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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방북, 미증유의 '외교 지각변동' 예고

<특별 기고> 남북정상회담 盧제안은 북-미 '强 대 强' 대립의 산물

벼랑 끝에 선 김계관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궁지에 몰려 있다. 최근 그의 표정은 매우 초조해 보인다. 미디어에 비치는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고, 외교관으로서 지녀야 할 레토릭 또한 더 이상 세련되고 조탁(彫琢)된 언어가 아니다. 내면의 감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 보이고, 미국에 대한 그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는 감정적이고 적대적인 독기가 내비치고 있다.

그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고, 마치 벼랑끝에 내몰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고, 유유자적한 외교적 행보를 보여 왔던 과거와는 대조를 이룬다. 왜 그러는 것일까?

북한 내부의 군부 강경파들에게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일까? 바로 중국 땅 마카오의 방코델타 아시아은행(BDA)에 묶여 있는 2천4백만 달러 때문이다. 협상파인 김계관은 강경파들에게 정치적 공세까지 받으면서 “미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묶여 있는 “인민의 돈”을 빨리 건져오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인민들의 피와 땀이 어린 금융재산이 어떻게 미국에 탈취 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미국을 상대로 무슨 핵문제를 협의한다는 말이냐. 처음부터 미국과 핵협상을 한다는 것 자체를 믿지 않았지만, 당신의 대미 외교가 실패한 외교가 아니란 것을 입증해 보이려면,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돈부터 회수해 오라”는 압력을 매우 심하게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부상은 지금 감내하기 어려운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위로부터의 배제와 밑으로부터의 저항”이라는 이중적 부담, 크레커 상황을 맞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4월 9일~13일까지 개최된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 참석차 동경을 방문한 김부상은 도착 첫날부터 미국과의 대화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김부상은 7일 나리타공항에 내리자마자, “미국의 요청이 있으면 만남을 피하지 않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왔다. 8일에는 우리측 대표에게 북미간 중재역할을 간접 요청하기도 했다. 10일 우다웨이 부부장은 김부상과 회동을 가진 후, “북한이 미국을 만날 의사가 있다”는 점을 공표했다. 나아가 김부상은 “모처럼 마련된 기회인데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과거에 볼 수 없던 저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1일 미국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이번 회의 기간에는 김부상을 만날 의사가 없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먼저 6자회담에 복귀하고 나서 만나도 만나자는 것이다.

모든 대화시도가 불발로 끝난 후, 4월 13일 김부상은 이렇게 말했다. 발언을 하는 그의 얼굴은 마치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처럼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방코델타 은행의 동결자금을 내 손에 갖다 놓으면, 그 돈을 손에 쥐는 순간 회담장(6자회담)에 나갈 것이다.”

“우리는 9.19 공동 성명에서 핵 포기 의지를 공약했는데, 그 다음 우리에게 가해진 것이 뭐냐. 마카오 동결 아닌가. 우리 인민들은 공동 합의의 결과가 결국 이것인가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정치, 경제, 군사적 압력을 가해 우리의 핵 포기를 이끌어 내려 하고 있다. 내가 이런 압력 받아가며 미국 측 단장과 마주 해야겠는가!”

여기서 “인민”은 바로 북한내 파워그룹인 군부 강경파를 지칭하는 것이다. 자신은 강경파들을 설득하여 결국 핵 포기 의지까지 밝혔는데, 미국은 오히려 금융제제를 실시해서 자신을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불만을 절박하게 토로한 것이다.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 현해탄을 건너왔던 김부상은 결국 힐과 대화 한번 못해 보고 돌아가야 했다.

북한의 4가지 선택

북측으로 돌아간 김부상은 지금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까?

첫째, 새로운 대미접근을 모색할 것이다. 미국이 끝까지 '선(先) 6자회담 복귀론'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6자회담에 복귀하면 북한과 양자대화 용의가 있다”, “6자회담장에서 핵 이외의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라는 힐의 발언에 부분적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6자회담장으로 복귀했을 경우 실제로 미국이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탐색을 할 것이다. 여기서 만일 미국이 강경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판단되면, 금융제재를 해제할 때까지 6자회담장에 복귀하지 않고 '버티기' 전략을 고수할 것이다. 김정일위원장은 지난달 말 극비리에 방북한 탕자쉬엔 국무위원에게 “금융제재 해제가 6자회담 복귀의 조건”이라고 못을 박았는데,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이미 '버티기'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중국의 중재역할에 나름의 기대를 걸게 될 것이다. 중국이 금융제재 해결에 기여를 해준다면, 북측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6자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에 더 많은 신뢰와 재량권을 부여하는 형식을 밟게 될 것이다. 북한은 위폐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중국에 중재역할을 요청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비록 취소되긴 했지만, 우다웨이 부부장이 이번 달 8일 미국을 방문하려 했던 것도 이에 관련한 중국 나름의 노력이었다.

셋째, 한국정부와의 교류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6월 방북을 계기로 북한은 미국의 대북금융제재 여론을 반전시키고자 할 것이다. 북핵 문제를 위폐문제보다 상위의 어젠더로 설정하는 계기로 이 기회를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6자회담의 걸림돌이 결국 금융제재라는 점을 부각시켜 “미국 때문에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변할 것이다. 미국을 핵문제 해결에 의지가 없는 나라로 몰고가 한국 내에서 반미감정을 촉발시키는 창(窓)을 조금씩 열어가고자 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을 억제하는 지렛대로 대남관계를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이 계속 대답하지 않을 경우 또 한번 핵능력을 증가시키는 강수를 선택할 것이다. 김계관 부상은 지난 13일 “북 핵 6자회담이 늦어져도 나쁘지 않다. 그 사이 우리는 더 많은 억제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에 위기감을 촉발시킴으로써 미국에 역(逆)압력을 넣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내부로부터 부시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여론을 고조시켜,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북한의 ‘선(先) 6자회담 복귀론’을 철회토록 압박해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핵실험이라는 “루비콘 강”을 건널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최소한 플루토늄을 또 한번 재처리해서 “핵 억제력”을 증가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미국이 대답하지 않을 경우, 그 다음 단계는 99년 이후 동결된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가 될 공산이 크다.

盧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은 '强 대 强' 대립이 몰고온 역풍

지금 김계관은 절박하다. 북한내부의 강경파들로부터 “당신은 외교하고 다니면서 만찬 회동 등을 통해 잘 먹고 다니지 않느냐” 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궁지에 몰려 있다고 전해진다. 김계관만이 아니라 미국의 무응답이 장기화될수록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비롯한 협상파들의 입지도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북한내 협상파들의 입지가 좁아지면 미국의 협상파들 입지 또한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

지금 힐의 처지 역시 궁색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4차 6자회담에서 부시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으로부터 최대의 유연성을 부여받았던 그였지만, 9.19 공동성명 다음날 북한이 선(先) 경수로 제공을 요구함으로써 “그 봐라”라는 강경파들의 논리에 압도당해있는 상태이다. 힐의 운신의 폭이 과거처럼 넓어 보이질 않는다. 힐은 지금 동북아와 북핵문제에 신경을 집중했던 과거와는 달리 미국무성에서 다른 지역의 현안문제들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계속해서 힐을 붙잡아 둘 경우, 6자회담이란 대화채널은 막히게 될 것이고, 북미간에는 지금처럼 일정한 긴장과 대결구도가 지속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내에서도 대화파의 6자회담 복귀는 어렵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6자회담 무용론'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을 지도 모른다.

북미 양국간 이해관계인 북한의 달러 위조지폐 문제와 미국의 대북금융제재 문제 때문에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북핵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형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적 여론이 조성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특히 남측에서는 미국의 대북 강경 금융제재 문제로 핵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이 시점에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미국의 대북금융제재 때문에 핵문제 해결 의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정치적 의사를 더욱 강하게 개진해 나갈 것이다. 노대통령이 몽골 방문중 밝힌 “남북정상회담론”은 바로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DJ 방북, 누구도 예상 못할 외교적 지각변동 가져올 수도

우선 미국에게도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이 북한에 강경대응책을 펼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점이다. 지금 한반도의 현실은 냉전때보다도 훨씬 복잡해졌고, 남북관계는 칡넝쿨처럼 복잡한 관계로 뻗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의 “미국의 대북관은 달라져야 한다”라는 발언은 그가 부임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현실을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암시를 던진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바로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의 발언을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워싱턴에서 대북 강경파들이 정책을 주도하면 할수록 이는 남북한 협상파들 모두에게 새로운 비상구를 찾게 만들어, 결국 미국이 쳐놓은 그물망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기반과 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다가올 6월 김대중 전대통령의 방북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김계관 부상에겐 김전대통령의 방북이 ‘구사일생의 구명보트’나 다름없는 것이다.

지금 평양과 워싱턴 모두 이니셔티브는 강경파들이 쥐고 있다. 꽉 짜여진 '강경파 대 강경파'의 대결구도에서 협상파들에게 숨통을 틔어주기 위해서는 누군가 먼저 명분을 제공해야 한다. 북한은 그 명분을 이번 김 전대통령의 방북에서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남측,미국 그리고 6자회담 참가국들에 대한 개별적 입장들에 대해 나름의 명분을 던져 내놓을지 모른다.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파격적일 수도 있다고 본다.

2000년 6월 회동후 6년만에 성사되는 김대중-김정일 회담에서 누구도 예상 못할 외교적 지각변동이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합뉴스


우선 남측에는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문을 열고, 미국에는 북미간 새로운 타협의 가능성을 밝힐 지도 모른다. 어쩌면 북미간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에 문을 열게 될 지도 모른다. 6자회담 참가국들에는 미국이 조금만 양보를 하면 복귀하겠다는 확신에 가까운 입장을 밝혀 미국으로 하여금 우선적으로 대북금융제재를 해제토록 하는 여론 조성에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의 정상회담도 관심이지만 김위원장이 부시대통령과 김위원장 자신간의 회동의지도 밝히고 나올 경우, 김 전대통령의 방북은 예상할 수 없는 외교적 지각변동을 불러 올 것이다.

김계관과 북한 온건파들은 지금 김 전대통령의 6월 방북을 궁지에 몰린 자신들의 입지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맞을 것이고, 이는 94년 카터 전미국 대통령의 방북보다 더 큰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 나갈 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전대통령의 방북이 북한내 온건협상파들에게 “구명보트”란 것이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대표

댓글이 6 개 있습니다.

  • 15 24
    황태현

    대단하시네요
    오늘 벌어진 북한의 장거리미사일발사준비가 이렇게 원인이 있었던거군요
    좀 배우고 싶습니다
    그 눈

  • 18 25
    황태현

    대단하시네요
    오늘 벌어진 북한의 장거리미사일발사준비가 이렇게 원인이 있었던거군요
    좀 배우고 싶습니다
    그 눈

  • 19 31
    빅맥

    쓸쓸한 그의 몫, 고독한 그의 길
    프레시안때부터 잘 읽고 있습니다.
    외교의 자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가 아니라 비전이고 사색이란 걸 느낍니다.
    모든 국민이 축국에 빠져 있을때 당신은 나라 걱정하고 계시군요.
    하느님의 손길이 뻗어 갈 겁니다.
    나라 위해 더 큰 공부 바라겠습니다.

  • 28 22
    하나님 뜻

    차세대 지도자
    공부하는 정치인
    철학이 있는 정치인
    원칙을 지키는 사람
    한반도 문제 전문가

  • 28 16
    그럼

    블그스레
    영변의 약산, 지금은 4월 지나 5월
    블그레한 얼굴에는 푸르름이
    예적엔 강대강 등쌀에 새우등 터지나
    이젠 구명보트로 탈출까지 하는 시대fk...
    모처럼 보는 생기발랄한 명문장입네다.

  • 23 25
    착한사람

    예리하시군요.
    장박사 글 읽으면서 배우는게 많아요.
    아무튼 DJ가 북한 방문해서 오해받을 일을 안하셔야할텐데...
    글 잘읽고 갑니다.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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