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부터 지난 2004년까지 10번의 대통령선거에서 1976년의 지미 카터, 그리고 1992년, 96년의 빌 클린턴을 제외하고서는 7번을 공화당이 집권했다. 등록유권자로 볼 때엔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늘 이기게 되는 이유는 남부유권자들에 힘입은 바가 크다.
200여년의 미국 정당정치사에서 정당 재편성은 다섯 차례에 걸쳐 큰 변화를 겪었다. 1828년 잭슨의 민주당(Jackson Democrats ) 등장, 그리고 링컨의 공화당(Lincoln Republicans )이 시작된 1860년, 1896년의 맥킨리 공화당(Mckinley Republicans) 승리가 있었다. 또 뉴딜정책으로 인하여 1930년부터 민주당이 우세를 보여왔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 민주당이 인종문제에 있어서 흑인 민권운동을 지지한 뒤 보수적인 남부지역의 기반을 공화당에 넘겨주게 되면서 다시 공화당 우세로 바뀌었다.
인종쟁점 못지않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1960년대 본격적으로 일어난 여성운동, 환경운동,소비자보호운동의 확산이다. 시민사회에 이러한 운동이 부상함으로서 양당은 점점 더 이념적으로 분극화 되었다. 특히 1972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맥거번 후보가 낙태,동성애, 학교예배, 마리화나 문제 등에 있어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면서 가족의 가치나 도덕성, 사회질서 등을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따라서 공화당은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보수적인 구교도, 인종편견을 갖고 있는 보수적인 백인노동자, 기독교리에 철저한 복음주의 개신교도(Evangelical Protestant)들을 자당의 지지 세력으로 편입을 시키게 되었다. 이와 같이 원래는 민주당적의 전통을 갖고 있지만 이념적인 측면에서 공화당후보에게 투표를 하는 중남부의 보수적인 기독교지역을 선거용어로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 부른다.
바이블 벨트의 특징은 표 쏠림 현상이 뚜렷하고 투표율도 다른 지역에 비하여 높다는 데 있다. 대통령 선거전에서 님부의 중요성은 1976년 이후 당선된 대통령과 부통령 가운데 최소한 1명은 남부 출신인 데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힐러리 상원의원이 예비경선과 본선거전에서 정부의 선거자금 지원금을 안받겠다고 선언하면서 향후 대선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힐러리 상원의원 홈페이지
2008년 대선을 향한 양당의 후보 가운데에 단연 가장 선두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니 부부 대통령이니..."하면서 주류 미디어들이 그녀의 행보를 단 하루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녀는 선거자금 모으기에서도 과감한 선언을 했다.
"예비경선에서도, 그리고 본선거전에서도 정부의 선거자금 지원금을 안 받겠다"고 선언 했다. (미국은 대선에서 철저한 선거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연방정부에서 선거자금을 지원하는 대신에 개인이 거둔 돈은 사용이 금지된다. 전당대회에서 공식 후보로 지명되면 연방정부로부터 7천5백만 달러를 지원받을 수 있다. 동시에 전당대회 이전에도 정부 펀드를 받으면 네거티브 운동이 금지된다.) 마음껏 모아서 자신이 마음껏 쓰겠다는 선언이다.
그녀가 선거자금을 마음대로 쓰겠다는 의지에서는 남부지역 바이블 벨트를 겨냥한 홍보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선거자금을 쏟아 부어서 공중파 TV광고로 남부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좌파적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보통 각 후보의 선거자금 70%가 TV 광고로 나간다고 한다. "개인이나 기업이 당에 선거자금을 기부하는 소프트 머니가 정치권에 기업의 영향력을 가증시킨다"는 이유로 미국은 2002년부터 '소프트 머니 금지법'(맥케인 파인골드법안)을 발효시켰다. 그럼에도 힐러리의 돈 선거 전략을 미루어 보면 이제부터 힐러리를 만나는 일은 돈 없인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것 같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4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