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숙명적 맞수', 앙리 마티스
[그림 읽는 CEO] 미술의 기존질서를 파괴한 '야수파 화가'
"정확성이 진실은 아니다.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진정한 화가에게 장미 한 송이를 그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 장미를 제대로 그리려면 지금껏 그렸던 모든 장미를 잊어야 하기 때문이다."(앙리 마티스)
사람들의 성향과 기질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보수와 진보다.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변화보다는 보존,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기보다 축적하는 타입이다. 반면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안정보다는 도전, 전통을 지키기보다는 새로움과 모험을 추구하는 개방형 타입이다. 예술가들도 보수와 진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전통을 계승하는 예술가와 전통의 틀을 깨고 개혁하는 예술가다. 이번에도 미술의 전통 양식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낸 개혁적인 성향의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순서를 마련했다.
색채 에너지의 발견
회화의 제왕인 피카소가 일생의 라이벌로 여긴 화가가 있다. 미술계를 석권한 피카소도 그의 탁월한 미술적 재능에 고개를 조아렸다. 두 화가는 평생토록 질투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천재성의 우열을 가르는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영원한 맞수인 두 화가의 치열한 승부욕으로 인해 현대 미술은 찬란하게 꽃피웠다. 그렇다면 피카소의 숙명적인 맞수는 누구일까? 바로 색채의 대가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다. 피카소가 원근법을 파괴하고 새로운 회화의 제국을 건설하는 동안 마티스도 질세라 색채의 왕국을 설립했다.
그런데 마티스가 건설한 색채의 나라가 미술계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왜냐하면 당시 대다수의 화가들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데생, 즉 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데생은 이성, 색채는 감정에 비유하면서 데생은 우대하고 색채는 홀대했다.
그러나 마티스는 색채를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면서 데생 대신 색채로 사물을 표현했다. 나무는 빨간색, 사람의 피부는 파란색, 하늘은 노란색으로 칠했다. 대상의 원래 색깔과는 전혀 다른 색채, 그것도 강렬하게 칠한 바람에 마티스는 '야수파 화가'라는 희한한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야수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원색을 사용해서 그림에 표현했다는 뜻이다. 그럼 마티스의 대표작을 감상하면서 그가 색채의 왕국을 건설한 동기를 추적해보자.
1905년 마티스는 이 초상화를 파리 살롱 도톤 전람회에 출품했다. 초상화의 모델은 마티스의 부인이다. 그녀는 크고 화려한 모자를 쓰고, 주황색 벨트가 달린 사치스런 드레스를 입었으며, 한 손에는 부채를 든 채 안락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인물의 표현 방식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파격적이다. 커다란 모자는 물감을 칠했다기보다 물감을 덕지덕지 붙인 꼴이고, 얼굴도 살색 대신 녹색, 연보라색, 파란색을 칠했으며, 목에는 빨강과 주황을 마치 낙서하듯 색칠했다. 모자 밑으로 보이는 머리카락도 한쪽은 빨강, 다른 한쪽은 녹색이다. 야한 원색을 화면에 거칠게 문질러서 지저분해진 초상화는 여인을 우아하고 감미롭게 묘사하던 다른 초상화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마티스는 인물을 닮게 그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가. 화가의 회화적 기교나 재능의 잣대인 데생이나 명암까지도 무시했다. 마치 난폭한 무법자처럼 원색의 색채를 무기 삼아 화폭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회화의 전통을 파괴한 마티스의 초상화는 미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평론가들은 입체감, 공간적 깊이, 정교한 붓질 등 전통 미술이 추구한 미적 가치를 짓밟은 마티스의 야만적인 행위에 경악했다. 마티스는 대상을 충실하게 묘사해야 할 예술가의 본분을 저버리고 화가에게 금기인 원색을 버젓이 사용했다. 또한 해부학적인 지식도 저버렸다. 추함이 아름다움을 이겼다. 조화와 균형, 비례를 존중하던 미술의 고귀한 전통은 야만인의 침공으로 무너지고 만 것이다.
관람객들은 미술의 질서를 파괴한 화가의 야수 같은 짓에 분개했다. 조잡하고, 역겨운, 최악의 그림이라면서 마티스에게 야유를 퍼붓고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미술계를 장악한 보수적인 화가들도 마티스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기대에 부풀어 전시장을 찾았던 마티스는 자신을 겨냥한 인신공격성 비난이 쏟아지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두 번 다시 전시장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아내에게도 전람회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마티스는 왜 비난을 자초한 것일까? 색채가 형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성보다 감정을 중시했던 마티스는 인간의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는 색채라고 믿었다. 그는 감정의 언어인 색채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최초의 화가가 되고 싶었다. 마티스는 그런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까닭은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감정이 없는 화가는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 한다."
모로코의 전통 의상을 입은 채 조용히 앉아있는 여인을 보라.
색채는 감정이고, 감각이며, 에너지고, 생명이라는 마티스의 주장을 생생하게 증명하지 않는가. 이 그림에서도 드러나듯 마티스는 전통 미술이 중시하는 주제와 형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대상을 꼼꼼하게 묘사하면 관람객의 상상력을 짓누르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진정한 화가에게 한 송이의 장미를 그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장미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지금껏 그렸던 모든 장미를 잊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티스에게 색채는 주제이고 형태이며 명암이었기에 그는 평생에 걸쳐서 열정적으로 색채의 가치를 증명하는 그림을 그렸다. 심지어 마티스는 색채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강력한 색채의 효과를 탐구하라, 그림의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특정한 파란색은 당신의 영혼을 파고들며, 특정한 빨간색은 당신의 혈압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색채가 지닌 미술 치료의 힘을 확신한 나머지 병석에 누운 친구에게 자신의 그림을 실내에 걸어둘 것을 권했다.
마티스는 미술의 전통에 도전해서 색채의 가치를 인식시키고 색채를 해방시켰다. 색채의 혁명가 마티스 덕분에 화가들은 자유롭게 색채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계속>
필자 소개
한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현재 사비나미술관 관장과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를 겸하고 있다. 성신여대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예술기획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 MBC 교양국 PD를 거쳐 1996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사비나'를 개관했다. '갤러리 사비나'는 매번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대중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한국문학번역원 선정 '2005년 한국의 책 96'으로 선정된 바 있는 『팜므 파탈』과, 2006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하고 2006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 과학도서로 선정된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2005년 문화관광부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된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2005년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된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명화 경제 토크』,『센세이션展』,『머리가 좋아지는 그림 이야기』, 『날씨로 보는 명화』,『에로틱 갤러리』,『화가들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아침 미술관』 등의 책을 집필했다.
사람들의 성향과 기질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보수와 진보다.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변화보다는 보존,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기보다 축적하는 타입이다. 반면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안정보다는 도전, 전통을 지키기보다는 새로움과 모험을 추구하는 개방형 타입이다. 예술가들도 보수와 진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전통을 계승하는 예술가와 전통의 틀을 깨고 개혁하는 예술가다. 이번에도 미술의 전통 양식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낸 개혁적인 성향의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순서를 마련했다.
색채 에너지의 발견
회화의 제왕인 피카소가 일생의 라이벌로 여긴 화가가 있다. 미술계를 석권한 피카소도 그의 탁월한 미술적 재능에 고개를 조아렸다. 두 화가는 평생토록 질투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천재성의 우열을 가르는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영원한 맞수인 두 화가의 치열한 승부욕으로 인해 현대 미술은 찬란하게 꽃피웠다. 그렇다면 피카소의 숙명적인 맞수는 누구일까? 바로 색채의 대가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다. 피카소가 원근법을 파괴하고 새로운 회화의 제국을 건설하는 동안 마티스도 질세라 색채의 왕국을 설립했다.
그런데 마티스가 건설한 색채의 나라가 미술계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왜냐하면 당시 대다수의 화가들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데생, 즉 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데생은 이성, 색채는 감정에 비유하면서 데생은 우대하고 색채는 홀대했다.
그러나 마티스는 색채를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면서 데생 대신 색채로 사물을 표현했다. 나무는 빨간색, 사람의 피부는 파란색, 하늘은 노란색으로 칠했다. 대상의 원래 색깔과는 전혀 다른 색채, 그것도 강렬하게 칠한 바람에 마티스는 '야수파 화가'라는 희한한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야수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원색을 사용해서 그림에 표현했다는 뜻이다. 그럼 마티스의 대표작을 감상하면서 그가 색채의 왕국을 건설한 동기를 추적해보자.
1905년 마티스는 이 초상화를 파리 살롱 도톤 전람회에 출품했다. 초상화의 모델은 마티스의 부인이다. 그녀는 크고 화려한 모자를 쓰고, 주황색 벨트가 달린 사치스런 드레스를 입었으며, 한 손에는 부채를 든 채 안락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인물의 표현 방식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파격적이다. 커다란 모자는 물감을 칠했다기보다 물감을 덕지덕지 붙인 꼴이고, 얼굴도 살색 대신 녹색, 연보라색, 파란색을 칠했으며, 목에는 빨강과 주황을 마치 낙서하듯 색칠했다. 모자 밑으로 보이는 머리카락도 한쪽은 빨강, 다른 한쪽은 녹색이다. 야한 원색을 화면에 거칠게 문질러서 지저분해진 초상화는 여인을 우아하고 감미롭게 묘사하던 다른 초상화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마티스는 인물을 닮게 그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가. 화가의 회화적 기교나 재능의 잣대인 데생이나 명암까지도 무시했다. 마치 난폭한 무법자처럼 원색의 색채를 무기 삼아 화폭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회화의 전통을 파괴한 마티스의 초상화는 미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평론가들은 입체감, 공간적 깊이, 정교한 붓질 등 전통 미술이 추구한 미적 가치를 짓밟은 마티스의 야만적인 행위에 경악했다. 마티스는 대상을 충실하게 묘사해야 할 예술가의 본분을 저버리고 화가에게 금기인 원색을 버젓이 사용했다. 또한 해부학적인 지식도 저버렸다. 추함이 아름다움을 이겼다. 조화와 균형, 비례를 존중하던 미술의 고귀한 전통은 야만인의 침공으로 무너지고 만 것이다.
관람객들은 미술의 질서를 파괴한 화가의 야수 같은 짓에 분개했다. 조잡하고, 역겨운, 최악의 그림이라면서 마티스에게 야유를 퍼붓고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미술계를 장악한 보수적인 화가들도 마티스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기대에 부풀어 전시장을 찾았던 마티스는 자신을 겨냥한 인신공격성 비난이 쏟아지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두 번 다시 전시장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아내에게도 전람회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마티스는 왜 비난을 자초한 것일까? 색채가 형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성보다 감정을 중시했던 마티스는 인간의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는 색채라고 믿었다. 그는 감정의 언어인 색채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최초의 화가가 되고 싶었다. 마티스는 그런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까닭은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감정이 없는 화가는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 한다."
모로코의 전통 의상을 입은 채 조용히 앉아있는 여인을 보라.
색채는 감정이고, 감각이며, 에너지고, 생명이라는 마티스의 주장을 생생하게 증명하지 않는가. 이 그림에서도 드러나듯 마티스는 전통 미술이 중시하는 주제와 형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대상을 꼼꼼하게 묘사하면 관람객의 상상력을 짓누르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진정한 화가에게 한 송이의 장미를 그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장미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지금껏 그렸던 모든 장미를 잊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티스에게 색채는 주제이고 형태이며 명암이었기에 그는 평생에 걸쳐서 열정적으로 색채의 가치를 증명하는 그림을 그렸다. 심지어 마티스는 색채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강력한 색채의 효과를 탐구하라, 그림의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특정한 파란색은 당신의 영혼을 파고들며, 특정한 빨간색은 당신의 혈압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색채가 지닌 미술 치료의 힘을 확신한 나머지 병석에 누운 친구에게 자신의 그림을 실내에 걸어둘 것을 권했다.
마티스는 미술의 전통에 도전해서 색채의 가치를 인식시키고 색채를 해방시켰다. 색채의 혁명가 마티스 덕분에 화가들은 자유롭게 색채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계속>
필자 소개
한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현재 사비나미술관 관장과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를 겸하고 있다. 성신여대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예술기획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 MBC 교양국 PD를 거쳐 1996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사비나'를 개관했다. '갤러리 사비나'는 매번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대중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한국문학번역원 선정 '2005년 한국의 책 96'으로 선정된 바 있는 『팜므 파탈』과, 2006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하고 2006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 과학도서로 선정된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2005년 문화관광부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된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2005년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된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명화 경제 토크』,『센세이션展』,『머리가 좋아지는 그림 이야기』, 『날씨로 보는 명화』,『에로틱 갤러리』,『화가들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아침 미술관』 등의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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