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칼이 도대체 몇미터 짜리냐"
<뷰스칼럼> MB의 '대기업 때리기'와 권력의 속성
한 금융계 고위인사가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런 권력의 속성이 단지 통치권에서만 목격되는 게 아니라 은행이든 기업이든 마찬가지라 했다. 문제는 '오버'라고 했다.
국면전환에 성공한 MB의 '대기업 때리기'
이명박 대통령의 '대기업 때리기'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모양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대통령은 심각한 레임덕 증세를 나타냈다. 여권내 권력암투, 민간사찰-의원사찰 파문, 성희롱 설화, 리비아 국교단절 위기, 천안함 외교 실패, 4대강사업 반대 격화 등 총체적 위기 징후가 나타났다. 보수원로들과 뉴라이트조차 "명박돌이", "똥파리 보수", "하류 장사꾼" 등의 격한 표현으로 이 대통령을 원색 비난하는 등, 누가 봐도 레임덕이 분명했다.
그러던 것이 이 대통령의 '대기업 때리기'를 신호탄으로 세간의 관심이 '대기업 전횡'으로 옮아갔다. 여기에다가 7.28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둔 한나라당이 친서민을 앞세워 대기업 때리기에 가세하면서 '국면 전환'에 거의 성공한 모양새다.
당연히 타킷이 된 대기업이나 은행들은 말 그대로 '부글부글'이다. 그러나 속으로만 부글댈 뿐이다. 전경련이 한마디 불만을 토로했다가, 이 대통령이 "전경련은 대기업 이익만 옹호말라"고 질타한 뒤 특히 그렇다. 5대그룹이 즉각 하반기에 고용을 대폭 늘리기로 하고 일부 캐피탈사가 캐피탈 최고금리를 낮추기로 하는 등 겉으론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권력이 단순히 말로만 그치지 않고 대검 중수부, 공정거래위, 국세청 등 공안기관들을 총동원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으니 숨을 멈추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대통령이 "대기업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다"고 한마디 안심되는 말을 했으나,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순진한 기업은 없다.
재계 "지금 나 떨고 있니?"
벌써부터 재계에는 "모그룹이 수도권 공장용지를 주택용지로 형질변경하는 과정에 수천억 부당차익을 얻을 데 대해 관련당국이 해당그룹과 관련 정치인을 내사중"이라는 둥, "1조원 사재 헌납을 약속하고 구렁이처럼 넘어가려는 모 총수에 대한 위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둥, 각종 살벌한 루머들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단순 루머에 그치지 않고 청와대에는 대기업 횡포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 사장 등의 많은 투서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재계에선 "누가 1번 제물이 되는 거냐"며 관련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처럼 재계는 폭염이 쏟아지는 한여름에 난 데 없는 혹한 한파를 경험하고 있다.
재계에는 한가지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굴지의 모그룹 선대회장의 생존시 일이다. 대통령선거도 끝나 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그룹에 상당히 부담이 되는 부탁을 해왔다. 그룹 임원들은 어이없어 하며 그 부탁을 일축하려 했다. 그때 선대회장은 “내일 물러나더라도 대통령에게는 오늘 우리를 죽일 힘이 있다”며 부탁을 들어줄 것을 지시했다. 그때보다 재계의 힘이 몇배나 커지긴 했으나, 재계에는 지금도 이 일화가 금과옥조처럼 나돈다.
때문에 임기를 무려 2년반이나 남겨둔 이 대통령의 대기업 질타에 정면으로 맞설 대기업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이 대통령이 질타한 대기업 산하 금융계열사의 고리대 영업이나, 협력업체 후려치기 등은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뭐가 뛰니 뭐까지 뛴다더니..."
재계는 그러나 이 와중에도 일부 권력 주변의 '오버'에 대해선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특히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삼성전자가 2분기에 5조원을 벌었다니 가슴이 아프다", "네이버는 직원이 6천명인데 SKT는 4천600명밖에 안된다"는 발언에 대해선 분기탱천이다. "경제 문외한까지 나서,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가 터져나온다. "방통위원장이란 사람이 SKT 정식직원 숫자만 세고, SKT 때문에 먹고사는 수만개의 대리점은 계산도 못하냐"는 불만도 쏟아낸다.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의 "삼성전자가 은행보다 싸게 돈을 빌린다"는 푸념에 대해서도 "삼성전자 신용등급이 은행들보다 높아 그런 건데 어쩌란 말이냐. 은행 신용등급을 끌어올릴 생각은 안하고, 그렇다면 삼성전자 신용등급을 낮추란 얘기냐"고 항변한다.
한마디로 말해, 뭐가 뛰니 뭣까지 뛰는 것 아니냐는 불만 토로다.
국민이 조삼모사의 원숭이일까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우파 포퓰리즘이 뭐가 문제냐", "관치가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한다. 시장은 완벽한 게 아니니, 필요한 부문에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 시장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있는 사람은 자녀 대학등록금도 더 내도록 해야 하고, 재벌에 대해선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좌추적권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 최고가 지적한 '시장의 실패'는 틀리지 않는 얘기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 '관치'가 해법이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데 있다. 한 예로 7.28재보선이 끝나자마자 정부는 공공요금을 줄줄이 인상하고 있다. 왜 올릴까. 권력의 '선거 논리'에 발목 잡혀 국제원자재값이 폭등해도 전기-가스값을 올리지 않다보니 한전-가스공사가 수조원의 손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손실은 결국 국민이 대신 갚아야 할 부실이다. 결국 권력이 선거 논리로 국민을 조삼모사의 원숭이 취급을 해왔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의 한마디에 캐피탈사들이 줄줄이 내리는 최고금리도 마찬가지다. 캐피탈사들은 인심쓰듯 최고금리를 5~7%포인트 대폭 인하했다. 하지만 이는 신용불량자들에게 해당되던 금리일뿐, 대다수 고객이 내고 있는 평균대 금리는 요지부동이다. 캐피탈사들은 신불자에게 대출을 안해주면 그만일뿐, 립서비스를 통해 손해볼 일은 거의 없는 셈이다.
국민은 역대정권에서 숱한 '대기업 때리기'를 경험해왔다. 특히 권위주의 정권일수록 대기업 때리기를 애용해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역시나'였다.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양극화의 근원을 건드리지 않고 표피적 접근만 해왔기 때문이다.
MB정권만 해도 지난 2년반간, 얼마나 기업 프렌들리했나. 법인세, 소득세, 상속-증여세, 종합소득세 등 얼마나 많은 부자감세를 해줬나. 100조원에 가까운 감세혜택이 대부분 대기업과 상류층에게 돌아가지 않았나. 또한 고환율은 내수기업과 가계를 골병 들게 했지만 수출대기업에겐 얼마나 황홀한 선물이었나.
국민은 권력에게 조삼모사의 원숭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일시적으론 그럴 수도 있다. '혹시나'하고 한가닥 기대를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대정권에서 숱한 유사 경험을 한 국민은 결코 원숭이가 아니다. 며칠만 하는 걸 지켜보면 곧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 결론이 '역시나'가 안되기를 기대할뿐이나, 과연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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