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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탈당 놀라운 결단. 상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터뷰>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이 손학규 전지사 탈당을 "놀라운 결단"이라고 격찬, 향후 손 전지사와 함께 적극 행보를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정동영 "손학규 탈당, 놀라운 결단"

정 전의장은 창간 1주년을 맞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얼마 전 황석영 선생을 만나러 갔을 때 황 선생은 (손 전지사에게) '당신이 한나라당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가 역사의 죄를 짓는 것'이라 했다"고 밝혔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손 전지사 탈당을 가장 강력히 권유했던 지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지 3월15일자 <황석영 "손학규, 당 나와라" 참조) 이처럼 손 전지사에게 탈당을 강력 권유하는 자리에 정 전의장이 함께 자리했음이 밝혀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전의장은 손 전지사와의 관계에 대해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지내온 분이다. 내 개인 후원회 때도 와서 축사를 한 (한나라당 인사로는) 유일한 분"이라며 "내가 손 지사와 정서적으로, 인간적으로 친밀감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 솔직히 말해서 놀라운 결단이었다. 탈당까지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했었다"고 손 전지사의 결단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손 전지사 탈당으로) 이제 비로소 상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5년 전 기준으로 보면 여당의 후보가 뒤집어진 상황이다. 2002년 3월 16일 광주경선에서 여권의 후보가 이인제 후보에서 노무현 후보로 뒤집혔고 그것이 3월 말경이었다. 일곱 명의 후보가 하나둘씩 탈락하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손 전지사 탈당으로 정계개편이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만날 기회가 있다면 만나서 깊이 있게 우리 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다"고 손 전지사에게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대선 불출마 선언후 킹메이커가 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대해선 "마라톤으로 말하면 한나라당은 10km쯤 앞서 있겠고 (우리도 이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은 일반인과 선수들이 섞여 있는데 일반인도 5km를 뛸 수 있고 , 10km 혹은 42.195km를 뛰기도 하는데 초기에 그만두는 이도 있겠지만 시간이 가면서 해결될 것"이라며 "10년 전에는 여권에서 9명의 선수가 거의 완주를 했고 5년 전에는 일곱 명의 선수가 가다가 완주는 나하고 노무현 대통령만이 했다"고 말해 현재로선 출마 포기를 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냈다.

정동영 "국민의 뜻은 열린당으론 안된다는 것"

정 전의장은 열린우리당에 대해선 “열린우리당의 노선은 옳았지만, 결국 국민의 뜻은 열린우리당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거듭 조기 당 해체 필요성을 주장하며 “이에 따라 국민통합을 위한 대통합 신당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모종의 결단 의지를 밝혔다.

그는 “나는 선출직 당의장을 두 번이나 지낸 사람으로 탈당이냐 아니냐의 수준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열린우리당은 기득권이다. 2.14전당대회 정신은 당의 정치적 해체를 결의하고 기득권을 버린 채 대통합신당으로 가자고 결의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으로 모이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해, 당 해체 추진이 지지부진할 경우 탈당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적 정리 후에도 거듭 정치 개입 발언 등을 통해 범여권 통합신당 추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대통령께서 지금 탈당했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의 문제는 열린우리당 구성원과 지도부가 독자적이고 주체적으로 진로를 결정해 나가야한다”며 “자기 진로는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 자기 결정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거듭 당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씨의 4.25 재보궐선거 출마 파문과 관련해선,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이라면서도 “다만 나는 원내에 있지도 않고 공천과 관련해서는 잘 알지도 못한다”고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경부운하, 열차페리 IT시대 맞지 않은 70년대식 낡은 비전”

그는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선 “핵문제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남북의 문제로 지난 1991년 비핵화 선언의 주체가 남북 고위당국자였다”며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가진 새 정부가 밀고가면 5년 안에 한반도 평화 체제의 정착과 평화군축 그리고 남북경제통합의 전진이 가능할 것”이라며 낙관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최근 대북정책 수정 움직임에 대해선 “ 한나라당은 손 전 지사가 탈당하면서 언급한 것처럼 '군정 잔당, 개발독재 잔당 정당'으로 역사의식의 부재와 빈곤, 평화철학의 부재와 빈곤, 그리고 한반도 비전에 대한 빈곤이 특징인 ‘3빈정당’”이라며 “한나라당은 ‘수구 냉전 노선’ 폐기, ‘반북대결노선’ 폐기, ‘전쟁 모험주의’ 폐기 등 ‘3폐’를 해야만 그나마 변화를 이야기할 자격이 생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선 “그들은 70년대식 낡은 성공의 기억에 갇혀 있고 이를 되풀이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섬나라가 아니라 대륙으로 이어지는 반도 국가다. 그런데 이들은 철조망을 기정사실화하고 50년을 살아온 관성 속에서 운하를 파고 기차를 배에 싣고 건너가고 이런 발상들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경부운하와 열차페리는 국토파괴와 환경훼손과 함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정보기술(IT)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비전”이라며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모두 철조망은 기정사실화 해놓고 포용정책은 폐기하고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하고 티격태격하고 있어 조만간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다음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의 CCMM빌딩에서 가진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의 인터뷰 전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2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당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고 열린우리당의 해체를 통한 대통합신당 창당을 강조했다. ⓒ 정동영 의원실 제공


“국민의 뜻은 열린우리당으로는 안 된다며 해체 요구”

뷰스앤뉴스 열린우리당이 정세균 당의장 체제로 들어선 지 한 달여가 지났다. 통합신당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 와중에 정 의장이 조만간 탈당할 것이라는 얘기도 돌고 있다. 이미 마음은 돌아섰고 결행만 남았다는 지적도 있는데 탈당계획이 있는가.

정동영 전 의장 나는 선출직 당의장을 두 번이나 지낸 사람이다. 따라서 탈당이냐 아니냐의 수준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정동영이 없었으면 열린우리당은 없었다는 스스로의 존재감은 가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을 만든 핵심 배경은 영남 출신후보를 호남출신 유권자의 95% 가 압도적으로 지지해서 정권이 탄생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흔한 사건도 아니고, 아마 전무후무한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런 역사적 사건으로 등장한 참여정부가 우리정치에 전진을 가로막는 질곡인 ‘지역주의 구도’를 혁파하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기회를 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창당에 투신한 것이다.

결과는 실패를 했다.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대의를 이루내지 못했다. 핵심은 영남 후보를 호남으로 상징되는 개혁적 유권자 절대 다수가 지지했는데, 이 절대다수와 대통령이 유리됐고 고리가 풀려버렸다.

열린우리당은 그런 구조 속에서 지역주의 극복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역주의 극복시도는 실패해 버렸다. 다만 투명한 정치, 깨끗한 정치는 열린우리당과 함께 성공했다. 정치문화는 많이 개혁해 냈고, 성공했다. 열린우리당의 노선은 옳았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은 열린우리당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다. 국민의 뜻은 열린우리당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통합을 위해서 통합신당을 세우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통합을 위한 대통합 신당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것이다.

뷰스앤뉴스 최근 각 정파의 통합신당 시안이 속속 나오고 있고 5월말이나 6월까지 신당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정 의장은 향후 대선 일정을 어떻게 보고 있고, 또 어떻게 준비 중인가.

정동영 전 의장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다. 야당 입장에서는 시간이 빨리 가길 얼마나 바라겠나. 반대로 우리는 시간을 허송해선 안 될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여유를 부리기는 상황이 비상하다고 본다.

기득권 문제를 보자. 열린우리당은 기득권이다. 거대 정당이다. 그런데 2.14전당대회 정신이 뭔가. 당의 정치적 해체를 결의한 것이고 기득권을 버린 채 통합신당으로 가자고 결의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으로 모이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그 점을 강조한 것이다.

뷰스앤뉴스 당의 행보가 지지부진하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 좀 더 국민들에 결단과 진정성이 있도록 보일 수 있는 역할을 할 계획은 ?

정동영 전 의장 당내 통합 노력은 원내 의원들과 지도부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맞다. 나는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니 내가 할 일은 서민 속으로, 현장 속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하면 등 돌린 민심을 되돌려 올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서민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찾는 것이다. 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 지어질 통합신당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는 길이다.

“새로운 중도노선 위해 손학규와 함께 해야”

뷰스앤뉴스 손학규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에 대해 여권은 대체로 환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제 범여권의 지각 변동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보나.

정동영 전 의장 그동안 답답했던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상황이 고착돼 시야에는 한나라당의 대선주자들만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상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5년 전 기준으로 보면 여당의 후보가 뒤집어진 상황이다. 2002년 3월 16일 광주경선에서 여권의 후보가 이인제 후보에서 노무현 후보로 뒤집혔고 그것이 3월 말경이었다. 일곱 명의 후보가 하나둘씩 탈락하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올해는 좀 국면이 다르다.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하나,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명확해졌다. 도로 영남 3공화국당이 됐다. 영남 지역당이자 3공에 뿌리를 둔 ‘영삼당’의 본질이 확연해 졌다.

얼마 전 황석영 선생을 만나러 갔을 때 손 지사도 만났는데 황 선생은 (손 지사를 보고) 당신이 한나라당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가 역사의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했다. 다소 거창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면 손 지사의 결단은 놀라운 얘기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뷰스앤뉴스 손 전지사가 나왔지만 손 전 지사의 과거 행보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손 지사에 대해 정 의장은 “큰 길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언제쯤 회동을 가질 계획인가.

정동영 전 의장 한국의 정당정치는 아직 전환기이고, 지금은 그 중심적 전환기다. 정당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 이른바 군사권위주의 정당, 민간권의주위 정당으로부터 진정한 정당 민주주의 정당의 길로 접어든 것은 열린우리당 창당이 효시다.

제왕적 총재의 지배와 실세 정치인들 중심의 정치를 버리고 뿌리로부터 권력이 나오는 대중 민주주의 정당으로서의 사실상 출발점은 열린우리당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좌초하고 말았다. 정치실험에서 상당부분은 성공했고 상당부분은 실패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령 영국의 노동당이나 보수당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 그런 틀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혹자는 그래서 지금도 중심적 전환기라고 말한다.

새로운 중도의 길이 필요하다. 좌우 양극단은 배제하고 가운데로 힘이 모아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로 가는 힘, 힘의 중심을 만들 수 있다. 그 점은 지금도 확신이 깊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극렬한 보수, 민주노동당은 진보고, 우리당내 있었던 개혁당 출신들도 진보다. 그러나 보수나 진보는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중도와 협력할 수 있는 분들이 다 함께하는 것, 이것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정치의 정상화와 한국정당 정치의 한 차원 높은 발전을 위해서 보수, 중도, 진보로 재편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의미 있게 본다.

"손 전 지사, 만나서 한국정치 나갈 방향 이야기하고 싶어"

뷰스앤뉴스 손 지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나라당은 손 전 지사가 본색을 드러냈다며 배신자라고 연일 비난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지내온 분이다. 제 개인 후원회 때도 와서 축사를 한(한나라당 인사로는) 유일한 분이다. 아, 옛날에는 박근혜 의원도 후원회에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가 손 지사와 정서적으로, 인간적으로 친밀감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 솔직히 말해서 놀라운 결단이었다. 탈당까지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했었다.

뷰스앤뉴스 손 지사에 대한 비판도 많이 나온다. 14년 간 한나라당에 머물면서 보수정당의 틀 안에서 했던 행보에 대한 개혁진영의 비판이 거세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서 개혁한다고 했으나, 그 안에서의 개혁이 결국 실패한 것 아닌가. 같이 만날 계획이 있는가.

정동영 전 의장 우선 손 지사에게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 차차 만날 기회가 있다면 만나서 깊이 있게 우리 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다.

정 전 의장은 한나라당에 대해 "‘역사의식’, ‘평화철학’과 ‘한반도 비전’에 대한 부재와 빈곤이 특징인 ‘3빈정당’으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표현대로 ‘군정 잔당, 개발독재 잔당 정당’"이라고 규정했다. ⓒ 심형준 기자


“내가 당의장 2년동안 했다면 실패 안했을 것”

뷰스앤뉴스 ‘서민 속으로, 현장 속으로’를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취재 현장에서 만나는 서민들의 목소리는 신랄하다. 현장 체험과정에서 서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었고 어떻게 느꼈는지, 그리고 이들에게 어떤 해법을 제기할 것인가.

정동영 전 의장 역시 몽골기병론이 옳았고 실용적 개혁주의 노선이 옳았다. 그것의 실종에 따른 실패라고 생각한다. 열린우리당을 과반수를 만들고 나서 내가 제시한 노선이 실용적 개혁주의론이었고 내가 열린우리당 초대 의장으로 총선을 지휘할 때 내건 깃발이 몽골기병론이다.

'몽골기병처럼 휘날려서 민생 속으로' 이었다. 그래서 예컨대 해방 후 한 번도 정부가 관리하지 못했고 세계화 바람 속에서 휩쓸려가던 재래시장 문제를 열린우리당이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이것을 껴안고 씨름하는 민생정치를 해내겠다고 공약했고, 법을 만들었다. 나는 그것이 모델이라고 본다. 재래시장지원법 정도 가지고는 재래시장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지만 희망의 싹을 틔운 곳들이 있었다. 전 국민적 관심을 환기했고 전국 부처 공무원들의 재래시장에 대한 시각을 환기시켰다. 효과가 있었다. 여당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이다.

'몽골기병론'과 '민생현장 속으로'라는 기치가 나는 맞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열린우리당 1백52명의 당선자들에게 제시했던 실용개혁주의 노선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민주당처럼 가자고 했던 노선으로 갔어야 옳았다.

너는 왜 하지 못했느냐고 묻는다면 불행히 당의장을 도중에 하차하고 말았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가정을 해보면 내가 당의장을 2년 동안 계속했더라면 그 노선을 관철해냈을 것이다. 실용적 개혁주의 노선과 함께 ‘현장 속으로 민생 속으로’ 끊임없이 그런 노력을 지속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현명하기 때문에 알고 있다. 거대한 산업구조의 재편, 거대한 세계화의 물결, 거대한 중국의 부상, 거대한 지식 정보화의 도래, 이런 파고 속에서 하루아침에 내 아들 딸들의 일자리 취직문제, 내 자신의 노후 문제, 우리 가정에 먹고사는 문제를 하루아침에 어떤 정치세력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고통을 자기 것으로 껴안는 정치세력 그리고 부족하지만 희망을 주기 위해서 분투하는 정치세력으로 열린우리당에 대해 기대했지만 우리는 이것을 놓친 것이다. 세계 정당 사상 유래가 없는 당헌당규 투쟁으로 3년을 지샜고, 또 권력투쟁과 기간당원 투쟁으로 지샜다. 이것이 결정타였다.

그것의 중심에 섰던 사람들은 지금 아무런 책임감이나 죄의식이 없다. 이것이 지금 당의 현주소다.

“참여정부 실패 정책은 부동산, 성공 정책은 권위주의 타파”

뷰스앤뉴스 최근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보따리장수로 비유하는 등 최근 노 대통령의 현실 정치개입 발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개헌도 곧 할 태세다. 참여정부의 공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정동영 전 의장 부동산처럼 실패한 정책도 있다. 성취한 것은 권위주의의 타파와 같은 것이다.

뷰스앤뉴스 노 대통령이 임기까지 스스로는 정치적인 발언을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고, 실제 개헌안 발의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범여권의 대선 행보 역시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지형에 갇히게 되는 것 아닌가

정동영 전 의장 노 대통령이 지금 탈당했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의 문제는 열린우리당 구성원과 지도부가 독자적이고 주체적으로 진로를 결정해 나가야한다. 자기 진로는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 자기 결정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 전 의장은 "지금은 여유 부리기에 너무나 비상한 상황”라고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범여권의 위기를 경고했다. ⓒ 정동영 의원실 제공


뷰스앤뉴스 한반도 해빙무드 속에서 한나라당이 기존 대북정책에 대한 전면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의 최근 대북정책 변경 등 행보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

정동영 전 의장 한나라당은 우선 '군정 잔당, 개발독재 잔당 정당'이다. 이것은 내가 한 얘기가 아니라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 지사의 표현이다. 군정 잔당 개발독재 잔당에게 더 이상 무슨 얘기가 필요한가? 변화를 꾀하려 했지만 도저히 해불 수 없었다는 손 전 지사의 고백에 나는 진실성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밖에서 관찰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한 식구였던 지도자가 나오면서 도저히 변할 수 없는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규정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변했는가. 나는 십 년 전 이회창씨의 한나라당과 지금 한나라당의 차이를 모르겠다. 우리와 그들의 핵심적 차이의 증거가 무엇인가를 따져보면 그들의 냉전노선, 낡은 노선과 같은 이런 것들이다. 사람은 다 DNA가 다르듯이 보수와 진보도 DNA가 다르고 거기에 기초해서 한반도를 보는 DNA가 그들은 냉전적 DNA라고 말하고 싶다.

구체적인 증거를 들자면 우리 국민도 생생하게 기억할 텐데 그들은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 대북 포용정책 전면 폐기를 주장했고 포용정책으로 퍼주기 한 결과가 핵실험이라고 맹비난했다. 포용정책이 북핵사태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불과 6개월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짧은 식견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가겠다는 것이냐.

그래서 내가 한나라당에 대해 ‘삼빈 정당’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세 가지 빈곤을 얘기하곤 한다. 역사의식의 부재와 빈곤, 평화철학의 부재와 빈곤, 그리고 한반도 비전에 대한 빈곤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분단 구조에 기생해온 분단 기생세력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자아냈으며,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끈질기고 독하게 발목을 잡았는가를 반성해야만 한다.

인혁당 살인사건이 대표적 증거다. 또 평화노선과 관련해 ‘퍼주기다’라고 했다. 이 세계사적 전환기에 백지상태에 있던 국민의 머릿속에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하고 변조해서 ‘퍼주기’라고 혹세무민한 책임에 대해서 반성해야만 한다. 지방에 가면 “퍼주기는 어떻게 된 것이냐. 퍼주기라는 말이 그럴듯했는데 요새 보니까 아닌 것 같다”고 묻는 순박한 농민들과 근로자들의 말을 듣는다. 또 한나라당은 그동안 정동영은 ‘5적’ 중 하나라고 칭하고, 정권과 민주개혁세력에 대해서 친북좌파라고 매도하고 비난한데 대해서도 분명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사과하고 국민 앞에는 사죄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삼폐'를 말하고 싶다. 먼저 ‘수구 냉전 노선’을 폐기해야 한다. 눈만 뜨면 ‘개성공단 철회하라, 금강산관광 중단해라’라고 했는데 그들의 낡은 ‘반북대결노선’을 폐기해야한다. 대북 포용정책은 퍼주기라고 비난하고 엄격한 상호주의를 요구했던 한나라당이다. 세 번째로 국지전을 감소하고라도 전쟁 모험주의 노선을 도입하자고 주창했던 한나라당이다. 당의 정강정책을 바꿔서라도 ‘전쟁 모험주의’는 폐기해야 한다.

나는 적어도 12월 국민의 심판이 내려질 때까지 이것을 놓아 주지 않을 생각이고 맨 선두에 서서 국민과 함께 이 냉전 노선의 폐기를 주창할 것이다.

그래서 일부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한나라당의 정책 전환 흐름을 환영한다고 말한데 대해서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지도부가 문제의 비중과 심각성을 제대로 못 짚었다고 본다.

“이명박 높은 지지율은 착시현상, 비전 없어”

뷰스앤뉴스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는 여권에서 개발시대, 독재시대 인물들이라는 혹평을 내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 두 후보에 대한 평을 해 달라.

정동영 전 의장 착시현상에 따른 반사이익이라고 본다. 그분들이 가진 것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여권이 싫은데 대한 반사이익이고 따라서 거품이 될 것이다.

오늘 모 의원의 상갓집에 문상을 갔는데 인천대 토목공학과 교수를 만났다. 운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운하는 자동차가 없었던 고대 문명에서 근세문명으로 오는 사이 그 시대의 싸고 편리했던 운송수단이었지만, 유럽은 이제 옛날에 파놓았던 운하를 관광 자원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정확한 규정이라고 본다. 그가 “요즘 와서 새로 운하를 파는 나라가 있느냐‘라고 나에게 되묻더라. 현대물류의 체계는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얘기를 떠나서도 왜 이런 발상이 가능한가를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70년대식 낡은 성공의 기억에 갇혀 있고 이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협소한 시각에서 9만9천 평방킬로미터의 한반도 남쪽에 갇혀 있는 도서국가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섬나라가 아니라 대륙으로 이어지는 반도 국가인데 철조망을 기정사실화하고 50년을 살아온 관성 속에서 운하를 파고 기차를 배에 싣고 건너가고 이런 발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말로 정보기술(IT)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비전이고 국토파괴와 환경훼손은 다음 문제로 치더라도 이 비전에 배경을 살펴보면 미래형이 아니고 낡은 것이다. 미래형은 뭐냐고 묻는다면 대한민국의 철조망을 걷어 낼 수 있는 결정적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

핵 문제가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을 때는 평화체제에 바탕한 한반도 미래비전이 추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현실로 바뀌고 있고 우리가 팔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팔걸이 안에 평화체제와 비전이 와있다. 6월 이전에 개성으로 기차가 움직일 것이다. 2단계로 평양까지 갈 수 있을 것이고 TSR(시베리아철도)로 갈 것이다. 이를 통해 무슨 혜택, 무슨 효과가 오는지를 따져보자. 중고교 청소년들에게 대학생들에게 겨울방학과 여름 방학에 국비보조를 통해서 시베리아를 보고 유럽 대륙을 보고 오도록 하는 것이다. 청소년시절에 대륙을 보고 온 아이들과 아닌 아이들 사이에는 비전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통을 키우고 또 일자리가 나오게 될 것이고 부산에서 목포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개성을 거쳐 신의주를 거쳐 만주로 시베리아로 그 비전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잡아야하고 여기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평화성장론이다. 평화도 곧 돈이라는 것이고 미래형 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철조망은 기정사실화 해놓고 포용정책은 폐기하고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하고 티격태격 하면서 그 속에서 운하를 파게 되면 지금 20조원라고하는데 실제로 파보면 1백조 원 이상이 될지 모른다. 20km짜리 경인운하가 1조 5천억 원이 든다고 하는데 청평, 팔당, 청주, 안동댐을 지나려면 천문학적인 돈 20조원이 아니라 수백조 원이 든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명박 전 시장은 공사를 안 해본 사람이라 모른다고 할지 모르지만 운하를 파게되면 수십만 명의 노동력이 필요한데 수십만 명의 외국 근로자를 수입해와야 하는 상황도 불가피하다. 요즘 누가 질통을 매고 운하를 파려고 돌아다니겠느냐. 이것은 낡은 비전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나이는 나와 같은 세대로 젊은데 그도 70년대 사고에 묻혀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대북정책이고 개발철학이다. 두 가지 70년대 형 낡은 철학은 조만간 수도권 넥타이 부대를 중심으로 그 거품이 꺼질 것으로 본다.

정 전 의장은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해 "“솔직히 말해서 놀라운 결단이었고 앞으로 만나 우리 정치가 나갈 방향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 정동영 의원실 제공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위해 차기 정권 역할 중요”

뷰스앤뉴스 정 전 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과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회담해본 한반도 내의 많지않은 대북 회담 경험을 가진 정치인이다. 직접 회담을 해본 입장에서 향후 대북 문제를 전망한다면 ?

정동영 전 의장 이것은 필연이다. 우리가 좀 더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했더라면 비극적인 한반도의 역사를 마감하는 일을 좀 더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인데 우리는 세계 현대사의 지각생이 되고 말았다. 늦었다. 구소련 체제가 붕괴하던 1991년의 세계 역사와 91년 이후의 세계 역사의 전개가 엄청나게 다르다. 우리는 세계 역사의 전개 과정과는 동떨어진 행로를 지금껏 걸어왔다. 우리는 1991년의 변화에 합류하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나마 늦었지만 97년 대선을 통해 1998년 들어 민주개혁 정부가 들어섰고, 지난 10년 동안 대북 포용정책을 통해 국내 발목잡기와 남남분열 속에서 어렵게 국론을 모으는 노력이 있었다. 이제 새로운 전환이 우리에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생존에 대한 본능이라는 것이 있는데 생존하고 살아남고 싶은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1991년 세계질서가 바뀐 속에서 북한의 생존의 대답은 핵으로는 생존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고 개혁 개방 대안이라는 것이다.

작년 1월 달에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심천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당시 보름동안 김정일 위원장을 수행했던 중국 측 관계자들을 나중에 만났다.

그들이 김 위원장을 만난 뒤 말한 핵심 포인트가 뭐였겠느냐. 김 위원장을 직접 수행했으니까 뭘 물었는지 뭘 관찰했는지를 잘 알 것 아니겠는가. 그들은 사회주의체제와 시장경제를 어떻게 하면 접목할 수 있느냐가 김 위원장이 던진 질문의 핵심 포인트였다고 했다. 그리고 홍콩 건너편 심천의 관망대에 섰을 때 홍콩을 내려다보면서 김 위원장이 많은 것을 물었다고 했다. 그 때 광동성 서기로 수행했던 최고 책임자가 말하기를 “개혁개방 이전에 이쪽에서 무수히 저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넘어갔는데 개혁개방이 이뤄진 이후 무수히 많은 사람과 자본이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김 위원장은 묵묵히 이 말을 듣고만 있었다고 했다.

나는 거기에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돌아가서 한 달 뒤 매제인 장성택을 단장으로 수명의 군 장성이 포함된 33인의 고위 고찰단을 보냈다. 자기가 다녀간 코스를 똑같이 답사했고 전원이 수첩을 꺼내들고 학습 투어를 한 것이다. 내가 한나라당에 대해 역사의식의 부재, 한반도 비전의 부재와 빈곤을 자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나는 역사학도로서 공교롭게 휴전협정이 체결된 날 태어났고 이후 초중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다녔고 기자가 됐고 지금까지 휴전 협정 체제 하에 살고 있다. 세계 동서고금의 전쟁사에 사격중지를 의미하는 정전협정이 54년간 지속되는 나라가 있겠느냐. 이것을 또 50년 가라는 말이냐 이것은 역사의식의 부재를 묻는 것이고, 결국 우리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개척하는 것 아니겠는가.

평화의 제도화를 통해 북의 핵을 내려놓고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미국 대사관이 평양에 들어가고 일본이 핵을 내려놓고 남북은 군축과 경제 통합을 하는 것, 이것이 역사이고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런 시대가 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다소 질척거릴 것이고 일사천리로는 못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의 철학과 비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가진 새 정부가 밀고가면 5년 안에 한반도 평화 체제의 정착과 평화군축 그리고 남북경제통합의 전진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형 통일모델 위해 개성공단 많이 만들어야"

뷰스앤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근 발언을 통해 향후 10년을 전후해서 완전한 남북 간 통합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는데 ?

정동영 전 의장 거기에는 앞서 말했지만 전제가 있다. 예를 들어 냉전노선의 DNA를 가진 정권이 들어서면 5년은 시간낭비의 5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뿌리 깊은 상호적대와 불신 속에서 역사의 전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식은 붕괴였고 월남식은 무력통일이었지만 한국은 한국형 모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형 모델로 가기 위해서는 개성공단 같은 것을 다섯 개, 열개 만들어서 물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금 개성공단은 1단계로 1백만 평인데 부지가 8백만 평이다. 2단계는 2백만 평이고 이북이 이를 서두르자고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아직 우리의 수용 문제가 남아있는 시점이다.

뷰스앤뉴스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한나라당은 정략 가능성을 제기하며 불가하다고 하다가 최근 입장을 바꾸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

정동영 전 의장 남북정상회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왜냐하면 핵문제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남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1년 비핵화 선언의 주체가 연형묵, 정원식 남북고위당국자였다. 그러나 깨졌지 않는가.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보유, 배비, 저장, 사용 등 일곱 가지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는데 결국 깨졌고 이것을 결국 누가 복원해야 하는가 말이다.

두 번째로 휴전 협정 당사자는 팽덕회, 클라크 장군, 김일성이었지만 평화협정의 사실상 주체는 남북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옳은 일이다.

“지금 선수 여럿이지만 시간 지나면 일반인과 선수 갈려”

뷰스앤뉴스 정운찬 전 총장을 포함한 제 3후보론이 나오고 있다. 정 전 총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경선에 참여할 것인가. 또 일부에서는 누가 킹메이커 역할을 하느냐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킹 메이커 역할을 할 생각은 있는지.

정동영 전 의장 이제 움직임이 시작됐다. 마라톤으로 말하면 한나라당은 10km쯤 앞서 있겠고 (우리도 이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은 일반인과 선수들이 섞여 있는데 일반인도 5km를 뛸 수 있고 , 10km 혹은 42.195km를 뛰기도 하는데 초기에 그만두는 이도 있겠지만 시간이 가면서 해결될 것이다. 10년 전에는 여권에서 9명의 선수가 거의 완주를 했고 5년 전에는 일곱 명의 선수가 가다가 완주는 나하고 노무현 대통령만이 했다.

이번에도 선수가 여럿이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러니 야당보다 더 선수진이 풍성하면 좋겠고 경로는 결국은 대통합 신당이라는 장에서 다함께 하는 것이 가장 인상적일 것이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김홍업 출마문제,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 문제”

뷰스앤뉴스 권노갑 고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화해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권 고문이 정 전 의장을 칭찬 했다는 말도 들렸다. 과거문제에 대해 권 고문과 화해를 했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씨가 민주당의 공천을 받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이 지나친 과욕을 부린다는 지적도 있다. 어떻게 보는가 ?

정동영 전 의장 권 고문과는 어제 오늘 인연이 아니고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된 관계다. 2000년 12월 쇄신 요구 이후 계속해서 인간적으로 미안함을 전해왔고, 그가 그 후에 어려움도 격지 않았나. 어려운 일들만 당했고 상처와 좌절의 기간이었기 때문에 늘 위로했고 그렇게 함께 해왔다. 나는 그렇게 독한 사람은 못된다. 내가 누구랑 척지고 산 사람이 많지 않다.

또 김홍업씨 문제는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판단해서 할 일이겠고, 열린우리당은 열린우리당대로 대통합해서 함께해야할 중요한 부분이 민주당이다. 그런데 지금 원내에 있지도 않고 공천과 관련해서는 잘 알지도 못한다.

뷰스앤뉴스 김 전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정책이 아들 출마로 흠집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

정동영 전 의장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이지 않겠나.

뷰스앤뉴스 정 전 의장은 큰 상처이자 약점으로 과거 노인폄하발언이 지적된다. 최근 국회 인근을 지나다 보니 보수단체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 아직도 시위를 하고 있더라. 정말 오래가는 구나 생각했는데 어떤가 ?

정동영 전 의장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대학생들에 대한 투표참여 중요성을 얘기한 발언이었고 그것이 전부였다.

“내도 평화시장에서 옷장사하며 먹고 살았다”

뷰스앤뉴스 정 의장에 대한 평가를 듣다 보면 ‘아직도 앵커인 것 같다’, 혹은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고생을 안해본 사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정동영 전 의장 인터뷰에 가시가 없으면 맛이 없을 것이다. 내가 억울한 것 중 하나가 고생을 한 번도 안한 사람 같다는 얘기다. 나는 대학도 재수를 했다. 청소년 시절에 대학 낙방을 해 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의 좌절과 그 경험은 모르는 일이다. 내가 평화시장에서 옷장사하면서 먹고 살았다는 것도 아는 사람은 거의 몇 없다. 나는 평화 이야기하면 ‘피스(peace)’의 평화가 아니라 동대문 평화시장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대학 들어갔을 때 유신독재가 터졌다. 72년10월부터 73년 10월까지는 동토였다. 대한민국 4천8백만인 구는 기침소리 한번 내지 못했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한국판 나치와 파시스트 체제였다. 인간의 기본권을 말살했다. 1년 동안 기침소리 한번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73년 10월 2일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유신독재 타도의 함성이 울렸다. 그 대열에 제가 서있었다 끌려갔고 경찰이 학교에 난입해서 집시법 위반 구류 한달 나오니까 무기정학. 겨울방학 지나고 나니까 긴급조치위반으로 구속되고 서대문 구치소로 갔고 강제 입영됐다. 그 뒤 군대에서는 보안사로 끌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간첩죄 누명을 쓰고 그 때 죽다 살아나는 줄 알았다. 내가 당의장 되고 그 다음날 인혁당 묘소에 참배했다. 나의 청년시절의 아픔과 그분들의 무고함은 확신을 한다. 그것은 정권살인이었고 독재정권의 살인범죄였다.

나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MBC에서는 이름을 날리는 사회부 기자였다. 현장의 살인사건에서 화재사건 현장으로 붕괴사건 현장으로 다녔다. 재난과 재해 현장에서는 우리사회 빈곤층이 다 피해자가 아닌가? 그들의 어려운 사연들이 오늘날 내 힘의 원천이다. 특히 기자가 대개 억울한 사람들의 편 아닌가. 대학생 시절에 저항했던 청년 정신과 기자시절의 새기고 살았던 공익에 대한 생각들, 그런 것이 다 내 정치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내가 정치 12년간의 역정에 2000년에 쇄신정풍, 2001년에 국민경선을 주창했고 맨 선두에 서 있었다. 1차 쇄신과 2차쇄신에 정동영이가 있었다. 그때 당시는 내가 최고위원직을 던졌다. 그리고 국민경선으로 이어졌다. 2002년 국민경선지킴이였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03년 신당 창당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04년 당의장으로 과반수 만드는데 어쨌든 맨 선두에 정동영이 있었다. 2005년 남북관계 핵심에 있었고 6월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끌어냈다. 9.19공동성명 합의다. 내게 정치하면서 가장 보람된 사건은 9.19공동성명의 제 4항이다. 4항은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만드는 내용이다. 내가 그것을 지휘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장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는 주변에서 잘 알 것이다. 비록 언론은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뒷날 한반도 평화의 소장정에서 9.19 공동선언 문건이 평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2006년 나는 어려움에 빠진 당을 회피할 수 없었고 나를 던졌다. 되돌아보면 어느 한해 결단하고 살지 않은 해가 없었다. 고생하지 않고 살았다는 말은 그래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 시절 홀어머니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대학 보낸 아들이 맨 날 잡혀가고 두들겨 맞고 해서 보따리 싸서 서울에 왔다. 한양대 산비탈에서 재봉틀로 아동복을 만들어 평화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아들은 피곤하다고 깨우지 않고 동생들은 어리니까 혼자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버스 타러 나갔다가 피멍이 든 일이 있었다. 여자 버스 차장이 새벽에 여자가 먼저 탄다고 재수 없다고 밀쳐서 피멍이 들고 장사를 못한 것이다. 자다가 깨서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죄의식을 느꼈는지 모른다. 사지 멀쩡한 아들놈은 자고 어머니는 고생했다. 많이도 울었다. 이튿날부터 새벽에 옷보따리 매고 다녔다. 액세서리와 원단을 사서 마분지로 옷을 그리고, 마분지로 그려서 재봉을 하고 오버로크도 하고 그렇게 옷장사를 몇 년을 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현역 정치인 중에서는 시장에서 장사 안 되는 시장상인들의 속 타는 심정에 대해 나처럼 리얼하게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비록 눈보라가 몰아쳐 멈춘 적은 있을지 몰라도 등을 돌리고 살지는 않았다. 오늘 이 상황에 대해서도 회피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상황 자체에 많은 책임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구경꾼이 아니다. 국민 여러분께 정동영이 서민과 중산층의 편에 서서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봐달라고 말하고 싶다.
김홍국.심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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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11 11
    국회사무처

    정동영은 국회의원이 아님
    정동영의원실에서 사진자료를 받았다고 나오는데
    정동영씨는 국회의원 신분이 아님을 밝힙니다.
    대오보를 사과하는 기사가 떠서 와봤는데
    뭐랄까...
    과중한 업무속의 작은 실수일수도 있겠지만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Views & News의 분발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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