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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이영표만 태극전사인가"

지금 서울 한복판은 박지성. 이영표로 도배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서울 도심은 월드컵 관련 광고물로 점령됐다. 정부, 기업, 언론 할 것 없이 너도나도 건물 외벽을 이용한 옥외광고물 등의 광고마케팅에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광고물에 등장하는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박지성, 이영표 선수 등 일부 유명 해외파 선수에 편중돼 ‘23인의 태극전사’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건물에도, 밀랍인형에도, 지하철에도, 비행기에도 오직 박지성!

월드컵 개막 몇 달 전부터 ‘월드컵로’가 돼 버린 서울 광화문 일대 세종로는 박지성 선수와 이영표선수의 얼굴로 도배돼다 시피하고 있다. 특히 건물의 한 면 전체를 거대한 현수막으로 에워싸는 ‘래핑(Wrapping) 광고’를 활용한 옥외 광고물이 넘쳐나고 있는데 현수막 안에 박힌 얼굴은 어김없이 박지성이나 이영표 선수다.

광화문 역으로 통하는 계단 곳곳에는 박지성과 이영표만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김동현


<조선일보>는 광화문 네 거리 한 복판에 위치한 자사 간판 아래에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가 나란히 등장하는 초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동아일보> 역시 구 사옥 건물 한면 전체를 박지성 선수가 포효하는 사진으로 도배했다. 광고물에는 <조선일보>의 경우 SKT와 <동아일보>는 LG와 협찬한다는 문구도 박혀있다.

또 <조선일보>의 경우,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사옥 앞에 포털사이트 <다음>과 제휴해 대형 밀랍인형도 설치했다. 물론 이 대형 밀랍인형도 맨 앞 자리는 박지성 선수를 본떠 만든 인형이 차지했다. 그 뒤로 이천수와 박주영 선수를 본떠 만든 인형이 서 있다.

5호선 광화문 지하철 역 아래로 내려가면 박지성, 이영표 선수의 독무대다. 역사로 내려가는 통로부터 지하철 플랫폼으로 통하는 계단에 이르기까지 박지성, 이영표 양 선수의 얼굴이 벽면 곳곳에 큼지막하게 도배돼 있다.

양 선수는 이 광고물에서 SKT가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 수건’을 펼쳐들고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벽면 옆에는 ‘대한민국 파이팅’이라는 의례적 문구도 있는 반면, “지성오빠, 영표오빠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더 많다. 하지만 양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21인의 태극전사'들은 그 얼굴은 물론 이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건물 앞에 위치한 밀랍인형은 박지성, 이천수, 박주영 등 특정 선수들의 얼굴을 본떠 만든 조형물만 위치하고 있다 ⓒ김동현


광화문을 지나 각 은행 지점들이 위치해 있는 종로 1가 방향으로 건너가면 더 많은 박지성과 이영표를 만날 수 있다. 우리은행, 외환은행 등 일찌감치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와 광고계약을 맺은 은행들의 홍보물이 거리 곳곳을 장악하고 있다.

고층빌딩이 밀집해 있는 을지로 방면으로 가면 상황은 더 볼썽샤납다.

웬만한 고층 건물들은 월드컵 관련 광고물이 넘실되고 있다. 특히 눈에 띠는 것은 을지로 3가에 위치한 33층 짜리 한 대기업 본사 건물. 이 건물은 특이하게도 현수막이 아닌 스티커 식의 래핑 광고물이다. 2백30개에 달하는 필름형 조각 스티커를 가로 28m, 세로48m의 건물 전체벽면을 휘감고 있다. 물론 2백30여개의 스티커를 완성한 얼굴은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가 포효하고 있는 장면이다.

하늘에서도 박지성과 이영표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올 3월, 보잉747 항공기 동체 양면에 가로14m, 세로5m 길이의 국가대표 축구팀 11명의 이미지가 새겨진 래핑 작업을 했다. 물론 아시아나는 이를 홍보하며 박지성, 이영표 선수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조선일보>는 SKT와 제휴해 박지성, 이영표가 새겨진 초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김동현


TV 광고에서도 박지성과 이영표가 독점하다시피...

TV 광고물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가장 많은 TV광고를 하고있는 한국국가대표 축구선수는 단연 박지성 선수. 박지성은 현재까지 LG전자, 하이트 맥주, SKT, 우리은행 등의 TV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 박지성에 이어 이영표 선수도 외환은행과 SKT 광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이외 그나마 TV 광고에서 선전(?)하고 있는 선수는 박주영 정도. 그리고 최근에야 겨우 스포츠 음료광고를 따낸 골키퍼 이운재 선수가 있다. 선수 이외는 아드보카트 감독 정도가 TV 광고에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동아일보> 역시 LG그룹과 제휴해 자사 건물 벽면 전체에 박지성 광고를 내걸었다 ⓒ김동현


아무리 광고라지만 축구는 단체경기, ‘23인의 태극전사’의 가치 일깨우기를

물론 광고업계에서 이들 특정 선수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있다. 일단 가장 유명한 선수들에게 광고 제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또 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논리도 있다.

차두리 선수를 집중 홍보한 광고업체는 이번 월드컵 엔트리에서 차 선수가 빠지자 망연자실 해야했다. 또 부상으로 결국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한 이동국 선수를 내세웠던 광고주 역시 눈물을 삼켜야했다.

이렇듯 기업들도 자사를 광고 할 선수들을 선정할 때 이만저만 고심하는 것이 아니다. 괜한 실험을 하기보다 확실한 보증수표 격의 선수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의 건물 외벽, 지하철 등의 월드컵 광고 홍보물에서조차 오로지 몇몇 특정 선수의 얼굴만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는 것은, 축구가 단체경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씁쓸한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기술보다는 강인한 체력과 팀웍으로 4강 신화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생각할 때, 벤치를 지키고 있는 예비선수들의 가치는 재차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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