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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황제' 이원조 사망, 그러나 '관치금융'은 안끝났다

이씨, 12년간 전두환-노태우 돈줄로 금융계 군림

5-6공 시절 `금융계 황제'로 군림했던 이원조 전 국회의원이 2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74세.

이씨는 지난달 27일 연희동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이날 새벽 2시20분께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12년간 금융계 쥐락펴락한 전두환-노태우 돈줄

이씨의 사망은 군부시대를 풍미했던 '관치금융'의 상징이 사라졌다는 의미를 갖는다.

경북고-경북대를 졸업한 전형적 TK(대구경북) 출신인 그는 제일은행에 입행해 은행원의 길을 걷는다. 그는 이 과정에 절친한 친구인 전두환-노태우의 돈줄 역할을 맡아했으며, 5.18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에 적잖은 자금 지원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제일은행 상무로 재직하던 중 1980년 전두환 군부가 집권하자, 국보위 상임위원을 거쳐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 의해 청와대 1급 경제비서관에 발탁된 후 본격적으로 전두환 군부의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금융계 황제'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서관 취임 한달만에 석유개발공사 사장으로 승진했고 1986년 은행감독원장에 취임해 퇴임후를 대비한 전두환의 정치자금 조성에 관여하는 동시에 1987년 대선자금 조성에도 깊게 관여해 그 공로로 노태우 정권이 출범하면서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그는 김영삼 정권이 출범한 1993년에 재차 민자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 됐으나, 김영삼 정권이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에 대한 숙정에 착수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1993년 수천억원대 규모의 노태우 비자금 사건인 동화은행 사건이 터지자 검찰 수사망을 피해 일본으로 출국해 1년 5개월 간 도피 생활을 해야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1997년 4월 노태우 비자금 60억 원을 직접 모아 전달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2년6월의 징역형이 최종확정되자 구속됐다가, 2000년 8.15특사로 사면받은 이후 전두환-노태우와 인접한 연희동 자택에서 잊혀진 존재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이씨가 '금융계 황제'로 군림하던 전두환-노태우정권 12년간 "이원조 추천없이는 시중은행장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그는 금융계에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 따라서 그의 타계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횡행했던 관치금융의 종언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1년반동안의 일본 도피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1995년 법원에 출두하고 있는 이원조 전의원. ⓒ연합뉴스


"관치금융은 아직 안 끝났다"

그러나 과연 이씨의 타계로 관치금융이 끝났는가는 의문이라는 게 금융계 지적이다.

한 전직 시중은행장은 "이씨의 죽음으로 군부시대의 관치금융은 끝났는지 모르나, 지금 우리는 재경부차관이 곧바로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가는 또다른 관치금융 사태를 목격하고 있다"며 "관치금융은 얼굴을 바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0년전 IMF사태로 국가부도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IMF사태의 주요원인이었던 관치금융은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 지금 또다시 금융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며 "아직 한국금융은 갈 길이 멀다"고 개탄했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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