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팩(AIPAC,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은 미국내 유태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결성된 시민로비단체이다. 각 지역의 유태인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유태교를 중심으로 하고있다.
에이팩의 모든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유태인 랍비가 나와서 기도를 하고 빵을 나누는 예식을 거행한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각양각색의 유태인들이 각 지역 에이팩 지부에 참가를 하고 기부금을 납부한다. 2차대전 당시 유럽에서의 독일과의 전쟁에 미국이 조금만 더 일찍 개입했더라면 수많은 유태인들의 생명을 살려낼수 있었을 것이란 자각에 미국내 유태인들이 1950년에 결성한 정치로비단체이다.
이 단체는 정부지원도 사양하고 국세청의 세금공제 혜택도 거부한다. 철저하게 납세자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 각 지역에선 지역정치참여를 통해서 커뮤니티 발전에 앞장선다. 각 지역의 지도급들이 워싱턴에 모이면 이스라엘을 위한 활동을 한다. 이스라엘의 안전과 미국의 국익을 일치시키는 논리를 개발해서 로비활동을 벌린다.
냉전시대 미국이 소련의 남진팽창(중동정책)정책에 맞설 당시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책적 결합이 자연스러웠지만, 소련이 해체되어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변화가 왔다. 에이팩에게 냉전의 종식은 큰 재앙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략적 동맹을 정당화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클린턴 8년동안 에이팩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동의 적으로 이슬람 급진파를 지목하기에 이르렀다. 반미를 기치로 내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상대하시에 강한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략적 자산이란 논리이다. 냉전 종식 이후 에이팩의 논리이다.
9.11 이후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이 그들의 정체와 주장의 내용을 사실과 다르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집단이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다. 네오콘은 1970년대 초반 민주당의 급진좌파의 대부인 '조지 맥거번'이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자, 민주당을 뛰쳐나온 유태계 인텔리들이 주도해서 만들어 낸 독특한 정치세력이다. 이들은 민주당의 외교노선에 등을 돌리고 '미국의 패권.만능주의'를 부르짖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책노선을 중심으로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때 막강한 정치세력을 형성했고, 9.11테러를 계기로 세상에 자신만만하게 그 정체를 드러냈다.
네오콘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자 미국의 인텔리들이 더욱 놀란 것은 네오콘과 이스라엘의 결합된 모습이었다.
네오콘내의 '어둠의 왕자'로 불리우는 '리차드 펄'은 미국의 국방정책 자문위원 자격으로 부통령실과 국방부장관실을 좌지우지하는 네오콘 3인방중의 한사람. '더글라스 페이스'는 1930년대 폴란드에서 시온주의 지하활동을 지휘한 댈크 페이스의 아들이며 국방정책과 군 운영정책을 총괄하는 국방부 서열 3위의 인물이다. 이밖에 네오콘 싱크탱크인 기업연구소의 실세인 '마이클 리딘'과, 극동정책 연구소를 거점으로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를 움켜쥐고 있는 '데이빗 움서'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테러리스트로 규정해서 대화를 거부해 온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를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 왔던 인물이다.
이들 리차드 펄, 더글라스 페이스, 마이클 리딘, 그리고 데이빗 움서 등이 네오콘의 핵심인 동시에 이스라엘 추종주의자들이다.
2003년 제임스 모런 민주당 하원의원은 의회에서 " 미국내 유대인 사회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렇게 가고 있지 않을 것" 이라면서 네오콘과 유태인의 결합을 꼬집었다. 극우파 정치인인 패트릭 뷰캐년조차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는 매거진 <아메리칸 컨서버티브>(American Conservative)' 2003년 3월24일자에서 "유태인 네오콘들이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해서 미국의 피를 끌어 모으고 있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미국의 국방.외교정책이 이스라엘의 안전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에이팩의 행사에는 미국을 움직이는 유력 정치인들이 모두 모인다. 이번 2007년 에이팩 정책 컨퍼런스에서 연설하는 '네오콘의 대부' 딕 체니 미 부통령. ⓒ 에이팩
에이팩의 행사에는 보수 정치인 뿐 아니라 진보 정치인들도 모두 총출동한다. 이번 2007년 에이팩 정책 컨퍼런스에서 연설하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 에이팩
필자는 지난 11일부터 나흘 동안 워싱턴 DC에서 열린 '2007년 에이팩 정책 컨퍼런스(AIPAC Policy Conference)' 에 참가했다. 유권자센타의 모델인 에이팩을 자세하게 배우기 위한 일이다. 의회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네오콘들이 급격하게 퇴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이팩의 새로운 로비전략이 정말로 궁금했다.
냉전논리를 등에업고 미국의 안보정책에 무임승차했던 에이팩에게 네오콘의 퇴진은 심각한 난관이었다. 작년의 에이팩의 명백한 입장은 "이라크전쟁의 기세를 몰아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란의 시아파 세력을 전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행사에 참가했던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네오콘의 유태인 전략가들이 거침없이 강력한 전쟁을 주장했었다.
올해는 그러나 워싱턴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딕 체니 부통령은 행사 두 번째날 아침의 주연사로 참가해서 7천여명의 유태인 지도자들과 그리고 이스라엘 총리와 외무부장관 국방부장관이 참가한 자리에서 미국은 '이란' 을 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해서 유태인들을 열광케 했다.
알고 보니 10명씩 앉는 6백여개의 라운드 테이블에 연방의 상.하원들, 국무부,국방부 관계자들, 그리고 각종 싱크탱크내의 유태인 학자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필자는 잡지나 신문에서 사진으로 얼굴을 익힌 무섭게만 생각되던 전략가들을 직접 만나면서 정말로 에이팩의 정치력에 놀라게 되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해서 거물급 상원의원들, 그리고 민주.공화 중앙당의 간부들, 특히 민주당 대선주자로 떠오른 바락 오마바가 참가해서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필자는 옆 테이블에 앉은 '마이클 리딘'을 보고 정말 놀랐다. <배반당한 자유>(Freedom Betrayed)라는 책을 써서 현대판 마키아벨리라고 불리우는 마이클 리딘은 네오콘 핵심 이론가이다. 조지 W.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든 전략가 칼 로브의 외교정책 가정교사이기도 하다. 전쟁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해서 미국만이 가질 수 있는 '운명적인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무서운 사람이다. 미국의 해외 비밀공작을 지휘해 온 마이클 리딘은 이란-콘트라 사건의 진장이 폭로되어 비로소 그의 얼굴이 세상에 알려졌다. 얼굴이 유난히도 크고 얼굴보다 귀가 더 큰 정말로 시원한 인상이다. 먼저 명함을 건네고 인사를 해서 그가 리딘임을 확인했다.
매년 에이팩을 직접 경험하면서 분단국가 출신의 2백만 한인동포들은 지금 어떻게 어디쯤 왔는가...? 모국인 한반도를 위해서 소수 중 소수인 한인동포를 위해서 과연 누가 워싱턴에서 일할 것인가. 좀 막막하다. 에이팩에 집착하며 필자는 위안부결의안 한인동포 서명부를 들고서 의원사무실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김동석 소장이 워싱턴에서 열린 에이팩 컨퍼런스 행사장에서 뉴욕 브롱스 출신의 유태계 10선의원인 엘리옷 엥겔(오른쪽) 하원의원에게 '종군위안부결의안'에 대한 지역민의 서명지를 전달하며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필자 소개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