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대 "우리는 이래서 노무현을 버렸다"
<현장> "한나라가 대안? 착각도 유분수. 한나라는 '강남당'"
지난 2002년 12월 19일,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이다. 이길융(가명. 남 33세)씨는 이날 새벽 산책후 집 앞에 뿌려져 있는 <조선일보> 호외를 보았다. 그날 사설 제목은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 투표 7시간 직전 인 18일 밤, 정몽준씨가 돌연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한 것. <조선일보> 사설 말미는 이랬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 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이 씨는 사설에 격노했다. "그래, 우리 유권자가 최종선택을 해주마." 이 씨는 부랴부랴 학교 동아리 선.후배에게 전화를 걸고 연락이 닿는 모든 친인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노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그렇다고 그는 노사모는 아니었다. 대학 재학시절 총학을 기웃거렸던 그의 눈에 노무현 후보는 진보적 정치인이 못됐다. '중도 성향의 정치인'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가 기를 쓰고 노 후보 당선을 바랐던 것은 노 후보가 최소한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후 그가 기자에게 말한 ‘대통령 노무현’은 참담했다.
"아이도 내 맘대로 못 낳는데 무슨 개혁?"
그는 지난 2004년 결혼했다. 아직도 전세 6천만원짜리 서울 성북동 방 2칸짜리 다가구에서 살고있다. 이 씨 부부는 맞벌이로 바득바득 돈을 모아보려 했지만 달마다 1백만원씩 갚아나가야 하는 은행 대출금에, 생명보험, 화재보험 등 부부 명의로 붓는 보험금만 월 60만원이 넘는다. 여기다 월 1백20만원짜리 적금 넣고 생활비 쓰고 나면 도저히 여윳돈이 없다.
이 씨는 “이렇게 우리 부부가 3년동안 모은 돈이 빚 갚은 거 다 제하고 나면 4천만원 가량 되는데 4천만원 가지고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 요즘 강남은 고사하고 강북도 아파트 한 채 사려면 평당 3천만원 가까이 한다던데...”라고 탄식했다. 4살 연하의 이 씨 아내는 얼마전 임신을 했지만 부부는 태어 날 아기를 어떻게 기를 지 막막하기만 하다. 조그마한 무역회사 경리일을 보는 아내의 직장은 당연히 육아휴가는 물론, 출산 후 탁아시설 같은 것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는 “법으로는 출산휴가든, 육아휴가든 다 보장된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라며 “무슨 돈으로 애를 키우겠나? 맞벌이를 해도 시워찮은 판국에...생각같아선 낙태라도 하고 싶지만...”이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잘 봐라. 집에서 물러준 거 하나없는, 지금 우리 같은 30대 초.중반 부부들의 현실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개혁, 참 가슴설레는 말이다. 그 너덜너덜한 개혁 소리 하나 믿고, 젊은 혈기에 노무현을 찍었지만 이런 현실 한가운데로 내몰리다니... 당장 오늘이 힘들고, 당장 돈이 없어 아이도 내 맘대로 못 낳는데 무슨 놈의 개혁인가? 대출금리나 좀 낮춰질 수 있게 경제를 살리고, 돈없는 맞벌이 부부들도 맘 편하게 애 낳고 세금, 물가 걱정 안하고 살게 해달라. 그게 개혁이다”라고 질타했다.
2~30대, "우리는 노무현을 버렸다. 시간이 너무 안가”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김인철(가명. 남 38세)씨도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 김 씨는 그러나 여느 2~30대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지지를 철회했다. 김 씨는 “아직도 열린우리당이나 청와대가 또 다른 신당 하나 들고 나와서 전국을 돌며 ‘경선 쇼’를 하면 옛날처럼 2~30대가 주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며 “지지율 10% 대로 곤두박질 치고서도 아직도 2~30대가 느끼고 있는 ‘배신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냉소했다.
서울 마포구의 유승희(가명. 여 32세)씨는 “2002년 대선과 2004년 탄핵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꽤 영리해졌다. 예전에는 노무현의 눈물 광고만 봐도, 유시민의 사지가 붙들려 끌려나가는 것(2004년 3월, 탄핵 표결 당시)만 봐도 ‘이건 아닌데...’ 하는 가슴 한 편에서 솟아오르는 이글거림 같은 게 느껴졌는데..."라며 "그러나 이제 노무현 정부를 충분히 겪고나니 ‘이미지 정치’나 감성에 호소하는 것에는 더 이상 안 속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출판업을 하고 있는 동대문구 박성호(가명. 남 34세)씨도 “사람들이 많이 영리해졌다. 이제 간판 바꿔달고 석고대죄하는 척해도 그게 통하겠나”라고 반문하며 “현재 2~30대의 대부분이 노무현을 버렸다는 사실은 내년 선거에서 가장 큰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라고 '2~30대의 심판'을 예고했다. 그는 “어차피 40대 이상은 자기만의 관념이 있다. 원래 노무현을 싫어하고 부정한 사람들은 노무현이 아무리 국정을 잘 운영했어도 차기 대선에서 한나라당 찍을 사람들이다. 따라서 여당이 내년 대선에서 원래 돌아서 있던 40대에게 지지표 받을 생각은 안해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처럼 2~30대가 등을 돌렸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비상”이라고 덧붙였다.
H그룹 3년차 정준호(가명. 남 29세)씨는 “20대가 가지고 있는 노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 ‘무관심 대 혹평’ 두 부류로 정리할 수 있다.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다"라며 "국민들이 뽑았으니까 임기만큼은 보장해 주어야 하는 데 시간이 참 안 간다. 하긴 노무현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해서 차기 정권이 잘 할지도 모르겠다”고 극심한 정치불신감을 드러냈다.
Y대 대학원생 이혜정(가명. 여 26세)씨는 “노 대통령이 말한 개혁, 그 구호뿐인 개혁은 막상 실생활에 있어서는 도움이 안됐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를 충분히 무리없이 챙기면서 개혁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경제에 대해서 너무 무능했거나 아니면 관심이 없었다. 경제는 포기하고 '개혁노벨상'이라고 받으려는 사람같다”며 힐난했다.
“부동산, 결국 30대 발목 잡고 노무현의 발목도 잡았다”
이들 2~30대가 한결같이 말하는 노무현 실정의 공동분모는 '집값잡기 실패'였다.
광고업에 종사하고 있는 신우성(가명 남. 36세)씨는 “코드인사, 좌파정권, 아마츄어리즘 등등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에서 별의 별 이름을 다 갖다붙여도, 정말 우리같은 30대가 왜 노무현을 이제 지지하지 않는가 하는 그 해답을 조중동이나 한나라당 또한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원인은 간단하다. 애 낳고 아내랑 오순도순 좀 살고 싶은데 집이 없다. 돈 모으려고 노력해도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또 뛴다. 집 없으니까 종잣돈도 안 모이고 계속 생활비만 빠듯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줄기차게 주장했던 게 ‘집값 안정’, ‘부동산 잡겠다’는 말이다. 난 그거 하나 믿고 찍었다”고 노 대통령의 배신을 성토했다.
이상길(가명. 남 38세)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치의식이 높다는 30대가 ‘노무현을 버렸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여권에는 뼈아픈 기억으로 기록될 것"라며 "결혼해 집을 장만하고 인생을 설계해 나갈 그들이 부동산 때문에 인생 전체에 발목을 잡혔다. 결국 그 부동산 발목은 30대만 잡는 것이 아니라 결국 범노무현 세력의 발목도 잡을 것”이라고 냉소했다.
“노 대통령은 지지자들까지 가르치려 들었다"
2~30대는 보수신문과 끊임없이 실랑이를 하고 있는 노대통령도 한심스러워했다.
문성원(가명. 34 남)씨는 이같은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조중동과의 대치를 보면 답답함을 넘어 유치하기까지 하다.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놨다 한다'는 조중동도 그래봤자 결국 언론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러나 노무현은 누구인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자 집권자이다. 그 집권자와 집권자를 떠 받치고 있다는 청와대, 여권이 지금 조중동과 기를 쓰고 ‘내가 옳니 네가 그르니’ 그렇게 싸우고 있으니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가 무슨 총학 본부인가? 안티조선을 해야되니 말아야되니, 그딴 걸로 세월을 보낼 정도로 아직도 어리다는 소리인가? 나는 그런 청와대를 볼 때마다 노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해 준 국민들을 못 믿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집권세력이 꿎꿎하고 바르게 밀고 국정을 이끌었더라면 국민들은 조중동이 장난치고 있다는 것 쯤은 충분히 간파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씨는 ‘노무현식 개혁’을 놓고서도 “뭐가 그렇게 다급한지 무조건 빠른 시일 내에 끝장을 봐야 속이 풀린다는 식이다. 그래서 자신의 지지자들도 믿지 못하고 항상 강연식이다. 토론을 하자면서도 결국은 자기 방식대로만 고집한다”며 “그런 노무현 대통령 모습을 볼 때 대중을 가르치려고 드는 것 같다. 심지어 자기를 믿고 지지해 준 지지자들까지 가르치려 든다. 못믿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아직도 '무조건 노무현'을 외치는 골수노빠들도 한심스러워 했다. 그는 “그럼에도 아직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나와 견해가 철저하게 갈린다. 내가 노무현을 이제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면 대뜸 ‘이유가 뭐냐’, ‘경제 나빠진 게 노무현 책임이냐’, ‘발목잡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생각해보지 않았냐’고 기를 쓰고 묻는다. 그래서 내가 ‘특정해서 이유를 상세히 밝히지는 못하겠다’고 하면 ‘거 봐라 사람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며 오히려 내게 훈계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나는 그들 노빠들의 이런 식의 훈계에 이골이 났다. 지금 당장 힘들고 지금 당장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토론해보자’, ‘논리적으로 네 말은 틀렸다’, ‘그래서 이래야 한다’ 등 그런식의 논증어법을 들이대는 게 과연 이 고통스런 시대에 정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의 태도일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민들이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오늘이 힘드니까 사람들은 노무현을 욕하는 거다. 그 사람들에게는 노무현을 왜 싫어하는지, 왜 이제 지지를 철회했는지 명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건 정치꾼들에게나 필요한 어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대안? 착각도 유분수. 한나라당은 '강남당'”
그렇다면 2~30대는 참여정부 대안으로 한나라당을 생각하고 있을까?
김인영(가명. 여 34세)씨는 최근 부동산 폭등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주장하고 있는 강남 재건축규제 전면해제, 강남 대체형 신도시 공급, 종합부동산세 인하 등을 두고 “한나라당이 강남을 대체할 신도시 아파트를 충분히 공급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는데, 아무리 집을 많이 만들면 뭐하나? 결국 돈 있는 부자들만 신나는 정책이다. 아파트 공급이 늘어나든 말든 그것이 돈 없는 서민들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세금 폭탄 운운하는데 지금 국민들이 양극화로 인해 강남에 대한 적개심을 띠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말장난을 하고 있냐”며 “그러니까 부자비호당, 강남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 아니냐”고 힐난했다.
은행원인 정영종(가명. 남 29세)씨는 “지금 이명박-박근혜 등의 지지도가 압도적인 것은 여당의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만 얘기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의 지지도가 높아 보이는 거 아닌가”라며 “여당에서 새로운 제3의 대안을 들고 나오면 얘기는 달라질 공산이 크다. 아직 시간은 1년도 더 남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여당'에 2~30대가 일말의 희망이라도 갖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서울 상계동에서 만난 한 30대 세일즈맨은 “여당이 단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반개혁, 뭐 이런 걸로 한번 더 재미를 보고 싶은가 본데, 한나라당 아닌 박정희가 다시 집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개혁의 시대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개혁은 차기 대통령이 가져야 할 전제조건 아닌가”라고 못박았다. 그는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면 개혁을 잘 할 수 있느냐, 잘 못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나와야 현재의 고통받는 서민들을 그나마 웃게 만들어 줄 것인가”라며 “내년 대선은 ‘경제 유능 세력 대 경제 무능’ 세력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 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이 씨는 사설에 격노했다. "그래, 우리 유권자가 최종선택을 해주마." 이 씨는 부랴부랴 학교 동아리 선.후배에게 전화를 걸고 연락이 닿는 모든 친인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노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그렇다고 그는 노사모는 아니었다. 대학 재학시절 총학을 기웃거렸던 그의 눈에 노무현 후보는 진보적 정치인이 못됐다. '중도 성향의 정치인'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가 기를 쓰고 노 후보 당선을 바랐던 것은 노 후보가 최소한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후 그가 기자에게 말한 ‘대통령 노무현’은 참담했다.
"아이도 내 맘대로 못 낳는데 무슨 개혁?"
그는 지난 2004년 결혼했다. 아직도 전세 6천만원짜리 서울 성북동 방 2칸짜리 다가구에서 살고있다. 이 씨 부부는 맞벌이로 바득바득 돈을 모아보려 했지만 달마다 1백만원씩 갚아나가야 하는 은행 대출금에, 생명보험, 화재보험 등 부부 명의로 붓는 보험금만 월 60만원이 넘는다. 여기다 월 1백20만원짜리 적금 넣고 생활비 쓰고 나면 도저히 여윳돈이 없다.
이 씨는 “이렇게 우리 부부가 3년동안 모은 돈이 빚 갚은 거 다 제하고 나면 4천만원 가량 되는데 4천만원 가지고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 요즘 강남은 고사하고 강북도 아파트 한 채 사려면 평당 3천만원 가까이 한다던데...”라고 탄식했다. 4살 연하의 이 씨 아내는 얼마전 임신을 했지만 부부는 태어 날 아기를 어떻게 기를 지 막막하기만 하다. 조그마한 무역회사 경리일을 보는 아내의 직장은 당연히 육아휴가는 물론, 출산 후 탁아시설 같은 것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는 “법으로는 출산휴가든, 육아휴가든 다 보장된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라며 “무슨 돈으로 애를 키우겠나? 맞벌이를 해도 시워찮은 판국에...생각같아선 낙태라도 하고 싶지만...”이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잘 봐라. 집에서 물러준 거 하나없는, 지금 우리 같은 30대 초.중반 부부들의 현실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개혁, 참 가슴설레는 말이다. 그 너덜너덜한 개혁 소리 하나 믿고, 젊은 혈기에 노무현을 찍었지만 이런 현실 한가운데로 내몰리다니... 당장 오늘이 힘들고, 당장 돈이 없어 아이도 내 맘대로 못 낳는데 무슨 놈의 개혁인가? 대출금리나 좀 낮춰질 수 있게 경제를 살리고, 돈없는 맞벌이 부부들도 맘 편하게 애 낳고 세금, 물가 걱정 안하고 살게 해달라. 그게 개혁이다”라고 질타했다.
2~30대, "우리는 노무현을 버렸다. 시간이 너무 안가”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김인철(가명. 남 38세)씨도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 김 씨는 그러나 여느 2~30대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지지를 철회했다. 김 씨는 “아직도 열린우리당이나 청와대가 또 다른 신당 하나 들고 나와서 전국을 돌며 ‘경선 쇼’를 하면 옛날처럼 2~30대가 주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며 “지지율 10% 대로 곤두박질 치고서도 아직도 2~30대가 느끼고 있는 ‘배신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냉소했다.
서울 마포구의 유승희(가명. 여 32세)씨는 “2002년 대선과 2004년 탄핵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꽤 영리해졌다. 예전에는 노무현의 눈물 광고만 봐도, 유시민의 사지가 붙들려 끌려나가는 것(2004년 3월, 탄핵 표결 당시)만 봐도 ‘이건 아닌데...’ 하는 가슴 한 편에서 솟아오르는 이글거림 같은 게 느껴졌는데..."라며 "그러나 이제 노무현 정부를 충분히 겪고나니 ‘이미지 정치’나 감성에 호소하는 것에는 더 이상 안 속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출판업을 하고 있는 동대문구 박성호(가명. 남 34세)씨도 “사람들이 많이 영리해졌다. 이제 간판 바꿔달고 석고대죄하는 척해도 그게 통하겠나”라고 반문하며 “현재 2~30대의 대부분이 노무현을 버렸다는 사실은 내년 선거에서 가장 큰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라고 '2~30대의 심판'을 예고했다. 그는 “어차피 40대 이상은 자기만의 관념이 있다. 원래 노무현을 싫어하고 부정한 사람들은 노무현이 아무리 국정을 잘 운영했어도 차기 대선에서 한나라당 찍을 사람들이다. 따라서 여당이 내년 대선에서 원래 돌아서 있던 40대에게 지지표 받을 생각은 안해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처럼 2~30대가 등을 돌렸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비상”이라고 덧붙였다.
H그룹 3년차 정준호(가명. 남 29세)씨는 “20대가 가지고 있는 노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 ‘무관심 대 혹평’ 두 부류로 정리할 수 있다.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다"라며 "국민들이 뽑았으니까 임기만큼은 보장해 주어야 하는 데 시간이 참 안 간다. 하긴 노무현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해서 차기 정권이 잘 할지도 모르겠다”고 극심한 정치불신감을 드러냈다.
Y대 대학원생 이혜정(가명. 여 26세)씨는 “노 대통령이 말한 개혁, 그 구호뿐인 개혁은 막상 실생활에 있어서는 도움이 안됐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를 충분히 무리없이 챙기면서 개혁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경제에 대해서 너무 무능했거나 아니면 관심이 없었다. 경제는 포기하고 '개혁노벨상'이라고 받으려는 사람같다”며 힐난했다.
“부동산, 결국 30대 발목 잡고 노무현의 발목도 잡았다”
이들 2~30대가 한결같이 말하는 노무현 실정의 공동분모는 '집값잡기 실패'였다.
광고업에 종사하고 있는 신우성(가명 남. 36세)씨는 “코드인사, 좌파정권, 아마츄어리즘 등등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에서 별의 별 이름을 다 갖다붙여도, 정말 우리같은 30대가 왜 노무현을 이제 지지하지 않는가 하는 그 해답을 조중동이나 한나라당 또한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원인은 간단하다. 애 낳고 아내랑 오순도순 좀 살고 싶은데 집이 없다. 돈 모으려고 노력해도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또 뛴다. 집 없으니까 종잣돈도 안 모이고 계속 생활비만 빠듯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줄기차게 주장했던 게 ‘집값 안정’, ‘부동산 잡겠다’는 말이다. 난 그거 하나 믿고 찍었다”고 노 대통령의 배신을 성토했다.
이상길(가명. 남 38세)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치의식이 높다는 30대가 ‘노무현을 버렸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여권에는 뼈아픈 기억으로 기록될 것"라며 "결혼해 집을 장만하고 인생을 설계해 나갈 그들이 부동산 때문에 인생 전체에 발목을 잡혔다. 결국 그 부동산 발목은 30대만 잡는 것이 아니라 결국 범노무현 세력의 발목도 잡을 것”이라고 냉소했다.
“노 대통령은 지지자들까지 가르치려 들었다"
2~30대는 보수신문과 끊임없이 실랑이를 하고 있는 노대통령도 한심스러워했다.
문성원(가명. 34 남)씨는 이같은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조중동과의 대치를 보면 답답함을 넘어 유치하기까지 하다.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놨다 한다'는 조중동도 그래봤자 결국 언론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러나 노무현은 누구인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자 집권자이다. 그 집권자와 집권자를 떠 받치고 있다는 청와대, 여권이 지금 조중동과 기를 쓰고 ‘내가 옳니 네가 그르니’ 그렇게 싸우고 있으니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가 무슨 총학 본부인가? 안티조선을 해야되니 말아야되니, 그딴 걸로 세월을 보낼 정도로 아직도 어리다는 소리인가? 나는 그런 청와대를 볼 때마다 노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해 준 국민들을 못 믿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집권세력이 꿎꿎하고 바르게 밀고 국정을 이끌었더라면 국민들은 조중동이 장난치고 있다는 것 쯤은 충분히 간파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씨는 ‘노무현식 개혁’을 놓고서도 “뭐가 그렇게 다급한지 무조건 빠른 시일 내에 끝장을 봐야 속이 풀린다는 식이다. 그래서 자신의 지지자들도 믿지 못하고 항상 강연식이다. 토론을 하자면서도 결국은 자기 방식대로만 고집한다”며 “그런 노무현 대통령 모습을 볼 때 대중을 가르치려고 드는 것 같다. 심지어 자기를 믿고 지지해 준 지지자들까지 가르치려 든다. 못믿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아직도 '무조건 노무현'을 외치는 골수노빠들도 한심스러워 했다. 그는 “그럼에도 아직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나와 견해가 철저하게 갈린다. 내가 노무현을 이제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면 대뜸 ‘이유가 뭐냐’, ‘경제 나빠진 게 노무현 책임이냐’, ‘발목잡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생각해보지 않았냐’고 기를 쓰고 묻는다. 그래서 내가 ‘특정해서 이유를 상세히 밝히지는 못하겠다’고 하면 ‘거 봐라 사람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며 오히려 내게 훈계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나는 그들 노빠들의 이런 식의 훈계에 이골이 났다. 지금 당장 힘들고 지금 당장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토론해보자’, ‘논리적으로 네 말은 틀렸다’, ‘그래서 이래야 한다’ 등 그런식의 논증어법을 들이대는 게 과연 이 고통스런 시대에 정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의 태도일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민들이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오늘이 힘드니까 사람들은 노무현을 욕하는 거다. 그 사람들에게는 노무현을 왜 싫어하는지, 왜 이제 지지를 철회했는지 명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건 정치꾼들에게나 필요한 어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대안? 착각도 유분수. 한나라당은 '강남당'”
그렇다면 2~30대는 참여정부 대안으로 한나라당을 생각하고 있을까?
김인영(가명. 여 34세)씨는 최근 부동산 폭등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주장하고 있는 강남 재건축규제 전면해제, 강남 대체형 신도시 공급, 종합부동산세 인하 등을 두고 “한나라당이 강남을 대체할 신도시 아파트를 충분히 공급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는데, 아무리 집을 많이 만들면 뭐하나? 결국 돈 있는 부자들만 신나는 정책이다. 아파트 공급이 늘어나든 말든 그것이 돈 없는 서민들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세금 폭탄 운운하는데 지금 국민들이 양극화로 인해 강남에 대한 적개심을 띠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말장난을 하고 있냐”며 “그러니까 부자비호당, 강남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 아니냐”고 힐난했다.
은행원인 정영종(가명. 남 29세)씨는 “지금 이명박-박근혜 등의 지지도가 압도적인 것은 여당의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만 얘기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의 지지도가 높아 보이는 거 아닌가”라며 “여당에서 새로운 제3의 대안을 들고 나오면 얘기는 달라질 공산이 크다. 아직 시간은 1년도 더 남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여당'에 2~30대가 일말의 희망이라도 갖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서울 상계동에서 만난 한 30대 세일즈맨은 “여당이 단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반개혁, 뭐 이런 걸로 한번 더 재미를 보고 싶은가 본데, 한나라당 아닌 박정희가 다시 집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개혁의 시대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개혁은 차기 대통령이 가져야 할 전제조건 아닌가”라고 못박았다. 그는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면 개혁을 잘 할 수 있느냐, 잘 못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나와야 현재의 고통받는 서민들을 그나마 웃게 만들어 줄 것인가”라며 “내년 대선은 ‘경제 유능 세력 대 경제 무능’ 세력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