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인하 막겠다고? 또 '대기업 프렌들리'
[송기균의 '마켓 뷰'] 국민-내수기업은 골병 들어
5월11일자 <뷰스 칼럼>의 내용이다. 이 기사를 보며 1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수출을 위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환율을 급격히 올려서 수출을 촉진하자는 거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고부터 환율은 폭등이라고 부를 정도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환율 폭등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 왔다. 수출감소폭이 줄고 수입은 더 크게 줄어 경상수지가 크게 개선되었다. 수출대기업의 이익은 크게 좋아졌다. 수출물량은 크게 줄었지만 환율상승으로 이익률이 엄청나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올 1분기 수출 대기업들은 기대 이상의 놀랄만한 이익(Earnings Surprise)을 누렸고 주가는 폭등하였다. 환율상승의 효과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환율상승이 우리 경제에 좋은 영향만 가져다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느 독자가 4월27일자 댓글에서 예리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경제에서 공짜 점심(Free Lunch)은 없다. 환율상승으로 어느 부문이 이익을 보았다면 다른 부문은 손해를 보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인위적인 환율상승으로 이익을 본 쪽은 말할 것도 없이 수출대기업들이다. 그리고 그 대기업의 주주들이다. 대주주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대기업의 주식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쏠쏠하게 이익을 본 것은 틀림없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그 대기업들 주식의 50% 이상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그러면 환율상승으로 피해를 본 쪽은 어디인가? 일반서민과 자영업자들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우량 수출중소기업들도 큰 타격을 받았다. 왜 그런지 보도록 하자.
지금 전세계가 80년 만의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 이런 불황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경제 여건이 나빠지고 특히 살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황이 경제주체들에게 주는 혜택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물가하락이다. 물가가 하락하면 실질소득이 증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소득이 10% 감소하는데 물가가 5% 하락하면 실질소득은 5% 감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가하락으로 인한 플러스 경제효과란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서민들은 불황의 고통 속에서 물가마저 상승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였다. 주요 선진7개국(G7)의 물가상승률 0.5%의 7배가 넘었다. 2월까지의 물가상승률은 4.1%였다.(4월 1일자 ‘송기균의 마켓뷰’ 참조)
우리만 유독 물가가 급등했던 것은 환율급등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수출을 늘려 대기업의 이익을 확보해주는 대신 환율상승으로 일반 서민은 소득감소에 더해 물가상승의 고통까지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환율이 비정상적인 폭등을 멈추고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런데 다시 또 인위적으로라도 환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다시 소수 대기업을 위해 서민과 자영업자가 희생을 감내하라는 이야기다.
수출이 잘되고 수출대기업이 이익이 늘면 일자리가 늘어 경제가 호전될 것이므로 물가상승의 고통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주장은 아주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대기업의 매출증가가 고용을 늘리는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는 것은 이미 검증이 끝난 사실이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대기업만이 아니라 수출 중소기업들도 혜택을 본다는 주장도 나올 것이다. 논리적으로 맞는 이야기지만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다. 왜냐고? 키코(KIKO)라는 파생상품 때문이다. 키코라는 극히 위험한 환율파생거래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다음에 조목조목 따져볼 기회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키코 거래로 인해 우리나라의 견실한 수출 중소기업의 다수가 환율폭등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손실이 너무 커서 실질적인 파산상태에 있다.
이들 기술력과 성장성이 뛰어난 천여 개의 수출중소기업이 정상화되는 길은 환율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방법밖에 없다. 다행히 환율이 급락하여 이들 우량중소기업의 경영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대기업의 수출확대를 위해 환율을 높게 유지하려는 것은 이들 중소기업의 회생을 막는 아주 불공평한 정책이다.
“외환보유고를 늘려 외환시장의 불안정을 예방하자”는 주장의 허구성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따져 보도록 하겠다. 아울러 정부의 인위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환투기 세력을 불러올 가능성도 함께 논의하도록 하겠다.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2), 동원증권 런던현지법인 대표, 코스닥시장 상장팀장, 코스모창업투자 대표, 경기신용보증재단 신용보증본부장, (현) 기업금융연구소 소장. 저서 <불황에서 살아남는 금융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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