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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혼다 의원의 ‘진정한 평화만들기'

[김동석의 뉴욕통신]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의 숨은 주역

2004년 9월이었다. 11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본거지인 뉴욕시 맨하탄에서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전당대회 직후, 민주당이 든든하게 믿고 있는 뉴욕시 도시권에서 공화당의 지지세가 급등하고 있었다. 선거인단 15명인 뉴저지가 2%포인트 차이로 좁혀졌다. 민주당 본부의 비상 대책회의에서의 우선 뉴저지의 아시안표를 공략하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민주당내 아시안계 정치인들을 뉴저지에 대거 급파했다.

9월말 뉴저지 아시안 최대밀집지역에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이 캘리포니아 출신의 2선 연방하원의원인 ‘마이크 혼다’였다. 그는 아시안 그룹들 가운데 한인사회에선 유권자센타를 초청했다. 1m50cm가 조금 넘을 정도의 작은 키에 아주 다부진 인상이었다. 그가 케리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연설 전에 필자가 있는 테이블에 합석했다. 그는 거의 흥분에 가깝게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예로 들면서 전쟁위기로 보이고 있는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의 적국으로 규정되면서 일본엔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더구나 자신은 한 살의 갓난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5년 이상을 네바다사막 수용소에서 전쟁포로 같은 취급을 당했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북한문제로 인해서 미국내 한인들이 위험에 처해있는 것을 한인들이 알아야 하고, 그래서 한인들은 어떻든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그런 입장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필자는 그때부터 마이크 혼다와의 관계에 집착하게 되었다.

1941년 일본계 2세로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태어난 마이크 혼다는 지난해 중간선거를 통과해서 이제 4선의원이 되었다. 초등학교 교장을 10여년하고 산호세 통합교육감과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을 지냈고 2000년 공화당 현역의원을 누르고 연방하원에 진출했다. 아시안 이민자임을 명확하게 강조하면서 민주당내 아시안 코커스를 이끌고 있다. 민주당 원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역사교육 전문가이고 ‘반전평화,반차별정의’의 정치철학이 가장 투철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이크 혼다 의원의 '일본군위안부결의안' 발의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의 지지를 얻고있어 어느 때보다 의회통과가 유력한 상황이다. 집회에서 함께 한 혼다 의원(왼쪽에서 두번째)과 펠로시 하원의장(가운데) ⓒ 펠로시 의원 홈페이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지역구가 샌프란시스코이고, 샌프란시스코 바로 아래지역인 산호세가 마이크 혼다의 지역구이다. 정치이념으로도 '낸시 펠로시의 분신'이라고 할 정도이며 그래서 펠로시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9.11 테러직후 미국의 이슬람계들이 이름자를 바꾸면서 미국내 분위기에 두려움을 갖을 때에 미국 모슬렘들을 위한 정치적 보호막을 가장 먼저 들고 나온 사람이 마이크 혼다였다. 그는 “ 나는 ‘혼다’라는 내 이름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누구든지 그렇게 해야 한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일본은 스스로가 저지른 전쟁범죄를 역사적인 사실대로 인정하고 후대들에게 옳게 교육해서 그만큼 세계평화에 기여 해야한다. 그렇게 하도록 하는것이 일본계 정치인인 나의 임무"라고 말한다.

그는 그래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2차대전 피해 국가들에게 사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입장을 크게 선전하면서 중국의 난징을 방문해서 '난징대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켰고 한국을 방문하여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해 일리노이의 레인 에반스 의원이 발의하여 상정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의 하원 통과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레인 에반스 의원이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한 올해 110회기에서는 그가 직접 이 결의안을 주도하여 지난 수요일 오후 2시에 외교위원회에 ‘H. Res 121결의안’으로 상정을 시켰다. 그는 결의안 상정 발언에서 자신이 이 결의안 채택을 주도하는 핵심 이유로 제2차 대전 당시 어린 나이에 미국에 살면서도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미 정부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갇혔던 경험을 들었다. 마이크 혼다는 이 ‘H.Res 121 결의안’이 화해를 위한 것이지 일본을 공격하거나 일본을 모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낸시 펠로시 의장에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미국의회의 이러한 결의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 110회기의 상정. 통과를 위해서 ‘마이크 혼다’ 측에선 공동발의자로 공화당의원을 찾았는데, 유권자센타가 뉴저지 한인주거지인 맘모스 카운티의 크리스 스미스 의원을 설득해서 지난 화요일 동의를 얻었고 그래서 곧바로 수요일 결의안 번호 121 로 상정을 시켰다. 위원장인 탐 랜토스와 전체회의 의장인 낸시 펠로시를 보면 통과가 낙관적으로 관측이 되겠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만에 하나 워싱턴서 일본과 한국이 싸우는 모습을 연출하면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일본측의 전략은 워싱턴에 한국정치와 일본정치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인들을 유도하기 위해서 일본 국회의원 워싱턴방문단을 발표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덩달아 워싱턴 행차를 하게되면 워싱턴 의회에서 다른 나라 정치인들이 싸우는 꼴이 된다. 이렇게 되면 ‘전체회의 상정’이 정말 어려워지게 된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 의회 통과를 위해서는 워싱턴 의회에서 미국시민(한인유권자)과 일본로비스트와의 대결국면을 만들어야 한다. ‘워싱턴 의회에 시민의 목소리가 다른나라 정부의 로비에 의해서 저지되고 있다 ’ 라는 전략으로 갈 것이다. 워싱턴의원들의 사무실에 쇄도하는 결의안 지지를 요청하는 팩스와 편지가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 지난해 우리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한국이 한국 정치인의 경거망동을 유도하는 일본의 교묘한 전략에만 말려들지 않으면 일제 강점기 아래 고통받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을 것이고, 세계에는 진정한 평화와 화해의 대전기가 오게될 것이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4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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