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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뜹니다.

만고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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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오찬에서 기약 없는 희망사항인 나도 뜹니다. 라고 말했다. 문재인 장관임용에 대한 반대여론의 심화와 여당내의 당의장이하의 반란이 대통령의 심경을 건드린 모양이다. 참여정부의 출발모토는 말 그대로 참여였다. 함께하는 국정과 함께하는 정책에서 개혁시대의 참 민주주의 실현의 동참, 그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살맛나는 세상의 구현인 참여정부라는 타이틀에서 묻어나오는 냄새였다.

그러나 정권의 시작부터 삐긋 거리던 국정의 표류는 당정분리의 원칙이라는 해괴한 당정실험으로 시작 되었다. 당정분리라는 보증 없는 실험이 책임정치와 권위주의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실행되었다. 그 연장에서 판검사와의 맞짱을 뜬다거나 불필요한 말실수에 의한 장난질의 정치가 연속되었고 권위손상에 의한 무질서의 범람이 초래 됐다. 권력은 한없이 판을 갈아엎었다. 그리고 모든 것에 각을 세웠다. 참여가 적을 만들고 개혁이 반란을 만드는 동기부여의 실험정치가 극심한 혼란을 초래했다.

참여정부의 이름이 무색한 실험정치의 곡예는 독선과 고집에 편승된 코드의 난맥으로 치 닫았다. 그럴 때 마다 낙하산과 돌려 막기라는 빈곤한 인재풀에서 국민을 화나게 만들었고 대통령의 고집이 민심의 우위에 서야했다. 그리고 집권 후기 “나도 뜹니다. 라는 빈곤한 권위로 대통령의 권세를 누리는 훈계의 촌극이 벌어졌다. 나도 뜹니다. 라는 것은 대통령이 처한 빈곤한 위치를 대변하는 서글픈 현주소이다. 오죽했으면 나도 뜬다. 라는 권위의 권세를 부르짖었는지 이해가가는 서글픈 이야기이기에 말이다.

“나도 뜹니다.” 진정히 대통령은 국민 속에 언제나 떠있어야 합니다. 굴절된 사회와 빈곤한 가슴과 미래에 대한 빛으로 언제나 국민 속에 떠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기약할 수 없는 나도 뜹니다. 라는 권세에서 노기에 젖어 분노의 오찬을 들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떠있어야 할 대통령이 저물어가는 보름달을 움켜쥐고 언젠가 나도 뜹니다. 라는 노기의 권세를 부리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뜨고 싶거든 민심을 보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보듬지 못했습니다. 참여정부는 곧 국민이 주인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에는 국민이 없습니다. 보듬지 못한 실험정치의 각 속에서 탈출한 민심만 있을 뿐입니다.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강변이 무소불위한 권세의 영역으로 착각하는 한 국민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선출직 국민의 대표입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권한을 부여해 헌법으로부터 보장받는 신분일 뿐입니다. 대통령이라 해서 대통령 직 속에 보장된 인사권의 만용에 독선의 고집이 반영되면 곤란합니다. 정치의 대상은 정치인 개인의 영욕이나 영달의 사유물이 아닙니다. 정치는 곧 국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사권의 만용에 독선이 끼면 선심인사요 낙하산이 되는 법입니다.

적재적소는 불필요한 것을 인정할 수 없는 범주의 입니다. 적재적소가 인사권 남용의 곡기에서 몸부림친다면 국민이 얻을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이 떠나고 버리는 것 입니다. 나도 뜹니다라는 희망사항이 실현되지 말라고 비는 국민은 없습니다. 뜨고 싶거든 세상의 눈을 가져야하고 민심을 읽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은 분명 20% 바람이든 풍선을 타고 있습니다. 붕붕 떠서 멀리 높이서 국민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나 뜰 것이라는 희망사항이 왜 스스로의 입에서 나오는 지를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나도 뜹니다. 라는 서글픈 권세의 위용에서 오찬을 들어야만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국민 속에 떠야 국리민복의 실현이 앞당겨 지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들녘에 있는 잡초처럼 양기를 잃고 누렇게 뜨면 희망이 없습니다. 뜨는 것은 말라죽느냐 아니면 인기의 폭발이냐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권력의 고사도 권력의 나름이고 여자도 남자하기 나름입니다. 모든 것이 본인의 가치실현에서 상대적 감정을 유발시킵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의 하기 나름에 따라 뜨고 지는 운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사권의 존중을 요구하기 전에 그동안의 인사가 인치에서 비롯된 고집스런 만용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야 언젠가 뜹니다. 라는 오찬속의 오기를 인정할 기회가 다가오기에 말입니다. 대통령의 오찬 속 나도 뜹니다. 라는 권세의 비참함을 보면서 민심이 대통령 권한의 범주보다 우위에 있다는 현실인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야 뜰 수 있을 터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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