간 신동아와 여성동아가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 조작을 통한 민주화운동 탄압 등 ‘금기’로 되어 있던 사실들을 과감하게 보도하자 대통령 박정희는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대기업들이 동아일보사의 매체들에 광고를 싣지 못하게 했고, 결국 1975년 3월 17일 그 회사 경영진과 야합해서 폭력배들을 동원해,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함께하던 기자, 피디,아나운서 등 113명을 거리로 몰아냈습니다.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오늘 ‘국정 최고책임자’ 박근혜가 언론을 어떻게 지배하고 억압하는지를 살펴보면, 탄압의 ‘주범’이 아버지에서 딸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2년 대통령선거 시기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이렇게 공약한 바 있습니다. “공공성을 지닌 미디어나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 행사로 독립성, 중립성 침해 논란이 발생”하고 있으니, “공영방송의 보도·제작 관련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배구조를 바꾸도록 하겠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된 이래 3년 8개월이 되도록 그 공약을 지키기는커녕 정반대 길로 치달려 왔습니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KBS와 MBC에 공공연하게 ‘청와대 낙하산사장’을 보내 인사·편성·제작권을 독점하는 ‘언론 폭군’으로 군림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혁하려면 이사회를 구성할 때 ‘특별다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요구는 묵살 당했습니다.
그 결과 양대 공영방송과 일부 언론은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독선, 악정과 실정을 비판하기보다는 기득권체제를 지키고 연장하는 가장 강력한 ‘우군’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이 국민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안전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민주화 없이 권력의 민주화 없다”라는 명제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뜻있는 언론인들과 함께 논의하고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대적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2016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결의합니다.
1) 박근혜 정권의 공영방송 지배를 청산하기 위해, 시민들과 언론단체들은 국회가 조속한 시일 내에 법적·제도적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 진실 보도, 공정 보도를 더 강력히 지원하면서 불공정 편파보도와 왜곡 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등을 통해 더욱 널리 확산한다.
3) 오늘의 ‘시민선언’을 계기로 현업 언론인들이 더욱 단합해서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을 실천하는 과업에 매진하기를 촉구한다.
2016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 참여자 일동 (2,14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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