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파산 초읽기, '부동산거품의 저주'
은행-지자체 연쇄도산에 '구제금융' 신청 임박설 확산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이날 방키아 은행에의 공적자금 투입을 발표하며 "스페인이 극도로 힘겨운 상황"이라며 "은행권 부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적자금 투입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구제금융 신청 임박설에 대해선 "은행권 위기로 EU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스페인 총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스페인 정부는 이번 구제금융에 앞서 방키아에 45억유로를 투입해 지분을 45% 인수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방키아를 국영화했다. 스페인 정부는 이로써 방키아는 건실은행이 됐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숨겨진 부실'이 천문학적이었다. 방키아 자회사인 BFA는 지난해 33억유로의 적자를 보았다고 28일 발표했다. 그러나 당초 발표는 4천100만유로 흑자였다. 분식회계를 통해 대규모 적자를 철저히 은폐해온 셈. 결국 BFA 모회사인 방키아는 지난 25일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며 스페인 정부에 190억유로의 공적자금 투입을 요청했고 결국 190억유로가 투입되기에 이른 것이다.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방키아는 시장에서 거의 파산 상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방키아 주가는 이날 장중 한때 29% 이상 폭락했다가 오후 들어 낙폭이 줄어 13% 하락하는 것으로 거래를 마쳤으나 이날 종가는 사상최저치다.
또한 방키아 외의 다른 은행에도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방코 포퓰라르를 비롯한 다른 은행들 주가도 급락했다.
스페인 은행들의 부실이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나는 것은 '부동산거품' 때문이다. 같은 재정위기를 겪는 나라지만 이탈리아는 부동산거품이 없는 반면, 스페인은 부동산거품 투성이다. 이 부동산거품이 폭발적으로 터지면서 스페인 은행들의 부실은 시시각각 급증하고 있고, 그 결과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밑빠진 독처럼 백약이 무효인 상태다. 여기에다가 부동산거품 파열로 주수입원인 취등록세 수입이 격감하면서 파산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속출하고 있다.
노무라 증권은 스페인 은행들에 시급한 공적자금 투입 규모를 500억~600억유로로 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자금이 고갈된 스페인 정부가 결국은 IMF와 EU 등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급확산되고 있다.
이날 10년만기 스페인 국채금리는 하루 만에 18bp(0.18% 포인트)나 급등해 6.47%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2011년 기록했던 6.7% 돌파도 시간문제로 전망하고 있다. 국채금리가 7% 대에 도달해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하면 아일랜드와 그리스처럼 구제금융 신청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스페인국채의 리스크프리미엄도 유로화 도입후 사상최고치로 폭등했다. 이날 유럽시장에서 스페인 국채와 독일연방국채 사이의 이자율 격차는 유로화 도입후 최고수준인 513bp(100bp=1%)까지 폭등했다가 511bp로 거래를 마감했다.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진 데 이어, 유럽경제규모 4위국인 스페인까지 디폴트의 늪으로 빠르게 빠져들면서 세계경제는 또 한차례 부동산거품의 재앙 앞에 전율하고 있는 양상이다. 스페인보다 부동산거품과 가계부채가 더 심각한 상태라는 OECD의 경고를 받은 우리나라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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