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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수환 추기경에 '쓴소리'

"언제부턴가 갈등을 키우는 매개가 되고 있어"

한때 천주교 소유였던 <경향신문>이 김수환 추기경(84)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언제부턴가 추기경님의 ‘말씀’이 분열을 걷는 화해의 메시지가 아니라, 갈등을 키우는 매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향신문>은 28일 '김수환 추기경님'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추기경님의 이름은 저 척박했던 시절, 역사의 대의를 믿고 나갔던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핍박과 소외받는 이들에게 힘이었고, 위로였다"며 " 하지만 언제부턴가 추기경님의 ‘말씀’이 분열을 걷는 화해의 메시지가 아니라, 갈등을 키우는 매개가 되고 있다. 반개혁 세력의 무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과거 수없이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을 설파했던 추기경님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의사를 밝혔을 때 어떠했냐"며 "추기경님의 뜻은 사회적 갈등을 우려한 것이었을지언정, 특정의 정파와 언론들은 추기경님을 자신들의 후견인쯤으로 매김하고 국가보안법의 가치를 강변하는 데 썼다"고 김 추기경의 '말바꿈'과 그 후유증을 꼬집기도 했다.

사설은 "추기경님은 엊그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발언을 공개하고, 이용한 한나라당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그러나 분명 정치적이고, 특히 선거에 영향을 미칠 과도한 정치적 발언을 추기경님이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는 당혹스럽다"고 비판했다.

사설은 "물론 원로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고견은 소중하다"면서도 "다만 정치적 편향이 선명하고, 그래서 추기경님의 말씀이 정략적으로 활용·왜곡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정호승)이라는 시가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는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기도하는 손을 기다리는 곳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너무 많다"는 바람으로 글을 끝맺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26일 김수환 추기경 집무실을 예방, 김 추기경과 악수를 하고 있다. 그후 한나라당은 비공개 회견내용을 공개, 그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연합뉴스


다음은 사설 전문.

‘김수환 추기경님’

추기경님의 이름은 저 척박했던 시절, 역사의 대의를 믿고 나갔던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핍박과 소외받는 이들에게 힘이었고, 위로였습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군사정권이 학생들이 집결한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려 했을 때, “맨 먼저 내가 거기 있을 것이다”라며 역사의 물꼬를 바꾼 추기경님이었습니다. 역사의 고비때마다 현장에서 억압 받는 이들과 함께 한 것은 성직자의 소명에 충실한 길이었을 터이지만, 그런 소명에 충실한 원로가 드물었기에 추기경님의 존재감은 컸습니다. 사회적 존경을 한몸에 받는 어른으로서 추기경님의 말씀 하나 하나는 한국 가톨릭의 수장 이상의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추기경님의 ‘말씀’이 분열을 걷는 화해의 메시지가 아니라, 갈등을 키우는 매개가 되고 있습니다. 반개혁 세력의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 수없이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을 설파했던 추기경님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의사를 밝혔을 때 어떠했습니까. 추기경님의 뜻은 사회적 갈등을 우려한 것이었을지언정, 특정의 정파와 언론들은 추기경님을 자신들의 후견인쯤으로 매김하고 국가보안법의 가치를 강변하는 데 썼습니다.

추기경님은 엊그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발언을 공개하고, 이용한 한나라당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분명 정치적이고, 특히 선거에 영향을 미칠 과도한 정치적 발언을 추기경님이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는 당혹스럽습니다. 물론 원로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고견은 소중합니다. 다만 정치적 편향이 선명하고, 그래서 추기경님의 말씀이 정략적으로 활용·왜곡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정호승)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는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기도하는 손을 기다리는 곳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너무 많습니다.
심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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