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외무성이 갖고논 '백치' 한국외교
<기고> 盧, 일본이 놓고 간 '밤 껍질' 가시에 찔려 만신창이
담화문 내용을 축약해 보면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둘째, 독도문제에 대한 기존의 조용한 외교정책 노선에서 벗어나 주권수호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뤄 나가겠다.
셋째, 일본은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행위로 우리의 주권과 국민적 자존심을 모욕하는 행위를 중지하고, 경제규모에 걸맞게 국제사회에서 처신하라.
독도문제에 대한 우리국민들의 일반적인 심정을 반영한 내용들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독도특별 담화문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
독도가 우리의 영토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서술해 나가는 담화문 스토리를 읽다보면 마치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세계 경제 12위인 대한민국 대통령의 특별담화문의 내용이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식과 과거사 내용으로 꽉 차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특별 담화문의 수준과 내용이 이 정도밖에 안 될까. 대통령이나 그를 보좌하는 외교참모들의 외교에 대한 기본 인식과 이해가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은 점이 걱정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슴을 짓눌렀던 부분은 도대체, 왜 현시점에서 대통령이 독도문제를 갖고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는 것일까 하는 그 의외성이다. 고이즈미 일본수상처럼 망언적 해석을 할 필요까지는 없겠으나, 일국의 국민을 대표하는 최고 통치권자가 전면에 나서서 외교문제를 공개적으로 발언한다면 이것이 과연 독도문제 해결에 어떤 전략적 이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쯤 충분한 검토를 해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의 외교전략에 말려들었다
독도문제에 대한 특별담화문을 읽으면서 느낀 의구심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제 노 대통령의 특별담화문 발표로 독도 문제는 진정 일본이 바라는 국제 분쟁화 시도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이것은 그동안 독도의 국제 분쟁화를 위해 일본이 부어놓은 기름위에 노 대통령이 특별담화란 횃불을 들고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외신들의 서울발 보도가 급박히 타전됐다. 우리 정부는 이제 공개적으로 일본의 외교 전략에 빠져든 셈이다.
사실 일본은 그동안 독도 영토분쟁을 위한 치밀한 계획과 시나리오를 갖고 접근해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 정부는 매 순간 순간 일본의 외교적 수에 즉흥적으로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증좌의 절정이 어제 발표한 노대통령의 특별 담화문이었다. 정부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조용한 외교기조'를 바꿔 앞으로는 공개적인 정면 대응을 해 나가겠다는 조변석개(朝變夕改)식 독도정책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시종일관 독도문제를 국제 분쟁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겠다는 일관된 원칙을 주장해 왔다. 일본 외무성 관리들의 독도 문제에 대한 외교적 행보도 철저히 이 원칙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다. 지난주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야치 일본 외무성 차관의 발언과 외교행태도 이런 원칙에 입각한 계산된 행보였다.
일본은 우선 수로 측량선 배 두 척을 동해안으로 띄우겠다고 제스처를 펼쳤다. 이 제스처만 갖고서도 일본은 독도분쟁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증폭시키는 상황을 연출해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보내겠다는(결국 보내지 않은) 측량선박 두 척을 막기 위해 거의 모든 함정을 독도해역으로 총집결시켰다. 여기에는 무려 20여척에 가까운 해경 함정들이 동원되었다. 서해를 지키고 있었던 경비선까지 동원되었다.
한번 생각해 보자. 만일 이 순간에 서해에서 어장을 하고 있었던 중국 어선들이 대거 우리 해역으로 밀고 들어왔거나, 북한의 간첩선이 침투했다면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기름값도 못건진 참여정부 외교정책
우리는 있는 배 없는 배 모두 띄우다시피 했는데 일본의 수로 탐사선 두 척은 오는 척 하다가 결국 오지 않았다. 이 문제를 최근 국제유가 상승과 연관지어 해석한다면, 참여정부의 독도외교는 결국 20여척의 배가 독도에 집결하는 데 소비했던 기름값도 건지지 못한 꼴이 된 것이다. 그날 파도의 격랑이 좀 심했다는 기상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약 20여척에 들어간 배 기름값은 훨씬 많을 것이다. 물론 일본 배 두 척의 기름은 남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일본은 수로 탐사선을 띄우겠다고 발표한 반면, 우리 정부는 전함을 파견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전함을 파견하자 독도인근해역은 초긴장상태로 빨려 들어갔으며, 혹시 군사적 충돌이 발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결국 세계 여론에 새로운 국제분쟁지역으로 인식이 강화되었다. 일본의 독도영토분쟁 전략에 완전히 말려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독도인근 해역에 전함을 배치하여 긴장을 조성하는 쪽은 우리 정부인 것으로 세계여론은 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은 그만큼 우리 정부의 외교적 전략이 미숙하고 치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국제뉴스로 타전 되었을 때, 세계 여론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였을 것인가를 우리 정부가 놓친 것이다.
일본 외무성은 우리 정부가 독도에 전함을 배치했다는 기사가 외신을 타고 세계로 확산되었다고 판단한 바로 그 순간, 독도 인근 해역에 조성된 긴장을 막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대화 노력'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 전략의 정점이 바로 야치 외무성 차관의 방한이라는 외교행각이었다.
이 순간 우리의 언론과 외교부의 움직임은 어떠했는가? 온통 외교차관의 모습만을 찍어대면서 거의 몰려다니다시피 그의 행보에 관심을 집중했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모두 놓치고 있었다. 그가 왜, 어떤 쇼업을 하기 위해, 무슨 의도로 그 시점에 방한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깊이 있는 의중을 탐색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의 방한이 어떤 외교적 복선(伏線)을 깔고 들어온 것인지를 살피는 데는 관심조차도 갖질 않았다. 그런 와중에 그는 독도문제를 분쟁이 아닌 대화로 해결하려 한다는 선전과 홍보를 대한민국 땅에서 즐기고 있었다.
바로 일본외무성이 애초에 방한 파견 인사를 국장급으로 하려다 계획을 바꿔 차관급으로 격상시킨 것도 외교적 의전을 높임으로써 국제적 관심을 더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란 계산하에서였다. 일본외무성은 외교차관을 파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독도를 분쟁화 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또 분쟁문제를 대화를 통해 풀어 나가려 한다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킴으로써 기대이상의 소득을 챙긴 것이다.
서울에 도착한 야치 쇼타로 차관의 협상 방법만 봐도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에 따라 협상 시간을 질질 끌면서 몇 번에 걸친 협상 파산을 예고하는 척 한다. 우리 외교부 대표로 하여금 더 이상 대화를 통한 분쟁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체념상태에 젖게 만들어 차를 타고 협상장을 빠져 나가게 해 놓고, 바로 그 순간 한 번만 더 협상해 보자고 해 마치 마지막 단계에서 일본이 무슨 큰 사안을 양보나 한 것처럼, 그것도 우리 정부에 뭔가 알갱이를 쥐어 준 것처럼 수법을 써서 외교적 껍데기만 남기고 알갱이는 자신들이 쏙 빼 가버린 것이다.
마치 밤송이의 알밤을 속 빼가고 가시가 성성한 밤 껍질만 우리 정부에 던져주고 떠나버린 형국(形局)이다.
일본이 던져놓고 간 '밤 껍질' 가시에 찔려 만신창이
우리 정부는 지금 일본이 던져주고 간 '밤 껍질'의 여론이란 가시에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면서 손등이 터지고 있는 형극(荊棘)의 처지에 놓여 있고, 노대통령이 어제 발표한 특별 담화문은 이를 탈피하고자 하는 만회의 묘수였다.
이것만 봐도 독도문제에 대한 시비와 분쟁의 원인은 일본이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미숙으로 그 모든 원인이 마치 우리 정부에 있는 것처럼 정부 스스로가 일본이 만들어 놓은 외교적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침략’이란 발언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며, 마치 일본과의 전면전도 불사한 듯한 발언들을 예고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 봐도 독도문제에 대한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의 의중을 만천하에 드러낸 외교적 최하위의 수이며, 우리 정부가 독도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외교적 적국 앞에 속속들이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이 두 쪽이 나도 끝까지,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을 수밖에 없다”라고 한 이 나라 외교통상부 차관의 발언을 보면서 참여정부 외교관들의 수준이 천박한 저질 국회의원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대통령까지 전면에 나서서 특별 담화문을 통해 외교적 감정을 드러낸 상황을 보고선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최상의 외교관이란 원래 표현의 마술사가 되어야 하고, 언어 사용의 세련된 기술로 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의중은 감추면서 상대방의 마음은 화들짝 열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협상 파트너의 심리를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그 나라 최고 지도자의 의중을 탐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전략과 정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교관이란 교전국의 적국이라 하더라도 협상에 임할 때는 자신의 감정은 철저히 숨기고 협상 파트너의 감정은 철저히 읽어내는 훈련부터 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고지도자가, 그리고 그 밑의 외교협상가가 마치 장수가 전투에 임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의중을 백일하 만천하에 홀딱 드러내 주고 있으니, 일본의 외교전략가들은 일하기에 얼마나 흥이 나겠는가.
오늘 이후부터라도 대통령과 외교책임자들은 우리의 독도 외교전략에 대해 마음과 입을 모두 닫길 바란다. 그리고 일본이 독도분쟁화로 인해 동북아 지역에서 잃고 있는 점이 어떤 점들인가를 잘 분석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일본내 합리적 생각을 갖고 있는 국민들을 향해 홍보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회에도 알리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21세기 들어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또 다시 과거의 행보를 거듭해 나간다면 이를 국제여론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 여기에 일본이 영토분쟁까지 촉발시켜 아시아의 평화무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면 이를 좋아할 나라는 없을 것이다.
정부는 어제 조용한 외교 정책을 철회했지만, 진정 조용한 외교를 추구해 나가야 할 부분은 바로 미국과 중국과의 외교채널 확보에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정부는 심혈을 다해 조용한 외교 행보를 펼쳐 나가야 한다. 일본은 지금 중국과도 영토분쟁에 놓여 있기 때문에 대일 고립 외교문제에 대해 중국과 공감을 이룰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이 부분을 정부는 아주 조용한 외교로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 일관된 입장과 원칙을 갖고 조용히 가라.
필자 소개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던 장성민씨는 현재 평화방송 시사프로그램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를 진행하는 동시에,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한반도문제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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