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양주재 외국공관-기구에 철수 권고
북한 "한반도 상황 매우 긴박해졌다"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는 별도로 권고했고 다른 외국 공관에는 공동 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외무부는 이달 10일 이후 평양 주재 외국 공관과 국제기구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북한에 공관을 둔 체코와 불가리아 등 유럽연합(EU) 국가도 같은 통보를 받았다.
한국 정부는 철수 권고 사실을 확인했지만 전해 들은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사실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영국 외무부는 대사관 직원 철수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고, 이번 통보가 일련의 위협적 발언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평양 주재 대사관도 평양은 아직 평온한 상태라면서 직원 철수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러시아ㆍ중국엔 별도 통보"
러시아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북한 외무성이 평양 주재 러시아 및 중국 대사관에 이 같은 내용을 별도 통보했다"며 "두 나라 공관을 제외한 다른 외국 공관들을 대상으로는 공동 브리핑을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실제로 평양 주재 외교관들을 철수시킬 계획인가'라는 질문에는 "아주 민감한 질문이라 답할 수 없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공보실 명의의 논평을 발표했다. 외무부는 논평에서 "북한 외무성이 한반도 정세 악화와 관련 평양에 있는 다른 외국 공관과 함께 러시아 대사관이 직원들을 북한에서 철수시킬 것을 제안했다"며 "모든 상황을 고려해 이 통보를 심각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논평은 그러면서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을 개시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며 "군사적 히스테리(긴장)를 고조시키는 노선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논평은 이어 "모든 당사국들의 최대한의 인내와 냉정을 기대한다"며 "한반도의 핵 및 다른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관련 결의와 다른 국제 문서들에 기초해 정치-외교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 러시아의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 러'외무 "상황 더 분석한 뒤 철수 여부 결정할 것"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북한 측 권고와 관련 "이는 아직 제안일 뿐이며 러시아는 상황을 더 분석한 뒤 철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 중인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외교관 철수 제안은 평양에 있는 모든 공관에 전달됐다"며 "우리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이웃 국가들에 이 상황과 관련한 질의를 해놓은 상태"라며 "중국, 미국, 일본, 한국 등 6자회담 참가국들과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도 북한이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 등 외국 대사관들에 철수를 권고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북한 외무성이 평양 주재 외교관들에게 철수를 권고했다는 사실을 일부 국가로부터 확인했다"면서 "다만 들은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추가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정부는 주한 외교단에 현재 한반도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불필요하게 동요하지 말 것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뉘앙스 미묘하게 달라"
중국 신화통신도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외국 대사관들에 긴장이 고조될 경우 철수할 가능성을 검토하라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외국 공관에 전한 통지문에서 미국의 위협이 고조됨에 따라 한반도 상황이 매우 긴박해졌다면서 현재 문제는 전쟁이 날지 여부가 아니라 언제 전쟁이 발발하느냐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북한은 또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외국 대사관과 외교관들은 철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국제조약에 따라 외교관들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중국 대사관을 비롯, 평양 주재 외교공관에 철수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북한이 외국 대사관들에 통보한 내용은 직접적인 철수권고라기 보다는 '철수할 계획이 있으면 알려달라. 참고하겠다'는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이 철수의향을 묻는 방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철수를 권고하면서 한반도 긴장의 지평을 확대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영국 외무부 "4월10일 이후 안전보장 못 한다는 통보받아"
영국 외무부도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오늘 아침 북한 당국이 분쟁이 발생하면 4월 10일 이후에는 평양 주재 외국 공관과 국제기구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외무부 대변인은 평양 주재 대사관 직원의 철수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며 대응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북한이 우리 외교관들에게 떠나라고 했다기보다는 떠날 생각이 있는지 물은 것으로 생각한다"며 "북한의 수사(rhetoric)로 본다"고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은 영국 외무부가 북한 당국의 통보를 최근 잇따라 내놓은 일련의 위협적 발언의 연장선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외무부 발표는 그러나 4월 10일이란 시점을 명시한 점에서 러시아 측 발표와 차이가 난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로 북한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이 4월 15일인 점을 감안, 10일과 15일 사이에 북한이 체제 위력 과시를 위해 미사일 발사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해 왔다.
불가리아와 체코 외교부를 비롯해 브라질 외교부도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불가리아 외교부 대변인은 유럽연합(EU) 국가 평양 주재 공관장들이 공동 입장을 정하고 행동하고자 6일 만나기로 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은 공관이 철수한다면 도와줄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고 불가리아 외교부 대변인은 덧붙였다.
유엔개발계획(UNDP)을 포함해 유니세프, 세계식량계획(WEP), 세계보건기구(WHO) 등 인도주의 단체들도 북한으로부터 같은 통보를 받았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평양발로 보도했다.
◇ 평양 주재 러' 대사관 "평양 상황은 평온"
이에 앞서 평양에 지국을 둔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은 현지발로 북한 외무성이 이날 한반도의 긴장 상황과 관련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과 북한 내 다른 러시아 단체의 인원을 철수할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 공보관 데니스 삼소노프는 "러시아 대사관이 평소와 다름 없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서도 "북한 측 제안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도 삼소노프 공보관을 인용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삼소노프는 이 통신에 "대사관이 북한 측의 제안을 접수했지만 아직 직원 철수와 관련한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평양은 현재 아주 평온하고 어떤 긴장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대사관은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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